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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 아프리카를 달린다] 下. '기회의 땅' 누비는 젊은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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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남자들도 선뜻 가기를 꺼리는 적도의 땅 아프리카를 무대로 20대 여성이 2년째 뛰고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옛 자이르)의 기간통신 사업체 콩고코리아텔레콤(CKT)의 성희진(24)대리. 그는 오늘 아침에도 CKT 건물 3층 직원 숙소에서 일어나 변함 없이 사옥 주변을 한바퀴 뛰었다.

"모기.향수(鄕愁)와 싸우며 일한다. 아프리카에서 생활하려면 건강 관리를 잘해야 한다."

수도 킨샤사에서 땀흘리는 한국인 직원 19명 중 홍일점인 그가 콩고에 온 것은 지난해 8월. CKT의 대주주인 서울 고명통상에서 일하다 이곳에 와 자금관리 업무 등을 맡고 있다. 6개월여 만인 올 3월 말라리아에 걸려 사흘 동안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대학 때 전공인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이고 보통 사람은 경험하기 힘든 곳이라고 생각해 도전했다. 지난해만 해도 물건을 사러 가면 중국인이냐고 물었는데 요즘은 코레앙(한국인) 아니냐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더구나 한국이 콩고에 초고속인터넷을 보급한다는 것을 안다고 말해줄 땐 말라리아에 걸려 괴로웠던 기억도 싹 가신다."

아프리카를 '기회의 땅'으로 보고 누비는 코레(한국)의 젊은이들. 오늘도 풍토병과 낯선 문화를 헤치며 달린다.

LG전자 모로코 판매법인의 홍기환(35)과장은 2000년 9월 부임하자 마자 현지의 상거래 문화에 당황했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계약을 위한 상담이 아니라 이것저것 해달라고 떼쓰는 식이다. 의견이 맞지 않자 'LG 지사에 감금됐다'고 경찰에 신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익숙해져 같이 떼를 쓰며 맞서기도 한다."

홍과장은 "LG 제품이 일본 소니보다 비싸게 팔리는 것이 지난 3년의 가장 큰 변화"라고 자랑했다.

인터넷 관련 벤처기업인 삼정데이타서비스 오충용(38)사장. 그는 직원들이 꺼리는 아프리카 출장을 운동화에 배낭 차림으로 직접 다닌다. 벌써 세 차례 아프리카를 다녀왔다.

올 초 아프리카 통신시장을 살피러 온 초행길에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환자로 오인되는 소동을 빚었다. 일주일에 한 알씩 먹는 말라리아 예방약을 매일 먹었다가 탈이 난 것.

남아프리카공화국 공항에서 콩고행 비행기로 갈아타는 과정에서 심한 구토를 했고, 의료진이 긴급 출동해 그를 격리하고 공항을 이틀 동안 폐쇄했다. 그는 사스가 아닌 것으로 판명돼 곧 풀려났지만, 한동안 홍콩과 중국 여행객은 남아공에 입국하지 못했다.

이런 소동에도 불구하고 吳사장은 "중소 정보기술(IT) 업체에 아프리카는 기회의 땅이다. 병역특례 혜택을 받은 젊은이들의 일부를 아프리카로 진출시켜 시장을 개척하자"고 제안했다.

그의 전략은 이렇다. "아프리카에는 인터넷망이 없다. 수도의 일부 지역에 몰려 있는 외국 기업들은 비싼 돈을 주고라도 인터넷을 쓰려고 한다. 우리 업체가 보유한 기술이라면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설비 투자를 해 인터넷 사업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가봉.코트디부아르 등에서 CKT와 함께 인터넷 서비스를 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吳사장은 다른 일도 생각하고 있다. 콩고에서 생리대 사업을 하겠다는 것. 아프리카 여성들은 원래 펑퍼짐한 치마를 입었는데, 최근 청바지 등 몸에 붙는 옷이 유행하고 있다.

아직은 여성들이 헝겊을 사용하지만 그는 머지않아 얇은 생리대 수요가 폭발할 것으로 본다. 면이 싼 이웃 앙골라에서 원료를 들여와 현지에서 생리대를 제조.판매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한국인의 활약에 큰 힘이 되는 현지인도 있다. 한국어가 유창한 CKT의 오닐 목거리(48)이사는 회사에서 '오이사'로 불린다. 고명통상이 기간통신 사업권을 따기 위해 콩고 정부와 협상할 때 고위 관료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한국 IT 기술의 우월성을 역설했다.

그는 1985년부터 한국에서 공부한 '지한파(知韓派)'. 외교관인 부친을 따라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닐 때 '앞으로 극동 국가가 세계 경제의 중추가 될 것'이라는 교수의 말에 한국을 선택했다. 일본도 생각했으나 한국과 일본을 몇 차례 방문한 부친이 '일본보다 한국인들 마음이 따뜻하다'고 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그는 연세대에서 학부부터 다시 시작해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부하는 틈틈이 아프리카와 교역하는 한국 업체의 일을 돕다가 고명통상과 인연을 맺었고, 조국인 콩고에서 통신사업을 하는 데 한몫하게 된 것이다.

"생활필수품을 만드는 기업이 없다는 게 콩고의 가장 큰 문제다. 원목이 풍부한데도 제지 공장이 없어 나무를 수출하고 종이는 수입하는 바람에 종이 값은 한국의 두 배다. 콩고에 생필품 공장을 지으려는 한국 기업이 있다면 적극 돕겠다." 오이사의 야무진 포부였다.

킨샤사.요하네스버그=양재찬 경제전문기자.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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