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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가 가능한 교도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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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대 행형 정책의 기본방향은 예방과 교화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보복주의는 중세기적인 낡은 형벌사상이며 오늘날은 극악한 범죄인일지라도 교정 후 사회에 복귀시킨다는 교육형 주의가 형정의 근간이다. 그러기에 선진 여러 나라에서는 격리수용보다 교정교화와 갱생보호가 강조되고 있으며 꾸준한 교육과 참회의 기회를 주어 새 삶을 걷도록 하는 재사회화에 주력하고있다.
그러나 우리의 교정행정은 격리수용과 응보에 가까운 전시대적 행형 수준에 머물러 왔다. 교화는커녕 비좁은 방안에 재소자들을 마구 집어넣었고 사형의 횡행이 예사다.
그곳에서는 아예 인권이란 사치스런 낱말이며 심지어 교도소를 범죄양성소라고까지 한다. 사실 재범자들의 상당수가 범죄수법을 교도소에서 익혔다고 진술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만 봐도 교도소 환경이 교정 교화와 얼마나 거리가 먼가를 짐작할 수 있다.
재소자들간의 린치나 범죄 교습행위는 그렇다 치고 교도관에 의한 인권유린도 계속 말썽이 되어왔다. 최근 어느 교도소에서는 재소자 2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고, 작년에도 구속학생 7명과 22명의 변호인단이 교도관 13명을 상대로 재정신청을 내는 등 시국사범들의 고문주장이 계속되어 왔다.
교도관들이 지하실의 징벌 방에 가두어 놓고 폭행과 속칭 비녀 꽂기 등 가혹 행위를 했다는 폭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처럼 교정교화의 교도소가 인권의 사각지대고 범죄 양성소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 같은 교도소 환경은 접어두고서라도 교정직원의 부족과 자질·시설의 빈약 등으로 직업훈련이나 기술교육도 원만히 이뤄지지 못해 바람직한 「갱생자립과 교화」는 바라보기 힘든 실정이다.
우리 나라 형사범의 재범률이 무려 40%나 된다는 사실 하나로도 교도행정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알고도 남음이 있다.
이런 점에서 법무부가 재소자에게 신문 구독과 방송청취를 허용하고 불허 도서목록을 폐지하고, TV시청과 집필·서신왕래 등의 제한을 완화한 것은 늦긴 했지만 바람직한 조치로 평가된다.
행형의 기본목표를 교육형에 둔다면서 지식과 교양과 덕목을 넓히는 독서나 집필을 금하는 것은 모순되는 일이었다.
신문을 못 보게 하고, 방송을 못 듣게 하는 것은 구속중인 피의자의 방어권 행사를 방해하는 일이며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는 형이 확정된 기결수들에게 뉴스와 교양 프로를 차단하는 것은 사회에의 적응력을 약화시키는 결과가 될 것이다.
얼마전 시국사범으로 복역 중인 어느 작가는 「나는 쓰고 싶다」를 절규한 일도 있었다. 집필이라는 정신활동까지를 금지해온 경직성은 진작 시정됐어야 했다.
법무부는 이번 조치에 곁들여 행형법의 유연한 운용뿐 아니라 형사정책 전반에 걸친 개혁과 쇄신을 서둘러야할 것이다. 재범률이 40%나 된다는 것은 교정행정의 낙후성과 형사정책에 문제점이 적지 않다는 증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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