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기 왕위전] 동상이몽이 만들어낸 절묘한 타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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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제37기 왕위전 도전5번기 제4국
[제2보 (21~45)]
黑. 왕 위 李昌鎬 9단 | 白. 도전자 曺薰鉉 9단

曺9단의 도발에 李9단은 어떻게 대응할까. 사실 전보 백◎ 두 수는 하수 다루기 수법의 냄새가 강해서 참을성 좋은 李9단이라도 기분이 상할 수 있다.

검토실의 많은 프로가 궁금증을 안은 채 하회를 기다리고 있을 때 李9단의 21이 조용히 놓였다. 이 수는 평범하고 수비적이다. 그리하여 27까지 李9단은 전혀 동요함이 없이 자신의 진영을 지킬 뿐이었다. 검토실의 젊은 프로들과의 대화.

-백의 목적은 달성됐나.

"하변 흑은 튼튼한 곳이다. 그곳이 더 튼튼해져봐야 백엔 피해가 없다. 좌변을 키운다는 백의 목적은 달성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흑은 왜 고분고분 따라준 것일까.

"백은 28이 불가피하다. 그때 좌변을 29로 갈라쳐버리면 백모양이 별게 없다고 본 것이다. 즉 흑은 선수를 잡을 수 있기에 백이 원하는 대로 해준 것이고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동상이몽은 흔하다. 이것은 시각의 차이이자 취향의 차이일 수도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타협이란 게 가능해진다. 아무튼 백은 잃은 것 없이 좌변을 키워서 만족이고 흑은 선수를 잡아 29로 갈라쳤기에 만족하다. 절묘한 타협이다.

그런데 또하나의 의문이 뭉게구름처럼 일어난다. '참고도'를 보자. 백1 쪽에서 압박하는 것이 집으로 유리하고 백?의 의도를 살리는 길이 아닐까. 그러나 이것은 전형적인 '하수의 의문'이라고 한다. '참고도'는 흑6에서 쉽게 수습이 된다.

세력은 집짓는데 쓰는 것보다 실전처럼 30, 32로 공격하는 것이 통상적으로 남는 게 많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李9단의 기동성이 빛을 발했다. 33과 35가 적절했다. 그리고 37의 희생타로 39의 선수를 확실하게 한 다음 손을 빼고 현 국면 최대의 요소라 할 상변(41)을 차지했다. 흑의 한발 앞선 포석이 조용히 완성되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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