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만' 이냐 '아랍만' 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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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란을 방문 중인 카타르의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국왕은 3일 얼굴을 붉혀야만 했다. 이날 환송식에서 칼리파 국왕은 "아랍 페르시아만 지역의 영광과 화합을 위해 월드컵에 진출한 이란 축구 대표팀을 초청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칼리파 국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끼어들었다. "학교 다닐 적엔 국왕도 페르시아만으로 불렀을걸…. 영국에서 학교를 다녀 잘 몰랐나"라고 공격했다. 칼리파 국왕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어쨌든 이 바다는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라고 얼버무리고 자리에 앉아버렸다.

이란과 아라비아반도 사이에 놓인 바다의 명칭을 놓고 아랍과 이란의 갈등이 또 불거진 것이다. 현재 이 바다를 놓고 이란은 페르시아만, 아랍권은 아랍만이라 부르고 있다. 이 때문에 영국의 권위 있는 지도 제작사인 콜린스는 이 바다를 그냥 '만(灣.The Gulf)'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동시에 이번 해프닝은 바다 명칭에 대한 갈등을 넘어 이란 핵 사태를 둘러싸고 고조되고 있는 이란과 걸프 아랍국 간의 긴장 상황을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기도 하다. 아라비아반도의 걸프협력기구 수니파 6개국은 한결같이 이란의 핵개발 및 군사 대국화에 초긴장 상태다. 이란의 영향력이 강해질수록 자국 내 시아파를 자극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쿠웨이트.카타르.사우디 등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을 정도로 친미 성향의 정권들이다. 이 때문에 아랍국가들에서는 반미 기치를 내세우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불안한 눈길로 보고 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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