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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의 反 금병매] (13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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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채태사는 송나라 휘종의 권신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태사(太師)라는 벼슬은 그 당시 문관 중 최고의 지위로 정삼품에 해당하였다.

휘종은 원래 서화에 뛰어난 예술가로서 8대 황제의 자리에 오르긴 하였지만 정치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황제 못 해먹겠다는 소리가 곧잘 튀어나오곤 하였다. 황제 못 해먹겠다는 소리는 사실 송나라 태조인 조광윤의 입에서 처음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광윤은 후주 친위군으로서 남침하는 요나라 군사들과 대군을 거느리고 싸울 때에 진교역에서 장군들로부터 황제로 옹립되었다. 수도인 개봉으로 돌아와 일곱 살 난 황제 공제로부터 선양 형식을 빌려 제위를 찬탈하였다. 소위 무혈혁명에 성공한 것이었다.

그렇게 황제의 자리를 강제로 차지하였으므로 조광윤은 부하들 중에 자기 자리를 노리는 자가 있지 않을까 늘 불안해하였다. 하루는 심복인 조보에게 자신의 심중을 털어놓았다.

"역사를 보면 나라들도 수시로 바뀌고 황제들도 이 가문에서 저 가문으로 자주 바뀌고 있소. 그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오? 황제의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있는 비법은 없겠소?"

조보가 대답했다.

"세상이 이렇게 어지럽고 정권이 자주 바뀌고 하는 것은 군인의 권력이 황제의 권력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군인들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그들의 병력과 재물과 군량미들을 폐하의 손에 넣는 길만이 황제의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있는 비책입니다."

며칠 후 조광윤은 자신을 황제로 옹립해준 석수신을 비롯한 장군들을 초대하여 술자리를 벌였다. 모두 기분좋게 술을 마시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조광윤이 심각한 얼굴로 맥없이 중얼거렸다.

"그대들이 옹립해주어 황제가 되었지만 황제 자리가 그리 즐거운 것이 아님을 이제 알게 되었소. 밤에 안심하고 잠을 잘 수도 없으니 정말 황제 못 해먹겠소."

장군들은 조광윤을 황제로 옹립해주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황제가 그런 소리를 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폐하,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제 못 해먹겠다니요?"

"황제 자리가 이러한데도 세상 남자들 중에 황제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폐하의 지위는 이미 하늘이 정해주신 것이라 거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가령 말이오, 그대들은 추호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겠지만, 그대들의 부하들이 야심을 품고 그대들을 황제로 옹립하면서 면류관을 내밀면 어떻게 하겠소? 그래도 고개를 저을 수 있겠소?"

그러자 석수신을 비롯한 장군들이 눈물을 흘리며 조광윤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 사태가 오지 않게 하려면 저희들이 어찌 해야 되겠습니까?"

조광윤이 한숨을 한번 길게 쉬고 나서 말했다.

"사람의 일생이란 백구과극(白駒過隙)이오. 흰 망아지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듯이 그렇게 빨리 지나간단 말이오. 그러니 인생을 그저 즐겁게 사는 것이 제일이오. 취당생(趣當生)이라고 한 양자 선생의 말씀이 백번 맞는 말씀이오. 나도 황제가 아니라면 인생을 그렇게 살다 가고 싶소. 그러니 그대들은 장군 자리에서 물러나 내가 후사하는 땅에서 멋있는 집을 짓고 매일 노래하고 춤추며 여생을 즐겁게 보내도록 하시오. 다시 말하건대, 내가 누리고 싶은 삶이 바로 그러한 것이오."

그리하여 개국공신이라 할 수 있는 장군들은 순순히 병권을 포기하고 한적한 지방으로 다 내려가고 말았다. 조광윤은 황제 못 해먹겠소 하는 한 마디로 병권을 장악하고 중앙집권제를 더욱 강화하였다. 그러나 휘종은 그런 계책을 가지고 황제 못 해먹겠다 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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