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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올림픽|국제연극제|이념 뛰 넘은 동구연극 호기심 자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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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올림픽기간 중 펼쳐진 문화예술행사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아울러 세계의 높은 수준의 문화를 받아들었다.
문화올림픽을 통해 얻어진 가장 귀중한 결실은 우리문화가 오랜 전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기반 위에 현대적 발전도 이루어나가고 있다는 우리문화에 대한 자긍의 확인이었다. 또 세계의 문화를 널리 받아들임으로써 세계와의 조화를 위한 개안도 얻어냈다. 문화올림픽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것 가운데 무엇보다 강조되어야 할 것은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문화예술를 가까이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장벽 때문에 오랫동안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었던 세계의 반쪽을 차지하는 지역과의 문화적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고 앞으로 상호교류의 폭도 넓어지게 되었다. 8월 16일부터 한달 반이 넘게 펼쳐진 문화올림픽의 득실과 앞으로의 과제들을 조망해본다.

<편집자주>
문화올림픽의 장을 열었던 서울국제연극제는 동구권을 겨냥한 기획이 주효, 관객들을 무대 앞으로 끌어 모으는데 성공했지만 동시에 국내연극이 안고있는 제문제를 한꺼번에 노출시키는 계기도 됐다.
지난8월16일 오후7시30분 문예회관대극장 무대에 오른 브라질 마쿠나이 마극단의『시카다실바』를 시작으로 막을 올린 서울국제연극제는 스보시극단(체코)·가르지니차극단(폴란드.)·그리스 국립극단·코메디 프랑세즈(프랑스)·가부키(일본)등 해외 6개 극단과 안양예술극장·자유극장·여인극장·MBC마당놀이·극단산울림·극단작업·국립극단·국립창극단·극단성좌·88서울 예술단·서울시립가무단·민중극단등 국내13개 단체 등 모두 19개 단체가 20개 작품을 타일간에 걸쳐 1백56회 공연, 약13만명(비공식 집게)의 관객을 동원했다.
관객동원의 측면에서 볼 때 이 같은 숫자는 연극에 대한「폭발적 인기」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충돌』(스보시극단)『아바쿰』(가르지니차극단)『오이디푸스왕』(그리스 국립극장)·『가나네혼추신구라』『미가와리자젠』(가부키)『심청전』(MBC마당놀이)『피의결혼』(자유극장)등은 좌석점유율이 1백%를 넘어서「입석관객」까지 있었다.
이는 연극제가 열리기 바로 직전까지도 대부분의 공연이 자리 채우기가 힘들었던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연극계에서는 이 같은「연극붐」을「기회의 성공」으로 평가하고 있다.
국내에 처음으로 동구권 연극을 불러모으는데 성공함으로써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자극, 개막이전에 체코·폴란드 공연 매진사대를 일으킨 점이라든가, 연극제 초반에 외국 3개 극단 공연을 잇달아 열게끔 함으로써 세간의 관심을 연극으로 쓸리게 한점 등이 그 주된 이유다.
초청된 외국극단의 수준 또한 만족할만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나 연극제에 참가한 국내극단의 기량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연극계의 중론.
유민영 교수(연극평론가·서울예술전문대학장)는『동구권 연극이 예상을 깨고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인간의 진실·휴머니즘을 끈질기게 추구하는 예술성을 보여준 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다』고 말하고『그리스·일본·프랑스등 선진국 공연 또한 수준 높은 세련미를 자랑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신작들로 꾸며진 국내연극은 고전을 파괴하면서 천박한 웃음을 유발(MBC 마당놀이『심청전』)하거나 시끄러운 음악과 불필요한 무대장치 및 군무의 남용(서울시립가무단『즐거운 한국인』), 뮤지컬을 화려한 쇼로 전락시킨 채 감상적 눈물만 유도(88서울 예술단『아리랑, 아리랑』)하거나 극 구성의 문제(극단작업『술래잡기』·국립극단『팔곡병풍』·극단성좌『젖섬, 시그리불』)가 있는 등『상상력이 없고 감각이 부족하며 기초가 탄탄하지 못함을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이번 국제연극제를 치르면서 극복해야할 과제로 떠오른 것은「전문가 부재」. 이것은 문화계 전반에 걸쳐 뿌리깊게 남아있는 관주도 내지 관우위 의식과 맥을 함께 한다. 서울 국제연극제는 87년 1월 개최여부를 확정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올림픽조직위-문예진흥원을 오가며 1년간 허송세월을 한 후 금년1월부터 부랴부랴 작업에 들어갔던 것이 그 좋은 예다.
연극제 운영위원으로 참가했던 연극협회 김의경이사장은『연극제를 통해 외국단체들이 어떤 식으로 일해오는 가를 비로소 알게됐다』면서『전문가를 가지고 있지 않아 어려운 점이 많았다. 모든 면에서 전문가를 길러야한다는 것이 연극제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연출가 정진수씨(성균관대교수)도『이번 공연작품 중에서 국고를 가지고 제작하는 대규모 공연일수록 몇 사람이 사사롭게 만드는 경향이 농후했다』고 지적하고『소수특정인 몇명을 끼고 도는 것이 바로 관주도의 발상』이라고 몰아붙였다.
문예진흥원관계자에 따르면 서울국제연극제·무용제의 수익금은 약1억3천만원 선.
서울국제연극제의 총예산은 5억원으로 이 가운데 2억2천만원이 외국극단 항공료 및 체제비로 쓰였으며 국내극단 공연지원금으로 약1억원이 지급됐다. 개런티는 유일하게 브라질과 체코에만 지급됐는데 비평이 참가, 4회 공연을 한 마쿠나이마극단은 1만2천달러, 4명이 참가, 3회 공연한 스보시 극단은 3만프랑이 지급됐다.
그러나 약5천5백만원이 든 국제연극토론회는 세계연극인들을 한자리에 모아보았다는 것 외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해「행사를 위한 행사」라는 비난의 소리도 없지 않았다.
연극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참가했던 극작가 겸 연극평론가 이강렬씨는『이번 연극제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지나치게 서구편향적인 연극을 해왔다는 것을 알게됐으며 상식적인「우리연극」이 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고 말하고『이제 모든 연극인이가장 한국적 연극은 어떤 것인가를 심각히 모색해야 할 것』임을 강조했다.
한편 서울국제운영위원회는 약2억원의 예산을 들여 참가작품의 순회공연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8∼21일 원주·천안·충주·제주·순천·여수·진주·창원·포항·전주등10개 도시를 대상으로 1극단이 3개 도시 공연을 갖게된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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