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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나카소네 불러 광내려 했다"-정 회장|일해 청문회 장내 장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노 의원 신문 때만 수세>
10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마지막 증인으로 내세운 국회 5공 특위 일해 청문회는 여야가 역전된 느낌으로 시종.
정 회장은 모금의 강제성 여부 등 논란 점에 예상을 뒤엎고 『첫 모금 외에는 정부의 비위를 거스리지 않기 위해 냈다』면서 『기업가도 권력을 거스를 수 없다』고 특유의 투박한 어투로 시원시원하게 답변해 처음부터 의원들을 압도.
정씨는 민정당 안병규 의원의 첫 질문에 이 날 청문회가 의도했던 사실 확인을 거의 답변, 전 전 대통령에 유리한 증언을 기대한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정씨는 『기부금 낸 것을 후회하느냐』는 질문에 『기업하는 사람은 힘들게 낸 돈이라도 내고 나면 잊어버린다』고 사업가다운 면모를 과시.
정씨는 심완구 의원(민주)이 일해 재단에 대해 묻자 『「포드」나 「나카소네」를 불러다 광을 내는 곳』이라고 했고 최무룡 의원(공화)의 『천수만 간척지는 정부가 준 특혜가 아니냐』는 질문에도 『자연이 준 특혜』라고 해 장내에 폭소를 낳게 했다.
청문회를 장악해 나가던 정씨는 노무현 의원(민주)이 돈과 정치자금 주제로 재벌의 도덕성 문제를 집요하게 추궁한 설전의 교환에서 밀린 느낌.
노 의원은 『시류에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정씨의 발언이 『청소년들의 가치관에 미칠 영향이 걱정스럽다』면서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다가 권력이 퇴조하면서 입장이 바뀐 것 아니냐』고 정씨의 시류영합을 지적
노 의원은 현대의 각종 노사분규에서의 공권력이 현대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한 사례를 일일이 지적하며 『왜 그렇다고 생각하느냐』고 추궁.
정씨는 곤란한 질문엔 『내용을 보고 받지 못했다』 『법치국가에서 그런 일이 있겠느냐』고 빠져나갔고 노 의원이 독점재벌의 중소기업 침해와 노사문제처리의 부당성을 계속 따지자 『의원께서 일방적인 말만 듣고 국민들에게 현대의 인기가 떨어지도록 공격하는 인상을 받는다』고 다소 신경질적으로 응수.

<아부성 질문 연발 빈축>
네 차례의 청문회에서 증인을 죄인 다루듯 하던 야당의원들은 이 날 정씨 신문에선 노무현 의원(민주)을 빼고는 「아부성 발언」이나 정씨에 관계없는 「장광설」을 늘어놓아 국민들의 비난을 자초.
야당의원으로 첫 질문에 나선 김봉호 의원은 『우리 정 회장님』『증인 님』을 연발하면서 질문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초점 잃은 연설로 시종하다가 정씨로부터 『왜 날보고 성토하시는 거냐』고 힐난을 듣기도.
이 날 김 의원의 연설을 불만스레 쏘아보며 메모를 전달했던 김원기 평민 총무는 당 정책의장이기도 한 김 의원과 회의장 옆방에서 『그런 질문이 어디 있느냐』고 다투는 모습도 노출.
심완구 의원(민주)은 『회장님』 등의 저자세로 일관하며 『돈 낸 것 후회하신다는 솔직한 증언을 해 주셨다』고 치하하자 『그런 말 한적 없다』고 쏘아붙이자 『하하하』하고 웃음으로 얼버무려 빈축.
국회 특위의 민정당 간사인 김중권 사무차장은 『현대의 고위 경영자가 야당 측을 상대로 깊숙하고 은밀한 로비를 하는 것이 우리 당 고위 당직자의 눈에 여러 차례 띄었다』며 『이제는 5공 비리가 아니라 6공 비리를 조사해야 할 판』이라고 한탄.
김 차장은 『듣기로는 야당간부들이 소속 의원들을 불러 「정주영씨를 정중히 대하고 용어선택에 시중을 기하라」고 지시했다더라』면서 『일부 야의원들은 금강 유원지와 울주 그린벨트 유원지는 질문하지 말아달라고 민정당 의원들에게 로비를 했다』고 했고 다른 관계자는 현대 측이 자동차를 줬다는 설까지 있더라고 폭로. <이연홍·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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