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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통폐합 관련자 더 있다|국감서 못푼 "진상" 추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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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22일 국회문공위는 80년 언론인 해직 및 언론통폐합 작업의 진상 일부를 밝혔다.
그러나 이날 감사는 언론통폐합과 해직기자사태의 실마리를 푸는 몇가지 단서를 제공했을뿐 전모를 밝혀냈다고는 할 수 없다.
우선 허문도 당시 청와대정무비서관은 증언을 통해 『언론통폐합의 발상과 입안은 모두 내가 했다』고 말했다.
그는 국보위 문공분과위원으로 전두환 당시 국보위상임위원장에게 두차례, 그후 한차례는 청와대비서관으로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언론통폐합 계획을 승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가 각하되었다고 말했다.
4번째인 11월초에 전 전대통령의 결재를 받았는데 그때 계획안을 작성하는데 참여한 사람은 이광표 당시 문공장관·이수정 당시 청와대비서관 (현 청와대대변인)·최재호 당시청와대비서관(작고)이었다고 밝혔다. 허씨의 말대로라면 이들 4명이 주역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알고있는 사람은 허씨가 진실중 일부를 밝히는데 지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실제로 이광표 전장관은 『허씨의 개혁구상에 동의는 했지만 당시 장관으로서 실무작업에 직접 참여할 입장이 아니었다』고 증언하고 있고 허씨도 『결재서류를 갖고 올라갈 문공장관이었기 때문에 참여했을 뿐』 이라고 말했다.
이수정씨의 경우도 당시 허씨 바로 밑에서 직책상 실무작업을 맡았고, 최재호 비서관 역시 하명을 문서화하는 역할을 하는데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광표 장관과 이수정씨는 그후 언기법 제정의 실무책임을 맡았다.
허씨는 또 80년 언론인 해직과 통폐합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이상재 당시 언론검열단장보좌관에 대해 언론통폐합과는 무관하다고 증언했다.
허씨는 또 『통폐합문제는 고도의 보안이 필요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현직 언론인과 접촉하지 않았다』고 일부 언론계·학계인사의 배후조종설을 부인했다. 다만 체제 내 인사(신군부를 지칭) 들에게 필요성을 두루 역설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허씨는 언론인 해직문제는 『당시 국보위사회정화분과위원회에서 폭 넓은 사회정화작업을 했기 때문에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증언했다.
언론인해직문제는 이광표씨도『계엄당국에서 작성된, 해직자 명단을 문공부공보국에서 각언론사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함으로써 언론인 해직이 언론자율에 의한 것이 아님을 증언했다.
이씨는 특히 『언론통폐합에 관한 결재서류를 허씨로부터 전달받아 대통령에게 결재를 올린 후 재가된 서류를 그대로 계엄당국에 넘겨줬다』고 밝힘으로써 집행업무가 보안사에서 이루어졌음을 시사했다.
이 점은 이상재씨가 『언론사장들을 모셔온 날(11월12일)아침 보안사정보처장(권정달)을 만났더니「지시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함으로써 확인됐다.
22일 증언만을 놓고 보면 통폐합의 구상·입안은 허문도씨를 비롯해 당시 실세들, 실무작업은 허씨를 비롯해 이수정·이광표·최재호씨 등, 집행업무는 보안사정보처의 권정달처장및 .각 지역 보안부대장으로 압축된다. 언론인 해직은 국보위사회정화분과위 (위원장 김만기) 의 허삼수 간사 등 핵심멤버와 문공부의 이수정 당시공보국장 (직후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전출)등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허씨가 증언한 7, 8월 이전인 6월6일 국보위에서 오자복 국보위문공분과위원장, 허문도·김행자 문공분과위원과 보안사의 허화평 비서실장, 허삼수 인사처장, 이학봉대공처장, 권정달 정보처장 등이 모여 최초로 언론통폐합을 논의한 증거가 있다. 이 모임에 참석한 사람 중 한명이 논의의 내용을 듣고 놀라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이들에게 언론통폐합·사이비기자 정리 필요성을 역설한 언론계·학계인사가 여러명 있었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통폐합이후의 언론판도·5공화국에서 발탁된 언론계출신 인사들의 면모를 잘 분석하면 심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씨 자신도 체제 내 인사들로부터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음을 증언함으로써 당시의 개혁실세들이 연줄연줄로 이미 방침을 굳힌 가운데 허씨가 선봉에 섰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언론계인사들의 참여설에 대해 허씨는 완강히 거부하고 있지만 이상재씨는『보안사와 같은 문외한들이 어떻게 했겠느냐. 전문가들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는 요지의 발언을 여러차례 함으로써 언론학자들과 언론계 인사들이 참여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
당시 청와대의 한 고위인사는 『개혁주도세력에 참여하려고 했던 현직 언론인들이 있었다』고 말해 언론인들이 여러 루트를 통해 허화평·허삼수·이학봉·권정달씨 등 소위 「대령들」과 「특별한」접촉을 가졌음을 시사했다.
태평회에 언론인들의 참여여부가 의혹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이같이 불확실하게 남은 부분은 앞으로 계속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공위도 22일 감사에서 미비된 점을 시인, 앞으로 청문회를 열어 계속 진상을 파헤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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