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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韓日 싱크탱크, 친구가 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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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1990년대 일본이 '잃어버린 10년'동안 시달리면서 또 하나 잃은 것이 있다면 바로 싱크탱크 기능일 것이다. 정부와 많은 기업이 금융.재정 위기에 몰려 싱크탱크를 포기하거나 활동 규모를 축소했다.

그 결과 지금은 외교 안보와 관련된 싱크탱크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가 되고 있다. 지금은 외무성 외곽 단체인 일본국제문제연구소(JIIA)와 방위청 외곽 단체인 평화안보연구소(RIPS) 등 몇 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워싱턴의 미 국제경제연구소(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s)에서 1년간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싱크탱크의 위력을 뼈저리게 느꼈다. 연구소장인 프레드 버그스텐의 활력 넘치는 지적 기업가 정신은 적극적인 연구환경을 조성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이를 정책으로 연결시켰다. 정부와 의회의 정책 입안자들과 언제든지 자유롭게 만나 정책 아이디어의 현실성을 점검했다. 그곳은 신(新)정책의 이스트균을 발효시키는 못자리(苗床)나 다름없었다.

나는 80년대 엔.달러.독일 마르크의 환율 변화에 대해 연구했는데, 당시 그곳에서 통상시스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던 조순(趙淳)교수(이후 서울시장을 지냈다)를 비롯해 많은 외국 연구원과 의견을 교환하며 친분을 쌓은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런 싱크탱크의 기능은 조셉 나이 미 하버드대 교수가 주장하는 '소프트 파워'라 할 수 있다. 군사력을 앞세우는 하드 파워와 달리 소프트 파워는 상대방을 몰아붙이기보다 끌어들이는 개념이다.

장기적으로는 상대방에게 깊숙이 접근해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사상 혹은 아이디어도 받아들이는 등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미국을 대표하는 또 다른 싱크탱크로는 미 외교평의회를 꼽을 수 있다. 나 역시 그곳에서 의견을 발표할 기회가 몇차례 있었는데, 그때마다 적절한 시점에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외교평의회의 예리한 정치.외교 센스에 혀를 내두르곤 했다.

레즐리 겔브 이사장은 취임 후 새로운 주제가 나올 때마다 태스크 포스를 구성해 기동력을 강화했다. 그런 그가 얼마 전 뉴욕에서 고별 심포지엄을 연 뒤 자리를 떠났다.

"싱크탱크를 경영하려면 지적인 면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최근 극단적인 사고방식들이 횡행하면서 초당파적인 정책 입안이 더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평의회는 끝까지 초당적 자세를 유지해왔습니다. 나는 이런 노력이 우리에게 중요한 사회적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는 겔브 이사장의 고별사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일본의 싱크탱크를 활성화시키는 한가지 방법으로 외국과의 적극적 연대를 제언한다. 우선 모든 정책자료들을 영어로 발표해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인과 연구원들을 초빙하는 등 싱크탱크를 세계 수준에 맞춰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조금 더 가까워져야 한다. 세계 유수의 싱크탱크인 런던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소장에 영국인이 아닌 독일인이나 프랑스인.캐나다인들을 대거 임용한 것처럼 일본 싱크탱크들도 한국의 우수한 식자들을 소장이나 연구원으로 초빙하는 것은 어떨까.

한국과 일본이 함께 연구해야 할 주제는 많다. 대략 떠오르는 것만 꼽아도 ▶한.중.일 3자주의의 의의와 목적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다자주의적 틀을 포함한 미래 비전 ▶동해의 문명적 프런티어 ▶미래의 미.일 동맹, 한.미 동맹과 한.미.일의 안보협약 등이 있다.

겔브 이사장의 고별 심포지엄에서 회원 한명이 감사의 뜻을 표했다. "당신은 외교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여러 다리를 구축했습니다. 개혁파와 보수파 사이의 다리, 신.구 세대를 잇는 다리, 그리고 일반 시민과 군인들을 잇는 다리를 말합니다.

나는 여러 계층과 조직을 하나로 묶어온 당신의 업적을 높이 평가합니다." 한.일 싱크탱크에도 새로운 다리를 구축하자. 한국과 일본이 만들어내는 아이디어를 전세계에 전파하기 위하여.

후나바시 요이치 日 아사히신문 대기자

정리=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