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삶」의 치열한 모습 생생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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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소설이 개인과 사회의 갈등의 소산이고 삶의 고통의 기록이라는 것은 소설의 본질적 속성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 가운데 우리는 수많은 불행을 만나게 되고, 그 불행을 통하여 우리의 고통스런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개인의 고통과 불행이 가지고 있는 보편성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된다.
그것은 1회적인 삶에 있어서 매순간의 현 실태와 가능태의 분석과 해석을 허용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현실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을 읽어낼 수 있게 만든다.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소설이 문학적 형상화에 이른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경우에만 소설은 <감동>을 쫓고 있고 읽는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다.
반면에 소설이 예견된 결론을 가지고 <후일담>과 같은 이야기가 된다면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가지고 진정한 의미를 은폐시키는 것이며 동시에 터무니없는 낙관론을 갖게 함으로써 현실에 대해 질문할 수 없게 만든다. 소설이 르포나 회고담처럼 개개의 체험을 소재로 할 수는 있지만 소재가 소설을 결정할 수는 없다. 너무나 상식적인 이런 이야기를 지금 와서 되풀이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소설이 삶에 대한 반성이면서 동시에 소설 자체에 대한 반성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힘든 과정 속에서 억압적 현실의 정체를 드러내는데 기여한 소설이 6·25체험과 분단의 아픔, 민주화 운동과 비극적인 사건들, 노사의 대립과 갈등을 유행처럼 다룬다면 그것은 한편으로 소설을 소재주의의 차원으로 떨어뜨림으로써 현실에 대한 낭만적 인식과 문학의 본질의 외면이라는 질적 저급화를 초래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 강렬한 소재만을 추구하는 선정성 때문에 독자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소설의 외면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모든 새로운 시도는 전통적인 것과 대응관계에 놓여 있을 때, 즉 전통을 전제로 했을 때 힘을 얻고 새로운 문학으로 태어날 수 있다. 비슷한 소재의 유형에도 불구하고 최학의 『일반화법4』(『세계의 문학』가을호)와 안정효의『동생의 연구』(『실천문학』가을호)가 우리의 관심을 끌수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이들 두 작품은 신념의 철저성과 행동의 격렬성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 삶의 치열성과 가변성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이 사소하고 사사로운 일상적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현실의 모든 무게를 감당하는 것임을 이들은 확인하게 한다. 이달에 10여편의 소설을 읽으며 오늘의 소설에서 소재주의의 위기를 느끼는 것이 지나친 기우인지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김치수(이대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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