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올림픽「제2의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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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물론 근대 올림픽의 고향은 내 조국 그리스의 아테네지요. 그러나 이곳 서울에서 올림픽은 다시 태어난 느낌입니다. 제2의 고향이 생긴 셈이죠.』
불의 여사제「카테리나·디다스칼루」여사, 올림픽이 그 대단원을 향해 마지막 열기를 내뿜고있는 29일, 그녀는 자신의 서울올림픽 관람기를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리스에서 열린 성화 채화식을 수석여사제로 주도했던 그녀는 성화를 따라 지난달26일 제주에 발을 디딘 이래 한달 넘게 한국을 체험했다.
『성화를 따라 한국의 지방도시들을 방문하면서 느낀 것은 보통사람들의 위대함이었습니다. 그들은 무대 뒤에서 온갖 정성으로 올림픽의 모든 것을 준비했습니다. 아마도 올림픽 금메달 하나 하나에는 이들의 승리로 기억될 것입니다.』연극배우 특유의 감성으로 얘기를 풀어나가던 그녀는「한국의 어린이」에 대해 느꼈던 조용한 감동을 쏟아놓았다.
『모든 성화맞이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린이들의 존재 때문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성화가 상징하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들은 성의를 다해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나의 감동은 개막식에 등장한 어린이들의 몸짓과 표정으로 더욱 증폭되었죠.』
-또 다른 인상은.
『과거가 현대의 일상생활 속에 숨쉬는 것을 느꼈죠. 박물관에서 보았던 한복을 콘크리트 빌딩 숲을 걷고 있는 여인의 몸 위에서 발견할 수 있었고 이것은 나에게 특이한 경험이었습니다.』
-한국의 고전극은.
『국립극장에서 창극 춘향전과 처용설화를 소재로 한「팔곡병풍」이란 작품을 보았죠. 특히 처용 이야기는 그리스 고대설화와 구성이 비슷해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배우들의 동작은 강렬했고 음성은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해주어 언어의 벽은 너무도 쉽게 무너졌습니다.』
-서울의 모습을 얼마나 가까이 보았습니까.
『흔히 달동네라 불리는 곳에도 갔습니다. 물론 고층빌딩이 꽉 들어찬 도심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가난이 그곳에 있었죠. 하지만 그곳에도 어린이들은 있었고 그들은 생기를 잃지 않고 있었습니다.
남대문시장에도 갔었죠. 새벽3시부터 가게들이 문을 연다는 얘기도 들었고 이는 내가 직접 느낀 시장의 생동감과 맞물려 한국인의 일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근면함이 올림픽을 가능하게 한 것 아닙니까.』
-어느 경기가 제일 인상적이었습니까.
『체조경기였습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동과 서가 만나고 있었죠.「실리바스」의 요정 같은 연기를 잊을 수 없어요. 한국관중들의 부드럽고 강렬한 성원도….』
-올림픽은 당신 인생에서 무엇입니까.
『성화 채화식에 서있을 때마다 가슴이 떨리죠. 하늘에서 땅으로 빛이 내려와, 불로 변하죠. 물론 그것이「의식 외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성화에 의미를 붙였고 올림픽정신을 숭상하며 과거를 오늘에 되살리지 않습니까.
고대올림픽기간 중에는 모든 전쟁행위가 그쳤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단순히 받아들여요. 근대올림픽도 빨리 그 정신을 회복해야합니다.
내 개인적으로는 화려한 삶을 산다고는 생각 안 해요. 부처의 말씀대로 모든 사람은 인생의 진실 앞에 평등하니까요.』
-언제까지 수석 여사제를 맡고 싶나요.
『바르셀로나는 물론 그리스에 올림픽이 돌아올 수 있는 96년까지는 불을 받고 싶습니다. 올림픽의 고향은 누가 뭐래도 그리스 아닙니까. 올림픽탄생 1백주년에는 마땅히 아테네에서 인류가 모여야 합니다. 역사적 이유 때문이죠.』

<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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