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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값파동에 사라지는 우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음매….』
이른 새벽 동이 트면서 고삐를 잡고 각지에서 몰려드는 농군들로 웅성거리던 우시장.
한나절이면 파장하는 장마당엔 언제나 설설 끓는 순대국과 구수한 우거지국 냄새가 가득했다. 흥정을 잘했든 못했든 간에 막걸리라도 한잔 걸치게되면 아들 학비 대랴, 딸 시집보내랴 깊어지기만 했던 주름살은 어느덧 펴진다. 수확기가 끝날때면 더욱 그랬었다.
그러나 이러한 옛 정취의 우시장이 농민들을 울린 소값 파동과 더불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매매방식도 컴퓨터까지 동원되는등 새로운 품속도로 바뀌고 있다.
우시장이 처음 서게 된 것은 조선말 순조때부터. 일제때인 1938년엔 우시장수가 최고 1천3백여개소까지 이르렀으나 현재 전국에는 3백11개소만이 축협의 관리아래 이름만 내건채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경기의 수원, 강원의 춘천, 충북의 청주, 충남의 공주, 전북의 남원, 전남의 광주, 경북의 김천등은 예로부터 전국에서 손꼽히는 우시장이 서온 곳.
쇠고삐를 쥐고 수십리길을 걷는 대신 삼륜차와 타이탄트럭이 장터에 나타나더니 최근 전북순창 우시장에서는 수기식경매방식대신 컴퓨터를 이용한 전자식 경매제를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농가재산목록 제1호인 소.
그런탓인지는 몰라도 소의 매매에는 외상거래가 절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현금이 오고가는 우시장주변에는 악덕 쇠전꾼·사기꾼이 들끓어 종종 농민의 가슴에 멍울을 남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소를 키우는 농민을 괴롭히는 것은 다름 아닌 소값. 지난 85년 수소 한 마리 값이 90만원대까지 떨어졌던 「소값 파동」의 기억은 농민들이 소사육을 선뜻 내키지 않게 한다.
현재값은 1백69만원대로 최고 시세를 보이고있으나 농민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오르면 떨어지고 오르는 폭만큼 떨어지는 파장도 커 설땅을 잃은 농민들은 소파동의속죄양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경북금릉군 지례우시장. 일제때부터 부산등 전국에서 몰려든 소상인과 팔려는 농민들로 붐비던 곳.
장날이면 지례·귀성·부항·대항·증산면등 인근5개면 5천여가구 농가에서 키우던 소1천여마리가 나와 이를 사러온 40∼50명의 각처 소거래상들이 하루전부터 진을 쳐 상가·숙박업소도 덩달아 호황을 누렸었다.
그러나 75년 경북김천∼경남거창간 도로가 포장돼 소장수들이 직접 농가를 찾아다니며 사들이는데다 소값마저 춤을 추면서 우시장은 기능을 잃기 시작했다.
작년 10월까지만해도 장날에 20여마리의 소가 나와 옛지례 우시장의 명맥을 이었으나 2개월전부터는 출시되는 소가 크게 줄어 지난 4일 장날엔 한마리도 출하되지 않았다.
임춘택지례면부면장(52)은 『예로부터 이름났던 지례우시강이 옛정취는 물론 우시장자체마저 사라져가고 있다』며 옛 시골장터의 모습이 변해가는데 대해 아쉬워했다.
소규모의 우시장이 사라지는 것은 전국적인 현상. 그나마 현재 남아있는 우시장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
농가재산 1호를 통째 털어먹은 애물이 된 소값 파동이 가장 큰 원인.
더구나 시장에 나오는 소는 농우가 아닌 비육우가 대부분이며 절반이상이 농민이 아닌 상인들끼리 사고 팔고 있다.
『소값이 오를만 하면 외국소를 마구 사들여 팔아대니 소를 키울 마음이 나겠읍니까. 우시장이 사라지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수입소에 밀린 탓이지요.
모자라면 사들여 온다는 한심한 영농정책이 농민도, 우시장도 망치고만 셈이지요.』
경기도 안성군 서운면에서 소 15마리를 키운다는 김학수씨(47)는 『영농정책의 외국 의존병에서 풀려나지 않는 한 농민들은 마음놓고 소도 기를 수 없다』고 했다.
정든 주인과 떨어져 새 주인을 따라가는 황소, 어미소와 떨어져 우는 송아지 울음, 김이 피어나는 국밥, 정겨운 흥정의 모습은 이제 쉽게 볼 수 없다.
소값파동에 밀린 우시장, 「쇠전」이 아닌 「축협가축시장」이라는 딱딱한 이름으로 불려지고 인정과 애환이 교차하는 대신 얄팍한 상혼과 경제성이라는 원칙만이 지배룰이 돼버린 「우시장」만이 우리곁에 남아있을 따름이다.
취재반 ▲경기=김영석 기자 ▲전북=모보일 기자 ▲경북=김영수 기자 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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