ADVERTISEMENT

감나무채로 210m … LPGA 한국인 첫 우승 여자 골프 전설 구옥희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597호 22면

스포츠 다큐 - 죽은 철인의 사회

2002년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JLPGA) 메이저 대회에서 3승을 할 당시 구옥희의 샷 모습. 짧은 머리에 단호한 표정으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중앙포토]

2002년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JLPGA) 메이저 대회에서 3승을 할 당시 구옥희의 샷 모습. 짧은 머리에 단호한 표정으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중앙포토]

2013년 7월 10일, 일본 시즈오카현에 있는 한 골프장.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JLPGA) 프로 테스트를 준비 중인 두 선수가 연습 라운드를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구옥희 프로의 조카와 그의 친구인 이들은 구 프로 방의 초인종을 눌렀지만 응답이 없었다. 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함께 온 구 프로는 전날 라운드를 한 뒤 아침에 “너무 피곤하니 너희끼리 운동하고 올 때 수박하고 포도 좀 사 와라”고 했다. 문을 따고 들어가 보니 구옥희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는 평소 저혈압이 있었다. 사인(死因)은 심장마비였다고 한다.

캐디 하며 독학, KLPGA 프로 1기 #장타에 송곳 아이언, 퍼팅 가끔 놓쳐 #골프 외길, 사람들과 잘 못 어울려 #2013년 일본 골프장서 심장마비사 #그가 닦은 길, 세계 정상으로 이어져

어쩐 일인지 구옥희의 갑작스런 죽음은 국내에 바로 알려지지 않았다. 지인을 통해 비보를 들은 강춘자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수석부회장이 부랴부랴 일본으로 날아갔다. 시신이 안치된 곳은 병원이 아니라 화장장이었다. 화장(火葬)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친구의 시신을 확인한 강 부회장은 모든 절차를 중단시킨 뒤 관을 국내로 옮겨 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골프채·신발 빌려서 프로 테스트 통과

1998년 5월 JLPGA 브리지스톤 오픈에서 우승한 구옥희. [중앙포토]

1998년 5월 JLPGA 브리지스톤 오픈에서 우승한 구옥희. [중앙포토]

1978년 첫 프로를 배출하고 대회를 연 KLPGA가 올해 40주년을 맞았다. 한국 여자골프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이다. 뛰어난 선수들이 화수분처럼 나오고 있다. 그 길을 연 사람이 구옥희(1956~2013)다. 1978년 KLPGA 1기 프로 테스트를 통과한 구옥희는 국내 대회를 평정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JLPGA 통산 23승을 올렸다. 1988년 3월에는 LPGA 투어 스탠더스 레지스터 대회에서 한국 선수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 KLPGA 명예의 전당 1호로 헌정됐고, 2012년에는 KLPGA 회장도 잠깐 맡았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1, 2기 프로들. 왼쪽부터 안종현·한명현·강춘자·구옥희·배성순·김성희. [중앙포토]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1, 2기 프로들. 왼쪽부터 안종현·한명현·강춘자·구옥희·배성순·김성희. [중앙포토]

경기도 연천 출신인 구옥희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오빠들 밑에서 자랐다. 투포환 선수로도 뛰었던 그는 경기도 고양의 123골프클럽(6홀)에서 캐디로 일하며 독학으로 골프를 익혔다. 1976년에 남자골프를 관장하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에서 각 골프장에 “여자 프로도 키우자”고 제안했다. 78년 5월에 골프장 대표 선수 8명이 모여 프로 테스트를 했다. 남자프로 후원회 월례경기 맨 뒷조였다. 남성용 하프 세트로 연습을 하던 이들은 테스트 당일 골프장 여성 회원의 풀세트를 빌려 썼다. 골프화도 빌려 신었는데 맞지 않아 뒤꿈치가 까이는 경우도 많았다. 이틀간 평균 80타 안에만 들어오면 합격시켰다. 배구 세터 출신인 강춘자가 155타로 1등을 했다. 한명현·구옥희가 156타, 안종현이 157타로 합격했다. 안종현이 27세 때 급성 백혈병으로 유명을 달리하는 등 1기 4명 중 3명이 병으로 세상을 떴다.

구옥희는 투포환 선수 출신답게 장타자였다. 강 부회장은 “당시 드라이버 클럽은 퍼시먼(감나무) 헤드였는데 평균 190m(약 208야드) 나갔다. 옥희는 우리보다 20야드 정도는 더 나갔다. 옥희는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모든 아이언 샷을 상황에 따라 거의 완벽하게 구사할 줄 알았다. 다만 숏게임의 정교함이 약간 떨어졌고, 30~40cm 퍼팅을 놓치는 경우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2년 동안 준비해 프로 테스트를 통과했지만 여자 프로골퍼 현실은 고단했다. 대회가 많지 않았고 그나마 총상금 50만원, 우승상금 30만원 정도였다. 여자 프로 모두가 골프장 캐디나 레슨으로 투잡을 뛰어야 했다. 구옥희는 1984년 일본으로 건너갔고, 이듬해 3개 대회 우승을 거머쥐며 성공의 기반을 다졌다. 그는 더 큰 도전을 위해 LPGA 프로 테스트에 도전해 당당히 출전권을 따냈다.

1988년 3월 스탠더드 레지스터에서 거둔 구옥희의 LPGA 첫 우승은 골프 선수들도 잘 모르고 지나갔다. 그만큼 골프, 특히 여자골프에 관심이 없던 때였다. 1998년 박세리가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자 ‘한국인 첫 승인가 아닌가’ 설왕설래 속에 구옥희의 10년 전 우승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프로암 때 도시락 싸와 혼자서 식사

1999년 3월 LPGA 나비스코 다이너 쇼 대회에 함께 출전한 펄 신·박세리·구옥희. [중앙포토]

1999년 3월 LPGA 나비스코 다이너 쇼 대회에 함께 출전한 펄 신·박세리·구옥희. [중앙포토]

구옥희는 골프에서 큰 족적을 남기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그리 행복하게 산 것 같지는 않다. 독신이었고 골프 외에 별다른 취미가 없었다. 외골수 면모가 있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힘들어 했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2011년 일본 생활을 완전히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프로암(스폰서 기업의 VIP 고객과 프로 골퍼가 함께 하는 이벤트 라운드)에도 자주 초청받았다. 그는 동반자에게 거의 말을 하지 않았고, 끝난 뒤에도 자신이 싸 온 도시락을 먹었다고 한다. 친절한 원포인트 레슨과 싹싹한 매너를 기대했던 고객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본인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강춘자 부회장은 “옥희는 평생 구도자의 자세로 골프를 대했다. 죽기 얼마 전에는 ‘내가 이젠 골프 달인이 된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지금처럼 매니저나 대행사가 있던 때가 아니어서 세련되게 포장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구옥희가 간 길이 한국 여자골프의 역사가 되었다. 그가 낸 길은 세계 정상으로 이어졌고, 그 길을 따라 박세리·신지애·박인비·전인지·박성현 등이 여왕에 등극했다.

“초창기 KLPGA, 십시일반 모아 대회 상금 줬죠”

김성희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연맹) 초대 회장. [정영재 기자]

김성희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연맹) 초대 회장. [정영재 기자]

“나도 프로 선수였지만 대회 출전할 틈이 없었어요. 상금 구하러 다녀야 했으니까. 골프장 숙녀회 멤버들 찾아가 십시일반으로 돈 얻어오고, 그걸 모아서 시상식 때 상금을 줬죠.”

김성희(74·사진) KLPGA 초대 회장이 여자골프 초창기 얘기를 들려줬다. 그는 1978년 8월 KLPGA 2기 테스트를 거쳐 프로가 됐다. 1, 2기를 합쳐 8명이 대회에 출전했다. 남자 대회 맨 뒤에 끼어서 치는 ‘들러리’였다. 2018년 현재 KLPGA 정회원 수는 1221명이고, 대회 숫자와 상금 액수는 남자보다 월등히 많다.

김 전 회장은 우리나라 여자골프의 시조라 할 수 있다. 경남 진주 출생인 그는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에 다닐 때부터 부친을 따라 골프를 배웠고 바둑도 5급을 뒀다. 서울컨트리클럽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이병철 삼성 회장과 구인회 럭키 회장의 바둑판에 슬쩍 끼어들어 훈수를 했다. 그게 이 회장과의 즉석 대국으로 이어졌고, 그 인연으로 이 회장의 딸들에게 골프를 가르치게 됐다.

재계에 발을 넓힌 김 전 회장은 골프장마다 ‘사모님’들을 모아 숙녀회를 만들었다. 특급 호텔의 VIP 손님들과 여자 프로들이 함께 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프로암의 시초인 셈이다.

1988년 KLPGA 법인 등록도 김 전 회장이 앞장섰다. KPGA로부터 독립하면서 ‘정착금’ 3000만원을 받아냈고, 숙녀회 멤버들로부터도 1400만원을 갹출했다. 이걸 종자돈 삼아 단칸방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김 전 회장은 “우리 땐 공 한 개로 36홀을 돌았고, 장갑은 빵꾸 날 때까지 꼈죠. 지금은 모든 게 풍족하고 한국 여자골프가 질과 양에서 세계 최고가 됐으니 뿌듯합니다. 그렇지만 골프 문화나 매너는 아직 고쳐야 할 게 많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