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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남중 논설위원이 간다

교사는 학생들 ‘애착 손상’ 보듬는 감정노동자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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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국내 유일 대전시 초·중·고 교사 ‘에듀 코칭’ 연수 현장

지난 8일 대전시교육청 산하 에듀힐링센터에서 대전지역 초·중·고 교사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에듀 코칭’ 연수를 받는 도중에 짝을 이뤄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8일 대전시교육청 산하 에듀힐링센터에서 대전지역 초·중·고 교사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에듀 코칭’ 연수를 받는 도중에 짝을 이뤄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20일을 전후해 초·중·고 여름방학이 마무리된다. 교사들이 방학을 보내면서 이번 만큼 마음이 편치 않았던 적도 없을 듯싶다. 방학 내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교사들이 놀고먹는 방학을 폐지하라”는 청원들이 올라오면서 논란에 휩싸인 탓이다. 교사 방학의 근거는 연수 규정이 담긴 ‘교육공무원법 제41조’다. 교사들이 방학 동안 연수를 이유로 월급을 받으면서 휴가처럼 쉬는 것은 ‘특혜’라며 이 조항을 폐지하라는 게 청원의 골자다. 교사들도 할 말은 있다. “교사에게 방학은 배움의 시간이고, 가르침을 준비하는 시간”이란 거다. 대전시교육청이 운영하는 국내 유일 ‘에듀 코칭’ 연수 프로그램에 참가한 교사들을 찾아가 만났다. 어떤 연수를 왜 받는지, 교사에게 방학은 어떤 의미인지 직접 물어봤다.

학교에 경청과 질문의 코칭 도입 #학생과 소통하는 긍정의 대화법 #가르침에서 배움으로 교육 전환 #미래 교사는 안내자나 코치 역할 #교사들 방학 코칭 연수에 구슬땀 #“방학은 역량강화, 수업준비 시간”

지난 8일 오후 1시 대전시 유성구 대전시교육청 에듀힐링센터 1층 세미나실. 폭염의 기세가 여전한 가운데 대전지역 초·중·고 교사 14명이 참여한 ‘에듀 코칭’ 연수가 진행되고 있었다. 5일 일정의 ‘역량강화과정’으로 ‘감정코칭 이론 및 대화법과 실습’이 핵심 내용이다. 세미나실 스크린에 ‘분노가 가득한 소년의 얼굴’ 사진이 비쳤다. 감정코칭협회 최영주 수석강사가 교사들의 느낌을 묻자 다양한 답이 쏟아졌다.

“도전받는 느낌이다. 두렵다.” “중학교에선 늘상 부닥치는 익숙한 현실이다.” “이런 싸가지, 눈 깔어!”(웃음) “저 아이의 분노의 근원이 뭘까. 왜 화났는지 궁금하다.”

최 강사가 ‘답안’을 설명했다. “감정은 옳고 그름이 아니에요. 지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인 거죠. 그래서 이 사진 속 아이를 다루는 방법은 ‘눈 깔어’가 아니라 차분히 물어보는 것이어야 합니다. ‘화가 난 것 같은데 지금 기분이 어때? 왜 그런지 물어봐도 될까’ 하고 말이지요.”

바로 ‘감정코칭’이다. 감정코칭은 아이의 감정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되 표현하는 방식과 행동에는 어느 정도 제한을 두고, 그 제한 안에서 바람직한 방법으로 수정해 주는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학생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긍정의 대화기법이라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이런 코칭이 왜 필요할까. 최 강사는 “요즘 학교는 ‘애착 손상’과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입은 학생들이 넘쳐난다. 학교생활에 부적응 현상을 보이는 이런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끌어안고 교육하는 데 꼭 필요한 게 감정코칭이다. 이는 방학이란 긴 시간을 통해 집중적으로 배워야 하는 전문적인 분야”라고 말했다.

교사들의 생각은 어떨까. 오후 4시 연수를 끝낸 교사들과 마주 앉아 ‘에듀 코칭’ 연수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연들을 들어봤다. 먼저 “눈 깔어”란 폭소 발언을 했던 대전버드내중 김성태 교사의 얘기를 좀 길게 따라가 봤다.

“요즘의 중학생들은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그래서 교사들은 무기력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교육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형성된 관계 속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데 사범대를 졸업하고도 나는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어요. ‘통제를 통한 행동의 변화’를 교육인 것처럼 오해했고요. 이제는 아이들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학생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교육을 향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에듀 코칭이 바로 그런 교육을 지원하는 희망이라고 봅니다.”

다른 교사들도 하나같이 “코칭으로 스스로를 먼저 추스르고 그 에너지로 학생들을 행복하게 이끌고 싶다”는 소망과 고민을 품고 있었다. “코칭은 학생과의 대화에 맛을 내는 만능 간장 같다”는 한 교사의 소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교대에서 배운 거로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풀기가 어려웠어요. 대학원에도 다니고 상담 공부도 더 했지만 해결이 안 됐어요. 그러다 코칭을 만나게 됐고, 아이들을 도우려면 이거다 싶었지요.”(대화초 신소정 교사)

“4년 차 교사인데 작년에 5학년 첫 담임을 하면서 감정소비가 너무 많았습니다. 기대가 컸던 만큼 말 안 듣는 아이들로 인한 상처와 심적 부담이 컸지요. 코칭 연수를 통해 나 자신부터 ‘힐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을 좀 더 여유롭게 대할 수 있게 됐고 아이들도 더 안정될 겁니다.”(가오초 윤지원 교사)

“코칭을 익히면 경청과 공감 대화가 가능해요. 학생의 현재 상태와 목표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실천 방법을 스스로 찾게 유도하는 거지요.” (신흥초 이상의 교사)

대전시교육청이 ‘에듀 코칭’이란 이름으로 전국에서 처음으로 코칭을 교육 현장에 도입한 것은 2016년부터다. 올해 302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대전지역 초·중·고 교사 779명이 연수를 마쳤다. 설동호 대전시교육감에게 ‘에듀 코칭’에 대해 좀 더 얘기를 들었다.

왜 학교 교육에 코칭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요즘 학생들에게는 바른 인성을 바탕으로 지식과 기술을 활용해 창의성을 기르는 개인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한 비법으로 ‘코칭’을 교육에 도입하게 됐다.”
이제 교사의 역할도 달라져야 하나.
“미래 교육은 가르침에서 배움 중심으로 크게 전환된다. 따라서 현재 교사의 오른손에 ‘티칭’을 들고 있다면 앞으로 왼손에는 ‘코칭’을 들어 균형을 갖추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교사가 안내자나 코치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거란 얘기다.”
‘에듀 코칭’으로 학교가 행복해질까.
“코칭은 서로의 기분, 감정을 중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학생과 교사, 교사와 학부모가 연결되는 보이지 않는 연대가 형성된다. 건강하고 행복한 학생·교사·학부모가 서로에게 긍정의 에너지를 생성하는 선순환이 바로 코칭의 대화 모델이다.”

설 교육감은 “이번 여름방학에만 교사 90명이 3개 과정의 코칭 연수를 받았다”며 “코칭 뿐만 아니라 대부분 연수가 집중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그 시간은 바로 방학이라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교사에게 방학이란 이처럼 ‘역량강화의 시간’이면서 ‘재충전의 시간’이고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연수 참가 교사들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김성태 교사는 “학기 중에 정신적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 교사들에게 방학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귀한 재충전의 시간이기도 하다”고 했다. 한국교총에 따르면 교사의 96.5%가 감정노동을 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게 교단의 현실이다.

회덕중 전도현 교사는 “방학은 다음 학기 수업 준비와 평가방법 연구 등 현실적으론 업무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한 학기를 지나면서 파악된 학생들 눈높이에 맞춰 방학 동안 새롭게 수업 설계를 하고 자료 제작을 한다는 거다. 천동초 임국화 교사는 “방학이라고 담임이 아닌 게 아니다. 늘 아이들을 떠올리며 개학을 하면 이렇게 해줘야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방학 동안 한 걸음 떨어져서 보니 그게 보이더라”고 했다. 교사들은 대화 말미에 축구 얘기를 꺼냈다. 전반전이 끝난 휴식 시간에 몸만 쉬는 게 아니라 후반전 작전을 짜는 것처럼 ‘교사의 방학’도 그렇게 봐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서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