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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엔 금가루 칠한 별자리 벽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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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달 29일 오전 호남리 사신총(四神塚). 평양에서 원산행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북동쪽으로 길을 돌려 한 시간쯤 달려 도착한 이곳에서 북한 인부들이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분단 후 처음으로 남한 학자에게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조사단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150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옛 고구려인의 웅혼한 기개를 직접 만나는 장면이다. 봉분 중턱을 한 시간에 걸쳐 1.5m 파내려 가자 무덤 입구가 나타났다. 폭 1m50㎝, 높이 70㎝의 판석이 놓여 있다. 돌을 걷어내고, 장막을 친 다음 몸을 굽혀 고분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청룡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북한 호남리 사신총(四神塚·평양시 삼석구역) 동벽의 청룡(靑龍). 대리석 벽면 위에 그림을 그렸다. 화면 전체를 입체적으로 활용한 기법이 돋보인다.

백호
호남리 사신총의 서쪽 벽면을 지키고 있는 백호(白虎·부분).

진파리 천장
금빛이 남아 있는 진파리 4호분(평양시 용산리) 천장의 병풍무늬.

◆ 영원불멸의 꿈="도굴범들도 이 길로 침입해 보물을 들고 나왔을까요." 김일성대 역사학부 이광희 교수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벽화를 제외한 유물 모두를 도둑맞은 '슬픈 역사'를 기억했으리라. 연도(羨道.널길)를 지나 주검을 모셨던 현실(玄室.널방)에 들어서니 눈앞에 현무도(玄武圖)가 나타났다. 거북의 몸체를 뱀이 휘감고 있는 형상이다. 현무는 북방을 지킨다는 환상의 동물. 고구려 벽화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강서대묘의 현무보다 운동감은 떨어지지만 뜻밖의 방문객을 경계하는 눈매는 매서웠다.

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 남쪽의 주작(朱雀)도 비교적 온전했다. 죽어서도 영원히 살아남으려 했던 고구려인의 내세관을 확인하는 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현실 벽면은 길고 굵직하게 자른 대리석을 쌓아올렸다. 틈새는 석회로 메웠다. 고구려 고분 가운데 유일하게 대리석을 쌓아 만든 무덤이다. 김일성대 역사학부 박준호 연구사는 "평양 주변에는 대리석 산지가 없습니다. 먼 곳에서 돌을 가져온 거죠. 무덤 주인의 권력이 막강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고 설명했다.

◆ 금가루도 안료로=문화재연구소 홍종욱 연구사는 지난달 23일 진파리 4호분을 둘러보고 "원시의 숲을 보는 것 같다"고 감탄했다. 안료분석 전문가인 그가 벽화의 찬란한 색감에 매료된 것. 평양 중심에서 남동쪽으로 22㎞ 떨어진 동명왕릉에 붙어 있는 진파리 4호분은 북한에서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묘'로 추정하는 곳. 이곳 또한 남한에 처음 공개됐다.

동명왕릉 인근에는 총 16기의 고구려 고분이 몰려 있다.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평양.황해도 일대에는 왕족.귀족들의 벽화고분이 70여 기 집중돼 있다. 427년 장수왕이 수도를 중국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긴 여파다.

진파리 4호분은 보존 상태가 양호하지 못했다. 천장 부분의 연꽃.병풍 무늬를 제외하곤 정확한 형태를 알기 어려웠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연도 양쪽의 연못 그림. 많이 손상돼 전체 모습은 옛 도판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열십자 모양의 금분(金粉)은 반짝반짝 빛났다. 금가루로 화면을 수놓았던 고구려인의 자신감이다. 금가루는 천장 고임돌, 천장 별자리 그림에서도 일부 보였다. 그러나 '금에 눈먼' 후세인의 손길은 잔혹했다. 금이 있던 자리를 긁어간 흔적이 뚜렷했다.

◆ 남북을 넘어서=인근 진파리 7호분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벽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던 7호분에서 흔적을 찾아낸 것. 한경순 건국대 교수가 적외선 카메라를 이용해 7호분 남벽에서 격자무늬를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먹으로 글자를 쓴 자국'으로 추정했다. 고구려 벽화고분이 하나 더 추가될 가능성이 크다.

조사에는 남북한 학자 20여 명이 참여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구려 고분의 보존 실태를 파악하고, 보다 나은 관리 방법을 모색했다. 남한에선 남북역사학자협의회.문화재연구소.일반 대학 전문가가, 북한에선 문화보존지도국.김일성대.사회과학원 관계자가 '드림팀'을 구성한 것. "남북 문화교류의 가장 획기적 사업"(유홍준 문화재청장), "고구려 고분의 원형 복원을 위한 큰 걸음"(김석환 북한 문화보존지도국장)이란 평가다.

◆ 고구려벽화=현재 전해지는 고구려 벽화고분은 약 100기.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과 중국 지안(集安), 그리고 황해도 지방에 분포돼 있다. 2004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북한의 고구려 고분은 총 63기다. 이번 조사에선 벽화가 남아 있는 고분 16기 중 8기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3세기 발생 초기에는 각종 문양.인물 풍속도가 주류를 이루다가 후기로 갈수록 사신(四神)이 많이 그려졌다.


사진= 김광섭 케이투사진연구소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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