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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장식은 백제 마구는 신라 숨결|후지노키 고분 주인공은 누군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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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5면

일본 후지노키 고분의 석관뚜껑이 열리고 그 속에서 금동제 신발과 영락·어패 등 한국적인 특성을 지닌 유물들이 많이 나옴으로써 그 무덤의 주인공이 한국으로부터의 도래 인이냐, 또는 당시 일본에 한국이 어느 만큼 영향을 키 쳤는가 하는 문제들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고고학자들은 일본발굴단이 유물을 막 수습한 단계에서 유물의 성격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있고 사진 등도 아직 공개하지 않은 시점이어서 유물을 통한 그러한 문제에 대한 규명은 아직 단정을 내리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고고학자 김원룡 박사(동아대교수)는『일본학계가 후지노키 고분 유물을 비슷한 시대의 다른 일본고분유물과 비교 연구하여 그 성격을 밝혀 나갈 것으로 본다』면서『이미 발굴되어 공개된 마패 등에서 한국적인 특성이 충분히 나타난 만큼 한국고고학자들의 연구성과나 견해에 대해 일본학계의 관심이 클 것이고 따라서 공동연구의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 박사를 비롯한 국내 고고학자들의 이 같은 신중함은『피 장음가 도내인과 깊은 관계에 있다』거나『한국계 유물이 틀림없다』는 단계를 넘어서 한국문화의 일본 유입에 있어 후지노키 고분은 어떤 단계에 있는 것인가를 유물들을 통해 밝혀 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이 점은 일본학계의 많은 사람들도 동의하고 있는 일이다.
김원룡 박사는 후지노키의 문화는 한국계이지만 많이 일본화 된 상태로 보고 있다. 후지노키 고분의 무덤 구조인 석실분은 그 출발점이 분명히 백제의 것이나 많이 일본화 했으며 특히 석관은 완전히 일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무덤의 주인공은 도내 인이더라도 2∼3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후지노키 고분문화가 백제 쪽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8일 수습된 유물 중에서 금 동으로 만들어진 많은 장식영락이 나온 것이고 근거다.
김 박사는 그 같은 장식이 백제무령왕릉유물에서 6백여 개나 나왔다고 지적했다.
김기웅 문화재전문위원은 금동 신발을 자세히 검토하면 고구려·백제 계와 신라·가야 계를 구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국립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는 고구려 금동 신발과 익산립점리·나주반남면신촌리·9호 분 등에서 나온 금동 신발은 바닥에 못이 박혀 있으나 신라·가야 계는 못이 없다고 지적했다.
경주 호간(호헌)총·은검총·금관총·식리총·천마총 등에서 나온 신라 금동 신발과 대구비산동·내당동·칠곡황유리 고분 등 가야계통의 것은 못이 없고 장식과 문양이 독특하게 나타난다는 것.
김씨는 지난번에 나온 마패의 문양과 형태로 볼 때 신라 쪽의 영향이 더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후지노키 고분에서 나온 마패(안장)는 그 속에 새겨진 문양이 구갑 무늬의 틀 안에 용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신라 계의 한 특징이다. 또 안장의 뒤쪽(후교)에 손잡이가 있는 것은 신라출토품과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학계의 관 식은 두개의 금 동제 칼에 집중되고 있다. 앞으로 X선 촬영 등을 통해 표면에 명문이 확인된다면 후지노키에 대한 설명은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현재로서 후지노키 고분에 대한 국내학자들의 추정은 후지노키 고분 문화가 한국계임에는 틀림없지만 상당히 일본화 한 단계에 이른 것이라는데 모아지고 있다.
금동 마패 같은 것은 바로 한국에서 건너갔거나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지만 나머지 유물들은 일본화 된 양상을 띠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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