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태평양국과 손잡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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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련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진출에 대한 구상이 최근 들어 부쩍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지난 달말 소련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국대표까지 초청, 태평양경제협력회의를 여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음은 이 회의에 참석했던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제럴드·시걸」연구원의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지의 기고를 요약한 것이다.【편집자 주】
「고르바초프」의 집권 전까지만 해도 소련 사람들은 태평양지역에서 「협력」문제가 거론되면 이는 미국과 일본이 이 지역에 자본주의를 침투시키고 소련과 그 동맹국들을 고립시키려는 음모로 파악해 뫘다.
그러나 그후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지난달 16일 시베리아 크로스노야르스크에서 행한 「고르바초프」서기장의 연설은 지난 86년 7월 소위 블라디보스토크선언에서 밝힌 기본 아이디어 즉 소련은 현재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보다 큰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는 희망을 되풀이 한 것이다.
중국도 이 같은 소련의 희망을 알고 있다. 소련은 중소관계 정상화를 위한 제스처로 86년이래 중소국경 주둔군을 크게 감축하는 등 몇 가지 양보를 해왔다.
동남아 국가연합 (ASEAN) 국가들도 소련이 최근 베트남에 캄푸치아 주둔군을 철수토록 압력을 가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호주 정부도 「고르바초프」집권이래 소 태평양함대의 대양주에서의 기동훈련이 반으로 줄어든 것으로 보고있다.
일본정부 또한 일소간 분쟁의 씨앗인 소 점령 북방도서의 반환문제에 소련이 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태평양 국가들은 「고르바초프」의 소 정부가 이 지역에 「새로운 아이디어들」 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북경정부는 모스크바와의 관계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그 이유는 중국이 참다운 의미의 독립외교노선을 추진하기 위해선 소련과의 데탕트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본 역시 소련의 개혁정책으로 대미의존을 줄이면서 세계무대에서 영향력을 넓힐 수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ASEAN국가들도 이 지역에 소련이 참석함으로써 미국·중국·소련이 세력균형을 이루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소련의 경제개혁은 「고르바초프」의 의도만큼 빨리 추진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만이 소련과의 경제협력의 이점을 인식해 왔다.
중소 무역은 최근 크게 늘고 있으며 중국은 국경 넘어 시베리아 지역의 공장 및 농장에 노동자 1만명을 보내기로 소련과 합의했다.
「고르바초프」의 다음 목표는 일본이다. 일소는 이미 몇몇 합작사업 추진에 합의했으나 무역은 침체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소련은 두 나라 경제가 서로 보완적임을 지적하고 있다.
소련은 일본이 필요로 하는 자원이 풍부하고 일본은 소련이 필요로 하는 첨단산업의 선두주자다.
태평양지역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유지하는데 소련의 실질적 문제는 국내 개혁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냐에 있다.
소련은 태평양 연안지역에 약 8백만명의 인구를 갖고 아태지역 총 생산량의 1%정도를 그 지역에서 생산하고 있다.
태평양 지역국가들과의 교역은 소련의 대외교역량의 10%에 못 미친다.
태평양지역에서의 경제적 위치를 개선하고자 애쓰는 소련의 많은 당면문제들을 소련자신도 인식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들은 소련과학아카데미 주최로 10월 1일부터 3일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태평양협력국제회의에서 밝혀졌다.
그러나 가장 그럴듯한 해결방안은 실행이 가능하다 해도 적어도 10년 후에나 가능한 것이다.
해외투자가들을 유치하기 위해 소련은 고 임금 인센티브로 이 지역에 국내·외 노동력을 유입시키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중국의 개방경제특구와 같이 특별과세와 투자법이 적용될 개방 특구가 계획되고 있다.
여기엔 소련의 원자재를 가공하는 산업에 현대적인 과학기술의 하부구조를 제공하는데 역점이 주어질 것이다.
한국과 싱가포르가 이러한 투자의 새로운 파트너로 여겨진다.
소련은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이 일본에 비해 구조적인 면에서 보다 적합할 것으로 보고있다.
향후 태평양경제에 있어 소련의 역할을 회의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10년 전 중국에 대해서도 이 같은 회의가 있었으나 중국은 현재 태평양 무역국가중 5위를 점하고 있다.
소련은 호주와 캐나다처럼 원자재 및 가공품 수출과 기술 수입국으로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소련의 희망은 블라디보스토크가 태평양의 두 중요 경제국인 일본과 중국의 바로 이웃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 이점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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