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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災害 '선심성 보상' 그만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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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태풍 '매미'가 휩쓸고 간 남부 지방에는 한숨만 남았다. 해마다 당하는 자연 재해인데 올해도 1백여명의 귀중한 생명이 또 희생되었다.

이웃 일본은 제 아무리 큰 태풍이 와도 한 자릿수의 희생자에 머무는 데 비해 우리는 재난을 한번 당했다 하면 세 자릿수의 희생자로 그때마다 전 세계를 놀라게 한다. 그리고 정치권은 언제나 '특별재난 선포'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뒷북 치는 특별재난지역 선포는 정치적 선심이라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것이 선심성 대책인지 아닌지 따질 여유가 별로 없다. 이번 일로 피해를 본 주민들에게 '성심껏' 재해를 복구하고 그 아픔을 쓰다듬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재해 보상을 어떻게 하는 것이 그야말로 성심껏 잘하는 것일까.

이 문제 해결에 앞서 우리는 재해보상금은 대통령의 지갑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다는 상식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 만큼 피해보상금은 어느 재난의 경우에도 국민이 납득할 만한 원칙과 명분에 따라 지급되어야 한다.

이같은 원칙과 명분에 따라 제대로 된 보상을 하려면 무엇보다 태풍 피해에 대한 정확한 산정이 실시되어야 한다. 공무원에 의한 피해 산정은 비전문성과 자치단체의 선심 행정으로 과다(혹은 과소)보상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감정평가나 손해사정 업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면서 훌륭한 평판을 얻은 전문가에게 피해 산정을 의뢰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다.

더 중요한 것은 주민의 자구 노력과 추후 예방 노력이 담보될 수 있도록 보상금 지급 방침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모든 피해를 보상할 수는 없다. 선심성 '퍼주기 보상'은 피해자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것이며 다른 사람의 부담을 증가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에 한정된 얘기지만 지난해에도 노후 선박 손실에 새 선박 값으로 보상한 사례가 있다. 그래서 심지어 태풍이 올 때 선박이 파괴되기를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일은 대다수 소액 피해자에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따라서 고액 보상의 경우에는 집중 감리를 실시하여 부정과 낭비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 충분한 보상금을 지급하면 재해 대비를 위한 주민의 자구 노력이 소홀해질 것이 뻔하다.

연례적인 자연 재해가 예상되는 현실에서 주민도 피해 극소화를 위해 사전에 '성심껏' 노력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태풍이 아니라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피해를 보고도 어디 가서 사정 한번 못해보는 사람에게도 도움은 역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국가재해보상 제도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 만일 해마다 이런 일이 몇번씩 발생하게 되면 정부는 쓸 돈이 없게 될 것이다. 지난해에도 태풍 '루사'로 7조5천억원이 복구비용으로 지급되었다.

올해에도 현재까지 3조5천억원에 달하는 물적 피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부개입 방식이 아닌 시장접근 방식으로 자연재해에 대비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유력한 대안으로 선진국이 실시하고 있는 자연재해보험 도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주민으로 하여금 재해보험에 가입하게 하고 보험금의 일정액수를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을 택하면 좋을 것이다. 짐작컨대 보상액의 수백분의1의 비용만으로도 이런 일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정부 실패의 원인은 부실하고 의혹에 찬 수해복구 사업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엄청난 국민의 돈이 자치단체의 수중으로 들어가 어떤 식으로 복구되는지 조사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으니 말이다.

재난이 닥치면 무조건 정부가 직접 나서서 보상하고 국민은 성금을 거두는 '시혜복지' '성금복지'는 결코 재난 관리의 수준을 높일 수 없다.

이번 재난 피해 보상은 향후 재난 피해 보상에도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전례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전 국민의 귀추가 주목되는 사안이다. 경제도 어려운 만큼 전 국민이 납득할 만한 합리적이고 공정한 보상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전영평 대구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