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수험생 일괄 감점 탈락시킨 日 의대..."필요악이었다" 주장

중앙일보

입력

일본 유명 사립의대가 수년전부터 여자 수험생의 점수를 일괄적으로 깎아, 여자 합격자의 비율을 낮춰온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2010년 여자 합격자 크게 늘자 '특단의 조치' #여자 비율 30% 넘으면 그 뒤는 남자만 뽑아 #대학 측 "결혼, 출산 그만두면 문제... 필요악"

2일 요미우리 신문에 따르면 도쿄의과대가 올 2월 실시한 의학부 의학과 일반입시에서 여자 수험생의 점수를 일괄적으로 감점해 합격자수를 조절해온 사실이 학교 관계자의 증언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점수 조작은 2011년쯤부터 계속되어왔으며 “심각한 여성차별이며 시대착오적 행위”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자 수험생의 점수를 일률적으로 깎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일반 입시에서 여자 합격자 비율이 부쩍 높아지면서부터다. 이 해에는 전체 합격자 181명 가운데 여자가 69명으로 38%를 차지했다. 전년도 20% 후반대에서 10%포인트 가량 늘어난 것이다.

그러자 학교 측이 “일반적으로 여자가 우수한 학생이 많고, 정상적으로 시험을 치면 여자가 너무 많아질 수 있다”며 특단의 조치로 내놓은 것이 ‘점수 조작’이었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이 대학은 1차 시험(수학, 이과, 영어)과 2차 시험(소논문, 면접) 의 득점을 합쳐서, 성적순으로 수험생을 세운 뒤, 여자 합격자수가 전체의 30% 전후가 되는 시점에서 나머지는 전부 남자가 합격하도록 조정했다고 한다. 실제 점수조작이 이뤄진 2011년 이후 이 대학 의학부의 여자 합격자 비율은 30% 전후를 유지해왔다.

수년간 여자수험생의 점수를 조작해 합격자의 성비를 조정해온 것으로 드러난 도쿄 의대의 홈페이지. 윤설영 특파원.

수년간 여자수험생의 점수를 조작해 합격자의 성비를 조정해온 것으로 드러난 도쿄 의대의 홈페이지. 윤설영 특파원.

올해는 1차 시험에서 여자 수험생의 점수에 일정 계수를 곱해 일률적으로 감점하는 등의 방식으로 여자 합격자 수를 억제했다. 이 때문에 일반입시에서 수험생 (남자 1596명, 여자 1018명) 가운데 최종합격자는 남녀 각각 141명, 30명으로 여자 합격자의 비율이 17.5%로 뚝 떨어졌다.

이 대학의 입시요강에는 서류제출요건이나 정원에 대해서만 기재하고 있을 뿐, 남녀별 정원에 관한 언급은 없다.

대학 측은 여자 수험생의 점수를 조작한 이유에 대해 “이른바 ‘필요악’이었다. 암묵의 양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여자 의사는 결혼, 출산 등으로 일을 그만두기 때문에 병원 인력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 관계자는 “여자는 대학 졸업 후 결혼이나 출산으로 의사를 그만두는 케이스가 많다. 남자 의사가 대학병원의 의료를 지탱한다는 의식이 학내에 강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여성을 배제하는 방식은 시대 흐름을 역행하는 것일뿐 아니라 여성이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뺏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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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일본 의사국가시험의 합격자 9024명 가운데 여성은 3066명으로 34%를 차지하는 등 여성 의사 수는 증가 추세에 있다. 후생노동성은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유연한 근무가 가능한 병원을 소개하는 등 출산 뒤 여성 의사의 복직에도 힘을 쓰고 있다.

‘일본여성의료자 연합’의 다네베 쿄코(種部恭子) 이사는 “여성이 많으면 여성을 위한 환경 정비를 마련하면 되는데, 여자 합격자를 줄이면 여성의사의 근로환경 개선도 늦어진다”고 말했다.

올 2월 이 대학 일반시험을 치렀다가 떨어진 한 재수생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받는 것은 여성차별이며 너무도 슬픈 현실이다. 이렇게 해서는 의사를 지망하는 여성이 없어져버릴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번 사건은 도쿄의과대가 문부과학성 국장급 간부의 아들을 부정입학 시켜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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