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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 총무원장 불신임안 가결 … 조계종 역사상 처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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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설정 총무원장(오른쪽)이 16일 오전 서울 한국불교문화역사기념관에서 열린 임시중앙종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종회에서 조계종단 역사상 처음으로 총무원장 불신임안이 가결됐다. [연합뉴스]

설정 총무원장(오른쪽)이 16일 오전 서울 한국불교문화역사기념관에서 열린 임시중앙종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날 종회에서 조계종단 역사상 처음으로 총무원장 불신임안이 가결됐다. [연합뉴스]

‘친자 의혹’으로 사퇴 압박을 받아오던 조계종 설정 총무원장이 중앙종회에 의해 불신임됐다. 중앙종회가 총무원장 불신임안을 가결한 것은 조계종단 역사상 처음이다.

“12월 사퇴” 버티다 불명예 퇴진 #22일 원로회의 인준 땐 차기 선거 #개혁파·재가불자들은 직선제 요구 #“종회 해산, 비상대책기구 만들라”

대한불교 조계종 중앙종회는 16일 임시회에서 ‘설정 총무원장 불신임안’을 전체 재적의원(75명)의 3분의 2가 넘는 56명이 찬성해 가결시켰다. 반대 14표, 무효는 1표였다. 이에 따라 “종단 개혁의 초석을 먼저 마련하고, 12월 31일에 사퇴하겠다”고 밝혔던 설정 총무원장은 임기 시작 10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됐다. 지난해 총무원장 선거 기간부터 불거진 ‘친자 의혹’ 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한 게 ‘결정타’가 됐다.

◆앞으로 종단 운영은=총무원장 불신임안은 22일 오전 10시에 열리는 원로회의에서 인준해야 최종 확정된다. 원로의원 24명 중 12명 이상 찬성하면 의결되는데, 지난달 원로의원 10명이 총무원장 등의 즉각 사퇴를 요구한 바 있어 인준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퇴진이 확정되면 조계종은 총무원장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된다. 권한대행은 총무부장이 맡는다. 설정 총무원장은 중앙종회가 열리기 1시간 전인 16일 오전 9시에 기획실장을 맡고 있던 진우 스님을 총무부장에 임명했다. ‘권한대행 체제’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종헌종법에 따르면 총무원장 궐위 시 차기 총무원장 선거를 60일 이내에 치러야 한다. 종단의 제도권은 대부분 ‘종헌종법에 따른 절차’를 고수하고 있다. 종정 진제 스님은 지난 8일 ‘설정 총무원장의 명예로운 퇴진’을 주문하면서 “종헌종법 질서 속에서 선거법에 의해 차기 총무원장을 선출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조계종 본사주지협의회도 같은 입장이다. 하지만 조계종 야권은 입장이 다르다. 일부 개혁파는 종앙종회 해산 등을 요구하고 있다.

◆차기 총무원장 선거는 어떻게=총무원장 임기는 4년이다. 1회 중임이 가능하다. 총무원장 선거는 간접 선거로 치러진다. 종회의원 81명, 24개 교구본사별 10명씩(240명)을 합쳐 모두 321명이 투표권을 갖는다. 선거인단 수가 적다 보니 종단 정치권의 각 계파에 해당하는 종책모임이 선거판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후문이다.

선거 때마다 돈이나 이권으로 표를 매수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종단의 비제도권이나 재가불자들이 ‘총무원장 직선제’를 줄기차게 요구한 건 종단 정치권의 이런 구조 때문이다.

현재 조계종의 최대 종책모임은 ‘불교광장’이다. 과거 화엄회·무량회·금강회·법화회 등으로 쪼개져 있던 종책모임의 상당수를 자승 전 총무원장이 통합했다. 그래서 ‘불교광장’의 실질적 수장은 자승 전 총무원장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불교광장’은 현재 종회의원의 약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종단 야권은 ‘법륜승가회’로 불리는 15명 안팎의 종회의원이 전부다. 이 때문에 불교계에서는 현행 종헌종법과 선거제도에 따라 총무원장 선거를 치르게 되면 ‘불교광장’이 지명한 후보가 차기 총무원장에 선출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불교광장’이 W스님을 차기 총무원장 후보로 민다더라”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조계종 야권은 승려대회와 직선제 요구=조계종 야권은 23일 오후 1시 서울 조계사 앞마당에서 ‘청정승가 회복을 위한 전국승려대회’를 개최한다. ‘설정 총무원장의 사퇴’는 1차적 목표일 뿐이고, 종단 정치권과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청정승가 회복은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 김영국 상임대표는 “종단 정치판을 본질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어차피 ‘그 나물에 그 밥’이 될 뿐이다. 설정 총무원장이 물러난다고 해도 자승 전 총무원장의 영향력은 그대로다. 그러니 원로회의가 나서서 정치판이 돼버린 중앙종회를 해산하고, 비상대책기구를 설립해 종단의 개혁을 이루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계종 야권은 전국승려대회를 통해 힘을 모아 선거제도 개혁을 포함한 종단 개혁을 요구할 방침이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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