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훈 감독…그는 누군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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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시합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리는 순간 고병훈(40)감독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만세를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만세와 눈물은 비인기종목이라는 핸드볼이 다른 인기종목들이 해내지 못한 올림픽챔피언을 쟁취한 자부심과 그동안의 고통스러웠던 훈련과정이 머리 속에서 겹쳐지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 나오고 흘러 나온 것이었다.
온통 눈물과 땀과 기쁨의 감정이 뒤섞여 나온 그의 우승소감 제1성은 『무엇보다도 비인기 종목이었던 핸드볼을 국민에게 크게 인식시킨 계기가 된 것이 기쁘다』는 것이었다.
이날의 승인에 대하여 고 감독은 『우리가 꼭 이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 이긴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소련의 높이의 핸드볼, 힘의 핸드볼에 충분한 대비를 한 반면 소련은 세계최강의 자부심으로 우리에 대한 충분한 대비를 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또 후반종료 7분을 남겨놓고 한국이 다시 역전을 시켰을 때부터 승리를 확신했다며 『우리 선수들이 노르웨이와의 경기를 승리로 이끈 다음부터는 완전한 자신감을 회복, 사실 소련 팀과의 경기는 노르웨이의 경기보다 더 수월하게 풀렸다』고 밝혔다.
87년1월 전임 김정수 감독으로부터 지휘봉을 인계받아 대통령배대회가 끝난 올 3월부터 본격적으로 서울올림픽을 대비한 훈련과 작전 구상에 몰입했다는 고 감독은 전북 김제출신으로 김제 중·고와 경희대를 졸업했다.
70년대 광운중 체육교사로 재직시에는 광운중 남자팀을 전국 최강으로 끌어올렸고 현 남자대표선수인 김만호 등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길러냈으며 85년 실엄팀인 초당약품 감독이 된 후엔 소속팀을 종별선수권, 종합선수권, 전국체전 등을 모두 석권하는 국내 최정상의 팀으로 끌어올려 명조련사로 성가를 높였다.
광운중·초당약품 감독으로 재직하던 당시에도 고 감독은 자비를 들여 86년 LA올림픽과 86년 세계선수권대회 등의 세계최고대회를 직접 참관, 경기과정을 일일이 기록하고 국제핸드볼의 조류를 익히는 등 연구하는 감독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부인 윤현숙(35)씨와의 사이에 윤정(11) 아진(9) 두 딸이 있다. <김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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