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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게 힘들어ㅠ" 또 해외로···'양철'이 文측근으로 사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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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강민석
강민석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민석 논설위원이 간다]  

 이호철-전해철-양정철, 이른바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3철’이 지난 3일 회동했다. 서울 인사동의 한정식집에서다. 8ㆍ25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전대에 관한한 3철은 일심동체가 아니었다. 그동안도 ‘이호철은 자유인, 전해철은 정치인, 양정철은 그 중간쯤’으로 스탠스가 다르다는 평가가 많았다.
 3철중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은 회동 다음날인 4일 해외로 출국했다. 민주당 전당대회를 피해서다. 미국으로 떠났다는 말도 나왔지만 그의 한 지인이 조심스럽게 ‘뉴질랜드’라고 귀뜸해줬다. 전대후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잠수모드’에 들어갔다. 전대 문제를 논의하러 만났다가 한 명은 국내를 뜨고, 한 명은 잠행하는 것은 경선과 거리를 두겠다는 의사표시다. 상당히 강력한 중립메시지다.

민주당 전대 피해 떠나는‘양철’ #문 대통령 부담 안주려 동시에 해외로 #역대정부 실세들과는 다른 모델 #최순실 보고 참고 지낸다는 양정철에 #이호철 “양비는 언젠가 릴리프 투수해야 #배낭여행 하는 방법도 모른다”

전해철 의원만 입장이 달랐다. 회동 뒤 그는 “체감할 수 있는 경제 정책을 실현해 국정을 확실하게 뒷받침할 수 있는 당대표를 선출해야 한다”며 사실상 김진표 후보 지지 입장을 밝혔다. 전대 문제엔 3철이 없고, ‘양(兩)철’이 있는 셈이다.

지난 3월 10일 전해철 의원(왼쪽)의 북콘서트에서 모인 3철. 경기지사 경선후보로 출마한 전 의원을 응원하러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가운데)과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공개적인 자리에 모습을 보였다. [연합뉴스]

지난 3월 10일 전해철 의원(왼쪽)의 북콘서트에서 모인 3철. 경기지사 경선후보로 출마한 전 의원을 응원하러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가운데)과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공개적인 자리에 모습을 보였다. [연합뉴스]

 ①양정철, 또 뉴질랜드로  

 양정철 전 비서관은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1년4개월동안 뉴질랜드-일본-미국-한국을 정처없이 오갔다. 주로 뉴질랜드에 체류하는 기간이 길었다. 뉴질랜드에는 현지 한인협회 간부로 정착해 있는‘아주 가까운’ 친인척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문 대통령도 야인시절인 2014년 김정숙 여사와 뉴질랜드에 가서 오지 트레킹을 한 적이 있다.
 또다른 문 대통령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당시 민주당 의원)도 작년 7~8월 휴가철에 뉴질랜드로 양 전 비서관을 찾아갔다. 외부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다.

 양 전 비서관은 1964년생, 김 지사는 1967년생이다. 김 지사는 “대통령님이 형님을 임명직에 기용하기란 사정상 어려울 것이다. 형님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선출직 밖에 없다”며 재ㆍ보궐선거나 총선출마를 권유했다고 한다. 양 전 비서관을 걱정해서 한 말일 것이다. (1년이 흐른 지금 김 지사는 드루킹 특검의 수사를 받고 있다. 걱정하는 위치가 서로 바뀌어 있을테니, 시간은 모든 걸 바꿔놓는 것 같다.)
 당시 양 전 비서관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한다. 해외유랑 석달째 정도였을 때니 이때까지만해도 버틸만했는지 모른다.

양정철 전 비서관은 전해철 의원 출판기념회가 끝난뒤인 지난 3월 14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뉴스1]

양정철 전 비서관은 전해철 의원 출판기념회가 끝난뒤인 지난 3월 14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뉴스1]

올 1월. 유랑생활이 8개월째 접어들었을 무렵이다. 그는 저서인『세상을 바꾸는 언어』의 출판기념회를 하기위해 국내에 들어왔다가 나꼼수 멤버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김씨가 긴 백수생활을 어떻게 참고 지내냐고 묻자 그는“최순실씨 보면서 참는다”고 대답했다. 독한 말, 독한 마음이었다. 그는 방송에서 문 대통령에게 “밖에 있다고 비루하게 살진 않겠다”고 약속하고 떠난 사실도 공개했다. 현재 그의 가계는 고교 교사인 부인이 책임지고 있고, 미국과 일본에서 잠시 지낸 비용은 저서를 출판해 선(先)인세를 받아서 충당했다고 지인들은 설명한다.

 한국에 있는지, 없는지 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양 전비서관과 얼마전 숨바꼭질을 한 적이 있다. 지난 6월27일 저녁 시내 한 호텔에서 조대엽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의 출판기념회(‘심천의 꿈’)가 열렸다.
 조 원장은 대선캠프 핵심멤버로 양 전 비서관과 호흡을 맞춘 사이다. 이 자리에 양 전 비서관이 온다는 말을 들었다. 그와 인터뷰를 추진해보려고 마음먹었다. 실제로 그가 행사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런데 잠깐 한눈 파는 사이 자취를 감췄다. 조 원장에게 눈도장만 찍고 튀어버린 것이다.

지난 6월27일 조대엽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의 출판기념회에 모습을 보인 양정철 전 비서관. 강태화 기자

지난 6월27일 조대엽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의 출판기념회에 모습을 보인 양정철 전 비서관. 강태화 기자

양 전 비서관을 놓치고 난뒤 전화도 하고 문자메시지도 보내봤다. 기대를 하고 보낸 것은 아니었다. 역시 답이 없었다.
 그런데 2주정도 지난 7월10일 답신이 왔다. “귀국하자마자 (사람들 눈을 피해다니느라)내 핸드폰을 며칠 처박아놓고, 다른 핸드폰을 썼다. (답을 못한 것을)이해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다음 표현이 이랬다.“사는게 힘들어ㅠ”
 독백과도 같은 7글자를 보고 ‘아, 당연히 힘들지. 1년 몇달을 그렇게 살면…'이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②자유인 이호철도 전대외면, 장기외유

 3철회동 소식 이후 이호철 전 수석에게 문자메시지와 전화연락을 취해봤다. 역시 무응답이었다. 노무현정부에서 이 전수석과 함께 일한 A씨를 만났다. 익명을 전제로 나눈 대화다.

이 전 수석의 근황은.
 “중국 갈 준비에 전념하고 있다.”
중국은 갑자기 왜.  
 “원래는 올초에 가고 싶어 했는데, 6월 지방선거도 있고해서 미뤄 둔 거다. 대통령께 매우 중요한 선거인데, 올초만해도 결과를 알수 없었으니 가고 싶어도 못갔거지. 그런데 최선을 다해 선거를 도왔고, 결과도 좋게나왔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것 같다. 베이징대에 1년간 방문학자(비지팅 스칼라)로 가는 데, 학교에서 15분 거리에 아파트를 얻어놨다.”
언제 떠나나.
 “9월1일 떠나는 것으로 안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4일 쿠바에서 귀국해 기자와 만났다. 이 전 수석은 인터뷰에서 부산시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가 불출마를 결심한 이유중 하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4일 쿠바에서 귀국해 기자와 만났다. 이 전 수석은 인터뷰에서 부산시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가 불출마를 결심한 이유중 하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선거때는 막후에서 돕다가, 선거가 끝나면 훌쩍 떠나는 일을 ‘상습적’으로 반복해 온 이 전수석이다. 보름뒤면 이번에는 장기간 정치권을 떠난다.
 이 전 수석은 당초 여권내부에서 부산시장 출마 압박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나 본지 인터뷰<1월 16일자 논설위원이 간다>에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불출마 선언을 했다고 나몰라라 하고 있진 않았다. 민주당 부산시장 예비후보들을 설득해 ‘원(one)팀’운동을 펴나갔다. 부산지역에 개인 팬클럽을 갖고 있고, 경남고-부산대 인맥이 탄탄한 대통령의 최측근이 원팀을 부르짖는데 거절할 사람은 없었다. 후보 탈락자들을 원팀으로 묶어놓은 바람에 오거돈 시장은 공천후유증 없이 뛸 수 있었다. 돌아보면 그의 불출마 선언 자체가 스스로를 낙마시키면서 다른 여러 경쟁주자들은 하나로 묶으려는 큰그림이었던 것 같다.
 한편으론 바닥을 다지고, 지지층이 이탈하지 않도록 움직였다.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뿐 아니라 기초단체장(구청장,군수)까지 16명 중 13명을 배출하고, 시의회까지 장악하는 초유의 성과를 낸 배경에는 이런 이 전 수석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니 전대를 앞두고 그를 가만 내버려둘리 만무하다. 여의도 정가에선 “이호철이 이해찬을 민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럴듯한 얘기였다. 이 전 수석과 이해찬 후보 사이에는 ‘노무현재단’이란 단단한 가교가 놓여있다. 이 전 수석은 노무현재단에서 기념관 건립추진단장을 맡고 있고, 이 후보는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이 전 수석이 불출마 의사를 밝힐 때 들었던 이유도 “올봄이면 노무현기념관을 착공하는데, 거기까지는 일을 봐야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후보지원설은 낭설임이 중립선언으로 드러났다.

수면 아래에서라도 이 후보를 도운 일은 없나.
 “없다. 전대 근처에는 얼씬도 안했다고 보면 된다. 전대라는게 사실 같은 당 안에서 서로 편이 갈라지는 것 아닌가. 이호철 수석이 왜 편이 갈라질때 역할을 하겠나. 그는 편이 갈라지고 난 뒤 다시 합치게 하는 것이 정치 2~3선에 있는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③‘양철’ 중립속 전대 앞두고 친문은 분화조짐

 중립이면 중립이지 꼭 저렇게 외국까지 나가야하는 건지 의문이지만 최근 양상을 보면 ‘양철’이 왜 극단적으로 전대와 거리를 두려하는지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민주당 전대는 지금 과열 양상이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인 당의 주도권, 다음 총선을 앞둔 공천권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로 나선 이해찬(왼쪽)-김진표(가운데)-송영길 후보. 오는 25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3파전이 점점 가열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로 나선 이해찬(왼쪽)-김진표(가운데)-송영길 후보. 오는 25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3파전이 점점 가열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보통 새정부가 출범하면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대통령을 만든 세력이 분화를 시작한다. 분화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주류와 비주류가 형성되고, 새로운 계보가 탄생한다. 피할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경쟁의 뒤끝이 심할 경우 분열로 이어진다. 전 정부가 꼭 그랬다. 바깥에서보면 원팀인줄 알았는데, 김무성-서청원 후보가 집권 2014년 7월 새누리당 당권을 놓고 혈투를 벌이면서 서서히 친박과 비박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총선에서 대선으로 가는 내내 분열했다.

민주당의 단일계보 ‘친문’도 이제 분화단계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얼마전까지 같은 친문이었는데, 이제는 나뉘어 암암리에 누구는 누구를 민다더라(심지어 정치인 출신 해외공관장까지)는 말이 돌아다닌다. 공개적인 지지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전해철 의원의 김진표 후보 지지선언에 앞서 이종걸 의원은 이해찬 후보를 지지한다는 보도자료를 대놓고 냈고, 우원식ㆍ박범계 의원은 각각 “이해찬 후보의 정책구상을 환영한다”거나 “칼칼한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지지의사를 밝혔다.

이에 송영길 후보측이 당 선관위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민주당 당규는 국회의원이 ‘공개적이면서 집단적으로’ 특정후보를 지지ㆍ반대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당 선관위는 전 의원 등 4명의 의원들 처럼 세력동원 없이 개인적으로 의사를 표명해도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4 의원이 동시에 구두경고를 받았다. 하지만 구두경고 4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만약 이런 판에 ‘양철’까지 특정인을 지지하면서 뛰어들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지층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히 컸겠지만, 그만큼 여권의 분화를 재촉했을 게 분명하다.

④실세에게 권력이란…“칼날 위에 묻은 꿀”

민주당 전당대회에 동시에 거리를 두고 있는 &#39;양철&#39;.[중앙포토]

민주당 전당대회에 동시에 거리를 두고 있는 &#39;양철&#39;.[중앙포토]

‘양철’의 사는 법은 역대정부의 실세, 대통령 최측근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양철에서부터 비선실세 최순실씨까지 한국 정치에는 수많은 유형의 실세와 ‘2인자’들이 부상했다가 감옥을 다녀왔다. 권력의 속성 때문일지 모른다.

노무현 정부시절 ‘양철’이상으로 주목을 받았던 이광재 전 강원지사(현 여시재 원장)가 권력의 생리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권력은 칼날 위에 묻은 꿀과 같다.”
 얼마전 만난 박지원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권력은 측근이‘웬수’(원수)고, 재벌은 자식이 웬수”라고.

그러나 권력 중심에 있다고 모든 실세들이 달콤한 꿀을 핥기위해 칼날 위에 혀를 갖다대는 것은 아니다.
신세를 망친 경우도 많지만, 당대는 물론이고 나중에 더 크게 성공한 실세도 있다. 노무현정부 2인자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그런 경우다.

문 대통령이 ‘양철’의 모델이 될 순 없다하더라도 현 정부의 대통령 최측근들의 유랑은 언제 끝날지 궁금했다.

노무현재단에서 이 전 수석에게 이 점을 물었더니, 배낭여행 싸게하는 방법을 한참 설명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나는 구시대의 막차를 타기로 했지만,‘양비’(양 비서관의 애칭)는 나중에는 들어가 릴리프 투수로 뛰어야지요. 배낭여행, 양비는 방법도 몰라요.”

‘대통령 최측근이라고 무조건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게 바람직한 건지 잘 모르겠다’고 다시 딴지를 걸어봤다.
 이 전 수석이 남의 말 하듯 답했다.“나도 잘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렇게 해보기로 했다”니 딱히 뭐랄수도 없었다.

 강민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