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준엄한 고발의식과 절제된 연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연극적 인연으로는 잘 맺어지지 않을 듯한 작가 정복근과 연출가 임영웅이 이 작품을 축으로 서로의 세계에 진폭을 더한다. 가정문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사회의식이라고 말하면 거창해지지만 작가는 밖으로 목소리를 높이러 하고 연출가는 안으로 소리를 다져 들이려 하는 긴장이『덫에 걸린 집』의 연극적 재미다.
이 작품에서는 역사의 세 가지 정점에서 성폭행과 도덕이라는 사회적 규범이 어떻게 인간을 타락시켜 가는가를 보여준다. 아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날카롭게 질문된다. 작가는 질문하려 들고 연출은 그저 보여주러 한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비 겁과 교활 이 보여지는 것 자체도 괴롭고 부끄러우며 질문 받는다는 사실자체는 고문처럼 아프다. 우리가 역사 속에 묻어 버렸던 과거의 망상-임진왜란 때 왜놈들의 손에 붙들려 능욕 당했던 여인들의 수모와 차단 당했던 그녀들의 가정복귀 사이에 독 묻은 칼날을 번뜩인 성 모럴이라는 가치체계의 허구성은 일제시대의 이른바 정신대라는 이름의 조직의 희생양이 된 여인의 경우에도 해당되고 급기야 현대사회의 철면피한 가정파괴 범들의 성폭력이라는 구속적 모순 속에도 엄존 한다.
당연히 피해를 본 여성들은 역사에 대해서, 사회구조에 대해서 항의해야 한고 그 항의가 부끄럽고 고통스런 기성의 역사와 사회는 여전히 외면하며 없었던 사실로 덮어두려 한다. 없었던 사실로 얼버무리려는 음모가 무대정면에서 진행될 때마다 극중에서 한의 가락인 구음이 역사와 사회의 신음처럼 울려 퍼지고 사막 뒤로 제물인 여인이 일어나 간증을 한다.
그녀가 어머니(김정 분)라는 사실로 해서 오늘이 시대의 피해 당사자인 아내(김순이 분)와, 남편(정동환 분)및 시누이(연운경 분)사이가 너무 인위적으로 꾸며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차피 작가에게 있어서 성폭력의 희생자들이 여인뿐이라는 사실이 날카롭게 고발되어야 한다면 그런 희생자의 고통과 소외와 함께 근거 없는 도덕적 규범으로 지탱되어 나온 결혼제도라는 남녀의 관계나 사회구조의 모순을 보여 주어야 하는 연출가의 의도는 기성 가치관의 도덕률에 얽매인 인간군상을 그저 보여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산울림 극단의 앙상블은 믿을 만하고 작가 세계는 치열하고 연출의 흐름은 절제되어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