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실록 80년 서울의 여름<41>|삼청교육 마구잡이 연행 "구설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삼청교육에 직·간접으로 간여했던 관계자들은『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처리할 수 없는 사회악을 과감·신속히 척결하자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폭행·강간·금전갈취 등을 일삼는 상습폭력·치기배 등을 사회에서 추방하고 새사람을 만들자니 평상시의 법 논리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당시에는 이 특별조치가 환영받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관계자들은 일부 삼청교육대상자 선정과정이나 교육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적하면서도 만연하던 각종범죄를 상당기간이나마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이에 따른 인권시비도 이 조치가 질서확립과 신뢰정화차원에서 법을 넘는「특별조치」였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침부터 다방 등 영업장에 죽치고 앉아 여종업원에게 치근덕거리고 주인·손님에게 행패를 부리는 불량배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뒤가 무서워 주안도 고발을 못하고 설령 경찰이 데려가 봐야 즉심회부가 고작이었어요. 그리고는 더 심한 행패를 부리고…. 이들의 작폐가 별게 아닌 것 같지만 막상 당사자들에게는 여간 심각한게 아닙니다. 정말 안 당해본 사람은 그 심정을 몰라요. 또 포장마차에서 공술이나 먹고 행인을 두들겨 패거나 돈을 뺏는가 하면 부녀자를 폭행하는 일이 모두 밝혀지지 않아서 그렇지 여간한 일이 아닙니다. 노점상에 자릿세를 우려내고 호스티스·웨이터등 약자를 등쳐먹고 사는 기생충 같은 부류들도 그렇습니다. 아예 조직을 만들어 온갖 범행을 저지르는 무리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법망에 갈 걸려들지도 않고 걸려 들어봐야 대단한 처벌도 받지 않은 채 곧 돌아가 선량한 시민들을 더욱 괴롭히는 이런 존재들을 어떻게 마냥 두고 보느냐는 항변이다. 그렇다고 당시의 모든 치안능력을 여기에 투입할 수도 없고 투입해도 미온적인 방법으로는 근절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당시와 같은 혁명적 상황에서 혁명적 특별조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런 저간의 상황이 삼청계획을 낳게 한 겁니다. 전격적인 소탕작전이었지요.
물론 계획발동 1개월 전부터 각 경찰서·파출소가 검거대상자 리스트를 작성, 일제 검거작업을 폈지요. 전국 2백여개에 이르는 폭력·치기배 조직명단은 경찰에 이미 비치돼 있어 소재파악만 되면 즉각 행동을 개시할 수 있었지만 각 지역에 널리 퍼져있는 조무래기들에 대해서는 파출소 단위로 별도의 조사와 여론수집이 필요했습니다. 조무래기들이라고는 하나 실제 이들로 인한 폐해도 심했어요. 동네 불량배들, 부모에게 손찌검을 하는 패륜아, 영세상인들을 등쳐먹는 자등…님『일단 리스트에 오를것 말고도 할 일 없이 우범지역·유흥가를 배회하는 사람들도 일단연행·조사를 했습니다. 신분이 확실한 사람이 우연히 잡혔을 때는 파출소에서 그 즉시 훈방했습니다. 그러나 전과3범 이상으로 주거가 확실치 않고 직업이 없이 떠돈 사람은 순화교육장으로 보냈습니다.』
경찰관계자들은 기본사항만 기재하는 황색카드를 작성하고 처리하는 간소화 덕택에 신속히 다수인원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들의 설명처럼 이감은 초법적 방법이 사상최대의 불량배 소탕작전을 가능케 했는지 모르지만 그 와중에서 고의건 실수건 국보위가 누차 강조했다는「열 사람의 불량배를 놓치더라도 한사람의 선량한 서민을 보호하라」는 지시는 별로 먹혀들지 못했다.
『물론 전과자가 우범지대를 배회했다고 해서 무슨 죄가 되느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직업도 없이 그런 곳을 떠도는 사람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는 충분히 상상이 되는 일 아닙니까. 그래서 순화교육을 시켜 일자리를 알선해주었던 것입니다. 서울 남부경찰서에 수용된 한 전과2범의 불량배는 유리창을 깨 자해소동을 벌이고 입초군인에게도 일곱 바늘을 꿰매는 상처를 입혔습니다. 달아나려고도 했고요. 그런 자들이 무슨 짓을 할지 상상해 보십시오.』
『군경합동단속반이 행동개시 이틀만에 잡아들인 사람은 전국적으로 1만6천여 명입니다. 경찰서보호실·유치장은 물론 강당까지 수백 명씩으로 꽉 메워졌습니다.
이들의 삼청교육대 회부 여부는 군·경·검 및 민간인 등 7명으로 구성된 심사위가 합의제로 심사했는데 민간심사위원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지역유지인 이들은 경찰이 모르는 부분도 알고 있었고 의사는 몸에 난 상처를 보고 칼잡이 여부를 감별했지요.,
심사에서 가장 중시했던 것은 개전의 정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면 풀어줬습니다. 대신 해골·뱀 또는 각종 글자를 문신한 사람들은 판정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은게 사실입니다. 서울노량진경찰서에 검거된 조직폭력배 칠성파일당 6명은 하나감이 등판에 북두칠성을 새기고 있었는데 팔뚝의 문신을 가리기 위해 당시는 여름이었는데도 긴 팔 옷을 입었던 것도 공통점이더군요.
이밖에 50여㎝의 사시미 칼이나 재크나이프·면도칼등을 휴대하고 있다가 불심검문에 걸려든 젊은 층도 많았습니다. 경찰과 당시 이를 취재했던 사건기자들의 회고다.
『군은 관내의 대학을 비롯한 중요시설 등의 경계임무에 바빠 이 점에서는 경찰을 보조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어요. 무엇보다 경찰이 현지 사정에 정통했으니까요. 나 자신도 경찰서장실을 계엄지휘사무소로 삼아 업무를 추진했습니다만 심사 외에는 정보참모를 보
냈었습니다. 그 사람인들 별로 아는게 없으니 간사인 경찰서 수사과장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는 이상 달리한게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일제 검거 등 큰 임무가 떨어지면 군·경 병력을 인솔하고 현장에 나가기도 했습니다. 수원역주변의 윤락가를 덮칠 때였습니다.
병력을 풀어 주의를 차단한 뒤 일제수색을 했지요. 주민들의 진정과 경찰조사에 따르면 윤락녀·뚜장이·포주등이 6백여명이나 된다고 했는데 윤락녀·손님까지 다 차에 실어 연행해보니 2백명 남짓하더군요. 그 후 심사는 경찰이 담당했지요. 그밖에 기소중지자 등 수배자가 관내사찰 등에 잠입했다는 첩보에 따라 여러 차례 덮쳐왔습니다만 대개는 허탕이었습니다.
수원지구 계엄분소장이었던 박모씨(예비역중령)의 회고다.
「만연하는 폭력·강-절도·사기·마약·밀수등 각종 사회악을 단시일 내에 효과적으로 뿌리 뽑기 위해 사회개혁차원에서 단행했다」는 삼청교육의 명분이 당시에는 어느 정도 공감을 받았으면서도 계속 논란이 꼬리를 무는 건 역시 인권유린이라는 차원 때문이다.
특히 우범자도 아니면서 억울하게 고초를 겪어야 했던 사람들의 항의와 고발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당국에 밉보였기 때문에 수긍할만한 잘못도 없이 피해를 당한 사람이 적잖이 있다.
현직교사로 재직중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던 체험을『삼청교육대, 악몽의 363일』이란 수기로 퍼낸 정충제씨는 합동심사위에서 검사가 자신의 이름·주소등 인정심문만으로 심사를 끝내 삼청교육에 넘겼다고 밝히고 있다.
정씨는 5년전 술집에서 경찰과 싸워 5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징계위에 회부돼 품위손상으로 3개월 감봉처분을 받은 척이 있었다. 이를 이유로 학무과장과 수사과장 등으로부터 사푠들 제출토록 종용받았다가 거부했는데 그것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이유라고 술회하고 있다.
정씨처럼『삼청교육대, 정화자전』이란 체험수기를 퍼낸 이적씨는 외상술값 등을 이유로 삼청교육에 끌려왔던 주재기자· 야당원들의 기막힌 사연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모일간지 W기자(후)의 경우는 군특수기관에「언짢은」기사를 쓴게 화근이 돼 그 기관에 불려가 구타·전기고문 등 혹독한 시련을 당한 케이스.
W씨는 아무리 두들겨 패고 무전용 배터리로 고문을 해대도 나오는게 없자 경찰에 넘기더라며 범죄사실란을 비워둔 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혐의로 기소하더라고 말한다. 순화교육을 받을 때는 팔이 부러지기도 했으나 악으로 버티다보니 부러진 팔이 저절로 붙더라 면서 계엄이 해제된 후「혐의사실」이 없어 고법·대법원의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정모씨(37)도 술 한잔 때문에 삼청교육 수료생의 낙인이 찍힌 경우. K대 학도호국단사단장을 지내고 S종합상사에 근무하던 정씨는 술집에서 옆 사람과 시비 중 술 컵을 든채 넘어져 상대의 눈을 멀게 한 적이 있다. 상대에게 치료비와 위자료를 주고 합의했으나 폭력배로 분류돼 4주 순화교육을 받았다.
이들 각자의 행위가 삼청교육을 받아야 할 정도의 것이었는지, 그러고 억울하다는 사람이 전체의 몇 퍼센트가 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마음에 안드는 존재라고 해서 수년전의 일로 삼청교육 이수자의 멍에를 씌운 데는 문제가 있다할 수밖에 없다.

<특별취재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