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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지주회사 전환' 왜 꺼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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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업계에서 '지주회사 전문가'로 통하는 이수그룹 이희석 부장도 "지주회사를 설립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묻는 회사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홍역을 치른 두산그룹이 3년안에 지주회사로 전환하겠다고 1월에 발표 한데다, 최근 현대자동차 사태도 불안정한 지배구조 문제 때문에 빚어진 것이란 인식이 재계에 널리 퍼지면서 지주회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일보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공동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이와 반대되는 결과가 나왔다. 29개 그룹 중 불과 5개 그룹만 지주회사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계획이 있는 그룹들도 그나마 전환 시점을 평균 5년 후로 길게 잡고 있다. 이에 대해 전경련 양세영 부장은 "현행체제 아래선 지주회사로 바꿀 경우 규제를 더 받는 등 실익이 없어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말라고 권유한다"고 털어 놓았다.

◆ 무엇이 문제인가=LG그룹은 진작 지주회사로 전환한 걸 아주 다행스러워한다. 2003년 국내 대그룹 중에선 처음으로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그룹 관계자는 "지주회사가 되면서 황제 경영.불법 비자금.편법 승계 등 각종 재벌 비판에서 자유로와졌다"며 "이 때문에 경영 외적인 비용도 많이 절감됐다"고 밝혔다.

지주회사는 주식 소유구조가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로 단순하다. 계열사끼리 서로 얼키고 설킨 순환출자 등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자회사들은 자신들의 사업에만 전념하고, 지주회사는 주식 소유와 인사권을 통해 자회사를 지배한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셈이다.

사회적 인식도 좋다. 투명경영 대상(LG전자), 기업윤리 대상(LG화학), 지배구조 우수기업 국무총리상(GS홀딩스) 등 각종 모범기업 상을 휩쓸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경영 투명성과 오너의 책임성 면에서 지주회사가 재벌체제보다 훨씬 낫다"고 말했다.

지주회사는 출자총액제한 규제도 받지 않는다. 게다가 공정위는 최근 지주회사 전환 요건도 완화해줬다. 지금은 지주회사는 자기 자본만큼 부채를 가져야 하지만, 앞으로는 부채가 자본보다 두 배까지 많아도 지주회사 허가를 내주기로 했다. 자회사는 업종과 관련있는 자회사(손자회사)만 거느릴 수 있었지만 향후에는 업종 연관성이 없어도 자회사로 거느릴 수 있게 됐다. 지주회사 전환할 뜻이 있는 그룹 관계자는 "재벌에 대한 국민 정서는 상당히 나쁘지만 지주회사에 대해선 호의적"이라며 "이 때문에 지주회사로 바꾸기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그룹의 경우엔 지주회사로 전환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가령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한 회사만 자회사로 거느리려 해도 지주회사는 최소한 30조원 가량의 자산을 가져야 한다.

시가총액이 100조원 가까이 되는데다 상장 자회사의 주식은 30%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이 경우 이건희 회장 가족은 5조원 이상 투자해야 지주회사를 안정적으로 소유할 수 있게 된다(지주회사의 주식 50% 소유 및 부채 비율 200% 가정).

SK그룹이 (주)SK와 SK텔레콤을 자회사로 거느리는 지주회사를 설립할 경우에도 최태원 회장은 2조원 가까운 현금을 들여야 지주회사를 지배할 수 있다.

부채 비율 완화조치도 큰 도움이 안된다. 부채비율이 높으면 지주회사경영 자체가 어려워진다. 배당금이 지주회사의 주수입원인데 차입금 이자를 많이 물면 먹고 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LG와 GS홀딩스의 부채비율은 20~30% 대에 불과하다.

규모가 작은 그룹들에게도 지주회사 운영은 여의치 않다. 이 부장은 "큰 그룹들은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금 수입이 웬만큼 되니 먹고 살 수 있다"며 "그러나 작은 그룹들은 배당금 수입이 거의 없기 때문에 먹고 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서 작은 그룹들은 대개 사업지주회사를 선택했다. 사업을 하는 지주회사란 의미다.

2003년에 지주회사가 된 (주)이수는 소프트 페라이트 코어 제품 사업도 한다. 지난해 매출액 329억원중 상품 매출액이 250억원 가까이 된다. 반면 이수화학 등 4개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배당금 수입은 거의 없다.

대교 홀딩스도 유선방송 프로그램 공급, 온미디어는 방송사업, 다함이텍은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 제조업, ㈜STX는 항만 운송 및 에너지 관련 사업 등을 하고 있다. 반면 LG와 GS홀딩스등 대규모 지주회사들은 별도 사업을 하지 않는다. 배당금 수입 등이 많아 순수지주회사로도 생존 가능하기 때문이다.

GS홀딩스는 지난해 GS칼텍스와 GS홈쇼핑 등 4개 자회사로부터 배당 수입과 임대료를 2천억원 정도 받았다. LG는 'LG'라는 브랜드를 사용하는 전자와 화학 등 자회사로부터 브랜드 사용료로 지난해 1천350억원을 더 거뒀다.

◆ 어떻게 해야 하나=기업들이 지주회사에 매력을 느끼게 하려면 보다 쉽게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도록 요건을 대폭 완화하고 지주회사가 될 경우 이득이 더 많아야 한다.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규제로는 자회사의 지분 보유 비율이 첫 손 꼽인다. 규모가 큰 그룹일수록 대주주의 출자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 황인학 연구조정실장도 "상장회사의 경우 굳이 30% 이상 지분을 보유할 필요가 없다"며 불필요한 규제라고 지적했다.

이 부장은 "이렇게 엄격하게 규제를 하기 때문에 기존 자회사를 팔기 전에는 지주회사가 신규 투자를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지주회사가 되면 일반 기업보다 배당소득세를 대폭 감면해주는 혜택도 필요하다. 지주회사와 자회사로부터 각각 세금을 받는 것은 이중과세이므로 연결납세제도를 속히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주회사는 재벌체제와 마찬가지로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회사 형태에 불과하다"며 "정부는 모든 그룹에 대해 일률적으로 지주회사로 유인하지 말고, 그룹들이 자신 형편에 맞는 형태를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욱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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