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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환자들이 점수 매기니 … 서울대병원, 빅5 중 꼴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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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담당 의사가 저녁에 한 번씩 돌지만 형식적이에요. 내 병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도 물어볼 수가 없어요. 의사 선생님 한번 만나려 해도 쉽지 않아요. 정말 오래 걸려요.”

심평원, 국내 첫 ‘환자경험 평가’ #500병상 이상 92곳 1만4970명 조사 #의사·간호사 서비스 등 5개 분야 #환자 대하는 태도·소통에 불만 많아 #중앙대병원·국립암센터 종합 1·2위

얼마 전 뇌종양 진단을 받고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인 김모(65)씨는 자신을 담당한 의사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지난주 대장암 치료를 위해 이 병원에 입원한 신모(68)씨는 “말할 때 내 말을 귀담아 듣는 것 같지 않아서 불편한 점이 있어도 의사에게 대놓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신씨의 담당 의사는 매일 아침 회진하지만 짧은 시간 환자를 살핀다. 늘 정해진 질문 몇 가지를 하고 간다. 신씨가 질문을 하거나 불만을 토로할 새가 없다.

서울대병원 의사들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나 소통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서울대보다 규모가 작은 중앙대병원이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9일 의료 서비스 환자 경험 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이런 평가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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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평가는 정확히 진단하고 처치·수술을 잘 하는지 등의 의료의 질을 따진 것은 아니다. 환자를 존중하고 경청하는지, 정보를 잘 알려주는지, 진료 전후 설명을 잘 하는지, 병원 환경이 깨끗한지, 불만을 제기하기 쉬운지 등의 서비스를 평가했다.

심평원은 이번에 국내 500병상 이상 상급종합병원과 일반종합병원 92곳에 지난해 하루 이상 입원한 환자 1만4970명에게 전화를 걸어 조사했다. 의사 서비스, 간호사의 서비스, 투약 및 치료 과정, 병원 환경, 환자권리보장 등의 5개 분야에다 서비스 전반 평가를 곁들였다. 세부 항목은 24개다. 92개 병원의 평균은 83.9점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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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평가(전반적 평가) 1위는 중앙대병원(91.06점/100점 만점)이 차지했다. 종합 평가를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것인가’를 함께 물었다. 9일 병원에서 만난 이종숙(62·여)씨는 “입원한 지 두 달 됐는데 처음에 소화기내과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고 나왔다. 담당 교수가 맡더니 다른 검사를 권하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배에 가스가 차고 어지럽다고 하면 곧바로 진찰해 항생제를 처방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의사가 저의 가정형편을 고려해 CT나 초음파 등 비싼 검사는 말렸다. 간호사들도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하면 곧바로 달려온다. 쉽게 다가가서 이야기하기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중앙대에 이어 종합평가에서 국립암센터(89.19점), 인하대병원(89.07점), 서울성모병원(88.49점), 원광대병원(88.48점) 순으로 좋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충남 백제병원(74.08점)은 92개 병원 중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한림대성심병원(75.85점), 목포한국병원(75.97점), 문경제일병원(75.98점), 건양대병원(76.69점) 순으로 나쁜 평가를 받았다. 소위 ‘빅5’로 불리는 국내 5대 대형병원 가운데 서울대병원이(42위)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서울성모병원(4위), 삼성서울병원(6위), 서울아산병원(10위), 신촌세브란스병원(23위) 등에 비해 한참 뒤처졌다.

이번 평가의 5개 항목 중 환자가 가장 안 좋은 점수를 준 분야는 ‘의사 서비스’ 영역(평균 82.3점)이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88.8점)는 괜찮았다. 하지만 환자들은 의사와 얘기할 기회가 적고(74.6점) 회진시간 정보 제공이 미흡한 점(77점)에 불만이 컸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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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서비스가 가장 안 좋게 평가를 받은 데는 서울시 보라매병원(76.17점)이다. 2016년부터 보라매병원 입퇴원을 반복 중인 당뇨병 환자 유모(58)씨는 9일 병원에서 만나 “주치의가 수시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맡은 지 3개월도 안 돼 의사가 다른 병원으로 발령이 나서 내가 어떤 점이 불편한지 새 의사에게 말해줘야 했다. 의사들이 회진을 돌 때도 성의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한림대성심병원, 일산백병원, 건양대병원, 길병원이 뒤를 이었다. 서울대병원은 ‘워스트 6위’다.

평가 항목 중 ‘간호사 서비스’는 평균 88.8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존중·예의, 경청)와 의사소통(병원 생활 설명, 환자 요구 처리)을 평가하는 4개 문항으로 구성돼 있다. 1위는 중앙대병원이다. 93.75점을 받았다. 다음으로 인하대, 울산대, 강동경희대, 가톨릭관동대국제성모병원 순이다. ‘빅5’ 중에는 서울아산병원이 91.76점으로 가장 높다. 다음으로 삼성서울, 서울성모, 서울대, 세브란스병원 순이다.

투약·치료 과정 항목은 평균 82.3점이 나왔다. 의료진의 위로와 공감(78.2점)은 평균 이하로 나타났다. 이 항목에서 1위를 차지한 곳은 역시 중앙대병원(90.14점)이다. 강동경희대병원과 인하대병원, 대구가톨릭병원, 국제성모병원이 ‘베스트 5’에 들었다. 빅5 중에는 서울아산병원(11위)이 가장 높다. 삼성서울병원(19위)이 다음이다.

건양대병원, 한림대성심병원, 목포한국병원, 한양대 구리병원, 전북 대자인병원 등이 ‘워스트 5’에 들었다.

병원 환경 항목은 병원이 깨끗하고 안전한지를 따졌다. 평균 84.1점이다. 서울성모병원(92.56점)이 최상위 점수를 받았다. 국제성모병원,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포항성모병원이 뒤를 이었다.

환자권리보장 영역은 82.8점으로 공평한 대우, 불만 제기의 용이성, 치료 결정 과정에 환자 참여 기회 제공, 신체 노출 때 배려 등을 따졌다. 이 중 의료진에게 불만을 쉽게 말할 수 있는지는 73점으로 24개 세부 항목 중 가장 낮았다. 환자는 여전히 의사와 간호사에게 ‘을’이라는 뜻이다.

해외에서도 의료의 질 향상과 소비자의 선택권 강화를 위해 환자경험 평가를 시행한다. 미국은 2006년부터 매년 시행한다. 전체 퇴원 환자를 대상으로 무작위 조사를 한다. 병원별 평가 결과를 공개하고 병원에 진료수가를 지급할 때 기준으로 활용된다. 영국은 1997년, 네덜란드는 2006년 도입했다.

이에스더·이승호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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