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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SBS '연애시대' 엉뚱녀 지호 역 이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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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사진=김성룡 기자]

부정적인 생각 때문에 취직을 못하는 게 아니냐는 남자의 말에 여자는 고개를 떨군다.

남자: 왜 그래? 너도 네 인생은 아르바이트 인생이라고 농담하고 그랬잖아.

여자: 내가 말하는 거 하고 남한테 듣는 거 하고 같아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며) 잔인한 사람.

정말로 미안해진 남자가 사과한다.

여자: (환한 표정으로 돌변해서) 그럼 그 미안한 마음을 담아 양념 꼬치?

이 여자, 정말 종잡을 수 없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알바(아르바이트) 청춘이지만 절대 기죽지 않는다. '빈대붙는' 데 일말의 주저함도 없으며, 먹을 것에는 사족을 못 쓴다.

SBS-TV 월화드라마 '연애시대'(극본 박연선.연출 한지승)에서 손예진의 여동생 지호 역을 맡은 이하나(24). 언니 은호와 형부 동진(감우성 분)의 재결합을 위해 형부의 친구 준표(공형진 분)와 고군분투하면서 점차 준표와 사랑에 빠지는 역이다. 지호의 엉뚱 연기를 보기 위해 드라마를 본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그의 연기는 풋풋하면서 감칠맛이 난다. 2일 경기도 안성의 드라마세트장에서 그를 만났다.

가까이에서 보니 김하늘을 닮았다는 느낌이 더욱 굳어진다. "김하늘 선배, 손예진 선배를 합쳐놓은 것 같다는 말들을 하시는데, 괜히 선배들께 누를 끼치는 것 같아 죄송해요."

이런 말을 할 때 보니 드라마 속 지호는 어디론가 숨어버린 것 같다. 사실 본인은 지호와는 정반대의 성격이란다. "사실 저는 생각과 걱정이 많아요. 지호처럼 넉살이 좋거나 엉뚱하지도 않고요. 하지만 '즐겁게, 자유롭게 살자'는 인생철학은 같아요."

사실 그는 대단한 행운아다. 활동 경력이라곤 광고 1편이 고작인데, 첫 드라마에서 독특한 캐릭터로 시청자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어디서 그런 천연덕스러운 연기가 나오는 걸까.

"처음엔 얼마나 많이 NG를 냈는데요. 부끄러움을 떨쳐버리려 자기최면을 걸어요. '난 지호가 될 수 있다'고. 그리고 지호 역을 연구하기 위해 심리학 책도 뒤적거려요."

그를 연기의 길로 이끈 이는 선배 공형진이다. 같은 소속사인 공형진이 쓸 만한 후배가 있다며 그를 한 감독에게 소개했던 것. '카메라 공포증을 반드시 극복할 테니, 믿어주세요"라는 읍소로 오디션을 통과할 때만 해도 그가 선머슴 지호 역을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낼 거라고 아무도 믿지 않았다.

지금은 당당한 신인 연기자로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그는 가수 지망생이다. '먼지가 되어'를 작곡한 이대헌씨가 그의 아버지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기타 치며 노래부르던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가수가 되려고 전공도 생활음악을 택했죠. 음반 취입을 준비하던 회사가 문을 닫는 바람에 가수의 꿈이 조금 멀어졌어요. 하지만 실망하지 않아요. 언젠가 다시 기회가 올 거라고 믿고 곡도 쓰고, 노래 연습도 해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떠났던 한달여의 유럽 배낭여행이 삶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많은 것을 느낀 여행이었어요. 긍정의 힘 때문인지 갔다 왔더니 일이 술술 풀려 새 소속사에 들어가게 됐고, 한 달 후에 바로 지호 역을 얻었지요."

사람들은 왜 지호에게 열광하는 걸까. 그의 해석은 이랬다. "지호는 해석이 독특하고, '까짓것, 뭐가 그리 어려워' 하는 정신으로 살아요. 다들 지호처럼 살길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그런 욕구를 지호가 대리만족시켜 주는 게 아닐까요."

그는 당분간 연기에 전념하겠지만, 때가 되면 대중성과 음악성을 함께 갖춘 보사노바 음악을 선보인다는 포부다. 촬영장으로 향하는 그에게 드라마 속에서 준표와 잘될 것 같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잘 될 거예요. 지켜봐 주세요. 아자! 아자!" 그는 다시 지호가 돼 있었다.

안성=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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