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국정원장, 박선원 특보 지난주 방미…대북 제재 예외 놓고 대미 총력전 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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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국가정보원장과 박선원 국정원장 특별보좌관이 지난주 워싱턴을 찾았다.
한·미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은 31일 “두 사람이 미측 당국자를 만나 남북 관계와 북·미 대화 등 한반도 현안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이 소식통은 그러나 “정보 책임자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서 원장의 구체적 동선은 밝히지 않았다. 외교가에선 서 원장이 자신의 카운터파트인 국가정보국(CIA)의 지나 해스펠 국장을 만났고, 그간 호흡을 맞췄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도 직ㆍ간접적인 접촉을 했을 것으로 본다. 노무현 정부 때 대북 정책의 핵심 브레인이었던 박 특보가 지난 20일 갑자기 상하이 총영사 자리를 물러났던 배경엔 서 원장의 미국행이 있었다는 얘기도 돈다.

서훈 국가정보원장(오른쪽)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이행추진위원회 전체회의에 앞서 대화를 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최근 미국을 방문해 한반도 현안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다.[청와대사진기자단]

서훈 국가정보원장(오른쪽)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이행추진위원회 전체회의에 앞서 대화를 하고 있다. 이들은 각각 최근 미국을 방문해 한반도 현안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다.[청와대사진기자단]

서 원장의 이번 방문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21일)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20일)이 각각 미국을 찾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 협의한 직후 이뤄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폼페이오 장관과 비공개 전화 통화를 했다. 외교안보 라인이 미국을 상대로 총출동한 모양새다. 이를 놓고 정부가 남ㆍ북ㆍ미ㆍ중 4자가 참여하는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문제와, 남북 협력 분야에서 대북 제재 예외를 적용하는 방안을 놓고 미측을 설득 중이라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올 가을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가 대북 제재 예외 분야를 조율할 필요성이 있다는 얘기다. 정부 당국자는 “현재 상황은 물 위에 떠 있는 백조와 같은 모습”이라며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한반도 평화 체제 정착을 위한 숨 가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상하이총영사를 맡을 때의 박선원 국정원장 특보 [중앙포토]

상하이총영사를 맡을 때의 박선원 국정원장 특보 [중앙포토]

특히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는데, 두 사업을 대북 제재에서 예외로 할 수 있는지를 놓고 미국 내의 기류를 조심스럽게 타진해 보는 눈치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정부의 공식 입장은 비핵화가 이뤄져야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남북 관계에 동력이 필요하고, 북ㆍ미 대화 진전에 대비한 다양한 시나리오의 하나로 검토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북한은 이날 관영 매체들을 동원해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개성공단을 재가동하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물과 불이 어울릴 수 없듯 제재와 대화가 병행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남조선 당국이 외세 눈치를 보며 제재 압박 놀음에 매달린다면 북남관계의 진정한 개선은 기대할 수 없다”고도 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이행하려는 정부의 북한산 석탄 반입 조사에 대해서도 “황당하게 놀아대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천해성 통일부 차관의 금강산 지역 방문(1일)과 산림 병충해 방제(8일)에 동의했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북한의 대남 카드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용수ㆍ전수진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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