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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에 뒤지지 않는 존재감···'미스터 션샤인' 애기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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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션샤인'에서 고애신 역할을 맡아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는 배우 김태리. [사진 tvN]

'미스터 션샤인'에서 고애신 역할을 맡아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는 배우 김태리. [사진 tvN]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 내심 궁금했다. 이번 드라마의 최대 수혜자는 누가 될 것인가. 과연 이응복 PD와 김은숙 작가는 ‘태양의 후예’와 ‘도깨비’에 이어 3연속 홈런을 칠 것인가. 많은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병헌 캐스팅을 고수한 보람은 있을 것인가. 남녀 주인공 못지않은 서브 남녀의 매력 지수 상승 마법은 이번에도 통할 것인가 등등.

첫 드라마 도전한 배우 김태리 #이병헌에 밀리지 않는 존재감 과시 #데뷔작 '아가씨'서 보여준 신뢰감에 #밸런스 갖춘 연기로 팽팽함 불어넣어 #

지난 7일 첫 방송 이후 6회분까지 방영된 현재 시점에서 보면 최고의 승자는 아무래도 김태리(28)인 듯하다. 조선 최고 사대부 집안의 귀한 딸 고애신 역할을 맡은 그는 가마를 타고 다니는 순진무구한 표정의 ‘애기씨’부터 담벼락 정도는 휙휙 넘어 제치며 목표물을 명중시키는 ‘명사수’까지,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첫 드라마 도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안정적인 연기다.

김태리는 이병헌뿐 아니라 유연석, 변요한, 김민정 등 배우들과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 [사진 tvN]

김태리는 이병헌뿐 아니라 유연석, 변요한, 김민정 등 배우들과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 [사진 tvN]

김태리가 배우로서 가진 가장 큰 강점은 밸런스로 보인다. 미군 유진 초이 역할을 맡은 이병헌이 스스로 강약 조절을 통해 집중력을 끌어낸다면, 김태리는 상대 역에 맞춰 자신이 가진 모습을 끌어내는 스타일이다. 하여 이병헌과 있을 때는 적인지 동료인지 모를 호기심을 유발하는 여인으로, 백정의 자식 유연석과 있을 때는 존경하는 애기씨로, 정혼자 변요한과 있을 때는 갖고 싶은 아가씨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성별도 가리지 않아 호텔 주인 김민정과 함께 있을 때는 묘한 경쟁심을 빚어낸다.

이는 멀티캐스트 추세가 점점 더 강화되는 시점에 배우로서 필요한 자질이기도 하다. 다섯 인물이 줄다리기를 펼치는 가운데 한 명만 끈을 놓쳐도 극의 긴장감은 현저히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중 한명이 과해서 튀어 보이거나 덜해서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배우 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전체 팀으로서도 마이너스다. 쟁쟁한 배우들이 총출동해도 정작 결과물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데뷔작인 영화 '아가씨'에서도 김태리는 신인 답지 않은 연기력을 선보였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데뷔작인 영화 '아가씨'에서도 김태리는 신인 답지 않은 연기력을 선보였다. [사진 CJ엔터테인먼트]

15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2016)에 합류한 김태리는 아마 이를 본능적으로 깨우쳤을 것이다. 데뷔작으로 칸의 레드카펫을 밟은 신예라는 수식어에는 김민희ㆍ하정우ㆍ조진웅 같은 존재감 넘치는 배우들 사이에서 한 발짝만 잘못 내딛어도 모든 비난의 화살을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영화 ‘1987’(2017)은 또 어떤가. 하정우뿐 아니라 김윤석ㆍ유해진ㆍ강동원 등 피할 곳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부담될 법도 한데 김태리는 ‘미스터 션샤인’ 제작발표회에서 “연기하면서 그보다 더 축복일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선배들을 못 따라가면 어떻게 하지”란 걱정은 있어도 제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없는 것이다. “주눅 들지 않고 할 말은 하는 대담함”이라는 박찬욱 감독의 평가나 “나이에 걸맞지 않은 기특하고 정돈된 생각”이라는 장준환 감독의 칭찬 역시 같은 맥락이다. 첫발을 떼지 않았으면 모를까 한 번 뱉은 말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질 줄 아는 배우란 뜻이다.

‘노출 수위 협의 불가’라는 파격적 조건에도 ‘아가씨’의 숙희 역을 받아든 것 역시 그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연기가 노출신에 묻히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숙희의 순진함 혹은 농염함이 자신을 대표하는 얼굴로 굳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 말이다. 올 초 150만 관객을 동원하며 깜짝 흥행에 성공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이는 거의 확증에 가깝다. 누가 몸빼바지를 입고 농사일을 하는 혜원을 보고 ‘아가씨’의 숙희를 떠올리겠는가.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전작 '아가씨'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는 전작 '아가씨'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진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아가씨’의 차기작으로 ‘리틀 포레스트’를 선택한 것은 그녀가 얼마나 똑똑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재학 시절 아나운서를 꿈꿨던 그가 연습한 정확한 발음은 이 영화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내레이션을 만나 빛을 발하고, 모노드라마에 가까운 심심한 서사 역시 대학 연극동아리 4년, 극단 ‘이루’에서 3년, 도합 7년간 단련된 내공으로 메워나간다. 누군가에게는 허전해 보일 수 있는 도화지가 그녀에게는 마음껏 뛰고 구를 수 있는 놀이터가 된 셈이다. 덕분에 그는 눈빛이 좋은 배우에 이어 몸을 잘 쓰는, 혹은 소리를 잘 다루는 배우로 활용 가능 영역을 넓힐 수 있게 됐다.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겨울을 겪은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는 그녀의 내레이션은 오랫동안 마음을 붙든다. 스물여섯이라는 비교적 늦은 데뷔에 대해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름의 생각과 소신을 가지고 있을 테니 어릴 때 시작하는 것보다 메리트가 있다”는 그녀의 지론과 일치한다. 아마 ‘미스터 션샤인’이 끝날 때쯤이면 또 하나의 명대사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그녀에게 꼭 맞는 걸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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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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