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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브이, 마징가Z 모방물 아니다” 첫 법원 판결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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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규어뮤지엄W 입구에는 3m 높이의 로봇 태권브이 피규어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사진제공=박건상(프로젝트100)]

피규어뮤지엄W 입구에는 3m 높이의 로봇 태권브이 피규어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사진제공=박건상(프로젝트100)]

법원이 국산 만화 캐릭터 ‘로봇 태권브이(V)’가 일본 캐릭터 ‘마징가 제트(Z)’와 구별되는 독립적인 저작물이라고 판단했다.

3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08단독 이광영 부장판사는 주식회사 로봇 태권브이가 완구류 수입업체 운영자 A씨를 상대로 “저작권을 침해받았다”며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주식회사 로봇 태권브이는 태권브이에 관한 미술·영상 저작물로서 저작권을 보유한 회사다. 이 회사는 A씨의 회사가 제조·판매한 나노 블록 방식의 완구가 태권브이와 유사해 저작권을 침해받았다며 소송을 냈다.

이에 맞서 A씨는 “태권브이는 일본의 ‘마징가 제트’나 ‘그레이트 마징가’를 모방한 것이라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창작물이라 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실제 국내에서는 태권브이가 일본의 마징가 캐릭터를 표절한 것이라는 주장이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태권브이는 등록된 저작물로, 마징가 제트나 그레이트 마징가와는 외관상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며 “태권브이는 마징가 등과 구별되는 독립적 저작물이거나 이를 변형·각색한 2차적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태권브이는 대한민국의 국기(國技)인 태권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일본 문화에 기초해 만들어진 마징가 등과는 캐릭터 저작물로서의 특징이나 개성도 차이가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A씨는 태권브이의 표절 의혹 외에도 자신이 판매한 완구가 태권브이와 실질적 유사성이 없고, 나노 블록 완구 특성상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두 캐릭터의 가슴 부분에 새겨진 빨간색 V자 형태와 머리 위의 빨간색 뿔, 이마 부분의 머리띠 형태와 머리띠의 점 등이 거의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5월 2일 '제5회 아트토이컬쳐 2018'가 열린 서울 코엑스에 대형 마징가Z 벌룬이 설치되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2일 '제5회 아트토이컬쳐 2018'가 열린 서울 코엑스에 대형 마징가Z 벌룬이 설치되어 있다. [연합뉴스]

특히 가슴 부분의 빨간색 V자 형태를 두고 “가장 눈에 쉽게 띄는 특징으로, 가슴에 단절되지 않은 V자가 새겨진 로봇 캐릭터는 흔치 않다”며 “마징가 제트의 경우 가운데 부분이 끊겨 있고 형태도 태권브이와는 약간 다르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다양한 형태로 조립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된 조립 형태는 태권브이 모양이라고 봐야 한다”며 “주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비자가 과연 로봇이 아닌 다른 형상을 만들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1976년 개봉한 ‘로봇 태권브이’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자존심이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사실적인 동작을 위해 실제 태권도 겨루기를 찍은 화면 위에 투명한 셀룰로이드지를 대고 하나하나 모습을 따라 그렸다. 컴퓨터를 이용한 모션 캡처 기술이 없던 당시로선 파격적인 시도였다. 2006년엔 한국 로봇산업의 발전과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로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로봇등록증을 산업자원부로부터 받기도 했다.

마징가 Z는 세계 평화를 위해 싸우는 로봇 마징가 Z의 이야기로 1972년 일본 후지TV에서 처음 방영된 이후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제원은 높이 18m로 태권브이의 3분의 1이며, 무게는 20t으로 설정돼 있다. 최대 시속은 360km다. 손가락에서 날아가는 미사일, 눈에서 나오는 에너지빔, 로켓 펀치 등이 주 무기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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