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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임직원 자리의 벽 없애…소통·협업의 장 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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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로자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은 2016년 기준 2069시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35개국 가운데 멕시코 다음인 두 번째로 많다. 그만큼 우리나라 근로자는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는 얘기다. 하루 중 최소 8시간을 보내는 곳이지만 사무실은 좁고 불편한 공간으로 인식된다. 최근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일터가 변화하고 있다. 업무 효율과 만족감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사무실이 등장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시대’의 오피스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워라밸 시대 오피스 풍경

서울 서교동에 위 치 한 한 일네 트웍 스 DSC사업부 사옥은 카 페 같은 인테리어가 특 징이다.

서울 서교동에 위 치 한 한 일네 트웍 스 DSC사업부 사옥은 카 페 같은 인테리어가 특 징이다.

이달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작되면서 요즘 ‘워라밸’이 화두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유연근무제·탄력근무제·PC오프제 등을 도입하며 근무시간 단축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제2의 집’이나 다름없는 사무실의 환경을 바꾸려는 움직임도 늘어나는 추세다. 사무 환경은 단순히 심미적 기능뿐 아니라 구성원의 태도, 동기부여, 조직 문화를 변화시키는 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직장인 67% “현재 사무 환경 불만”

사무 환경 전문기업 퍼시스가 한국리서치와 공동으로 사무직 종사자 1000명을 대상으로 사무 환경에 대한 인식 및 실태를 조사한 결과 67%가 현재 사무환경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리 배치와 동선의 불편함, 개인 공간 부족, 협소한 사무실 등 공간과 관련된 응답이 37.8%로 가장 많았다. 또 응답자의 80%는 사무 환경이 좋아지면 업무 성과와 직무 만족도가 상승할 것이라고 답해 사무 환경 개선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박정희 퍼시스 사무환경기획부문 상무는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개인 업무 공간, 원활한 소통을 위한 회의 및 협업 공간, 유틸리티룸 등 개인과 조직의 업무를 돕는 다양한 인테리어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한된 공간에 최대한 여러 명이 앉던 획일적인 구조에서 벗어나 집중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며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사무실을 조성하는 데 기업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수평적인 소통과 협업을 중시하면서 부서 간 경계가 흐려지고 디지털화된 환경에 맞춰 정보기술(IT)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분위기다. 개성 있는 휴게 공간을 꾸미거나 임원과 직원의 구분을 없앤 다국적 기업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사무실이 국내 기업에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 널찍한 나무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펼치고 벤치형 소파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잔잔히 흐르는 음악 소리에 분위기가 아늑하다.

서울 서교동에 위 치 한 한 일네 트웍 스 DSC사업부 사옥은 카 페 같은 인테리어가 특 징이다.

서울 서교동에 위 치 한 한 일네 트웍 스 DSC사업부 사옥은 카 페 같은 인테리어가 특 징이다.

카페를 떠올리게 하는 이곳은 IT기업인 한일네트웍스 DSC사업부의 서울 서교동 사옥이다. 지난해 사옥 리모델링을 하면서 파티션을 없애고 회의실과 휴게 공간을 카페처럼 안락한 인테리어로 꾸몄다. 이 회사에 근무하는 유승용 과장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업무 특성상 자기 일에만 몰두해 폐쇄적인 경향이 있는데 지금은 직원끼리 대화가 많아지고 협업도 자유롭게 이뤄진다”고 말했다.

사무실 곳곳은 초록 식물과 예술적인 소품으로 장식했다. 테라스엔 잔디를 심고 테이블과 벤치를 들였다. 이곳은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거나 저녁에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맥주 파티를 즐기는 공간이 됐다. 박재수 한일네트웍스 DSC사업부 상무는 “원목 테이블을 제작해 회의실과 휴게실을 카페처럼 꾸몄다”며 “사무실 환경이 바뀌면서 직원 간의 유대 관계가 좋아지고 이직률도 낮아지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부품 전문기업인 센트랄은 최근 경기도 안양에 스마트 오피스인 ‘스마트 캠퍼스’를 구축했다. 영업본부와 연구센터가 근무하는 곳으로 기업 문화를 반영하고 직원 간 소통에 주안점을 둔 공간이다. 임원은 넓은 방, 팀장은 전망 좋은 창가 자리, 신입사원은 복도 쪽에 앉는 식의 전형적인 배치에서 탈피해 임원을 포함한 전 직원이 지정석이 아닌 원하는 자리에 앉는다. 그날의 업무 형태에 따라 독립된 1인 공간을 비롯해 다양한 규모의 팀 단위로 구성된 좌석 중에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선택한다. 개인 사물함과 이동식 트레이를 비치해 좌석이 바뀌어도 수납이 편하다. 사무실 곳곳에 라운지 형태의 작은 회의 공간을 마련하고 개방된 계단형 공간으로 탕비실을 만들어 소통의 장으로 꾸몄다. 이종철 센트랄 대표는 “기업 문화를 혁신하기 위해 일하는 방식, 사고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수평적인 소통이 가능한 사무 환경으로 개선하자 임원이나 팀장의 권위 의식이 사라지고 야근 감소, 페이퍼리스 사무 환경 구축 같은 부수적인 효과도 얻게 됐다”고 전했다.

이 회사는 회 의실에 넓은 원목 테이 블을 들여놨다.

이 회사는 회 의실에 넓은 원목 테이 블을 들여놨다.

업무 형태 따라 공간 트랜스포밍

GS리테일 동북부본부 사무실의 ‘무빙월’ 설치 전 (위 사진)과 설치 후 회의실로 변한 모습.

GS리테일 동북부본부 사무실의 ‘무빙월’ 설치 전 (위 사진)과 설치 후 회의실로 변한 모습.

유통 전문기업인 GS리테일의 지역사무소인 동북부본부는 기존의 서울 장안동 사무실에서 지난해 삼성동 파르나스 타워로 이전하면서 외근이 잦은 영업직군이 많은 특성을 반영한 사무 환경을 구현했다. 주로 현장에서 근무하는 영업직군이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에는 다양한 규모의 회의가 진행돼 회의 공간이 부족했다. 이 때문에 업무 공간이 곧 회의실이 되는 ‘트랜스포밍’ 사무실로 설계했다. 공간 구획을 변경할 수 있도록 움직임이 자유로운 ‘무빙월’로 회의실을 만들었다. 무빙월을 여닫고 가구 배치에 따라 10인 규모의 회의실부터 200명까지 수용 가능한 대강당으로 변신한다. 김태진 GS리테일 총무팀 차장은 “신입사원 면접이나 가맹 경영주를 상담할 때도 이곳을 활용한다”며 “기업 이미지 제고, 상담 건수 증가 등으로 이어져 직원도 사무 환경 변화에 만족하는 반응이다”고 말했다.

센트 랄의 ‘스마트 캠퍼스’ 내 라운지 형태의 휴게 공간.

센트 랄의 ‘스마트 캠퍼스’ 내 라운지 형태의 휴게 공간.

기업 차원에서 전체적인 사무 환경을 바꾸지 않는 한 개인이 자신의 사무 공간을 개선하기엔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개인이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맞춤형 사무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한다. 사무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은 바로 ‘내 자리’다. 업무에 필요한 책상 면적과 업무 방식에 적합한 수납 형태, 소통에 맞는 파티션 높낮이 등을 통해 최적의 업무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양현석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률적인 개선보다 개인의 업무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며 “문서 업무가 많은지,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지 등 업무 방식과 현실적으로 구현 가능한 공간을 조율해 효율적인 사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사무실은 직 원이 원하는 자리에 앉 는 자유좌석제 방식으 로 운영된다.

이 사무실은 직 원이 원하는 자리에 앉 는 자유좌석제 방식으 로 운영된다.

글=한진 기자 jinnylamp@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김동하, 각 업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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