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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집사] #19. 여름엔 에어컨보다 대리석 침대…집냥이의 계절 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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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무가 겨울에 태어났다고 했다. 어쩌면 봄일지도 모른다. 나무의 시작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나무만이 아는 일이다. 어쨌든, 늦겨울 혹은 이른 봄에 나의 고양이는 세상에 왔다. 봄날의 새싹처럼 어디선가 무럭무럭 자라선 여름날의 공원에 나타났다. 그리고 모두의 나무가 되었다.

[백수진의 어쩌다 집사] #(19) 고양이와 나의 계절

나무는 공원의 계절을 완성하는 존재였다. 나무의 노란색 털은 여름의 초록을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가을의 단풍 낙엽들은 나무가 깔고 앉아 잠들었을 때 유독 포근해 보였다. 하얀 털을 목도리처럼 목에 두른 나무는 눈 쌓인 공원 길과도 썩 잘 어울렸을 거다. 하지만 그해 첫눈을 밟아보기 전에 나무는 공원을 떠나야 했다.

길냥이 시절, 공원 풀숲 한가운데 앉아 낮잠을 자는 나무.

길냥이 시절, 공원 풀숲 한가운데 앉아 낮잠을 자는 나무.

매일 조금씩 공원의 색깔과 온도를 바꾸던 계절들은 이제 네모난 창밖에만 있다. 그마저도 나무의 기억 같진 않다. 흙바닥도 잔디도 나무도 사라졌고 하늘은 작아졌다. 집안은 한결같다. 추위에 떨 일도 비 맞을 일도 없다. 계절을 잃어버린 대가였다.

하나 집냥이 생활 어언 1년 9개월. 집에서 4계절을 온전히 보내 본 나무라면, 이제 실내에서 계절을 읽는 방법을 깨우쳤을지 모른다. 몇 개월에 한 번씩 거실 러그의 종류가 바뀌고 집사가 입는 옷이 달라진다. 발을 딛는 바닥이 시원했다가 따뜻했다가, 덮고 자는 이불이 가벼워졌다가 무거워졌다가 한다. 바깥세상만큼은 아니어도 계절에 따른 변화는 집안에도 분명히 있다.

나무는 울퉁불퉁한 창틀에 잘도 누워서 쉰다. 주택가 건물로 둘러싸인 창밖 풍경이 나무가 볼 수 있는 바깥 세상의 전부다.

나무는 울퉁불퉁한 창틀에 잘도 누워서 쉰다. 주택가 건물로 둘러싸인 창밖 풍경이 나무가 볼 수 있는 바깥 세상의 전부다.

나무가 중성화 수술을 마치고 일산 집에 온 날짜가 10월 23일. 가을의 한복판이었다. 그해 가을은 그야말로, ‘천고냥비’의 계절이었다. 하늘은 높았고 고양이는 살이 쪘다. 수술 후 식욕이 폭발한 나무에게 초보 집사는 간식을 원 없이 주었다. 잘 먹는 모습이 예뻐서, 많이 먹고 쑥쑥 크라고 자꾸 줬다. 나무는 이럴 때만 말을 잘 듣고 너무 커버렸다. 인간에게 가을이 수확의 계절이자 식량이 가장 풍부한 때임을 나무는 직감적으로 느끼지 않았을까. 하늘은 파랗고 바깥의 바람은 시원했다. 부족함 없이 배를 채운 나무는 바람 솔솔 부는 창가에 앉아서 쉬다가, 털이 차가워지면 다시 따뜻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거나 내 무릎에 와 앉았다. 나무에게 가을은 가장 만족스럽고 아름다운 시절이었을지 모른다.

날은 이내 추워졌다. 겨울은 내가 나무를 집으로 데려온 이유가 된 계절이다. 겨우내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나무를 보며 ‘안 데려왔으면 어떡할 뻔 했나’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나무는 폭신한 거위 털 이불 사이에 꼭꼭 숨어서 자는 걸 좋아했다. 땀이 나고 숨이 막히지 않을까 싶은데도, 숨 쉬는 코만 빼꼼 내놓고, 혹은 머리까지 다 집어넣고 쌔근쌔근 잘도 잔다. 온수 매트 애용자이기도 하다. 책상에서 작업하다 ‘띠리링’ 소리가 나서 침대 쪽을 돌아보면 온수 매트 전원 버튼 위에 ‘냥풍당당’하게 서 있곤 했다. ‘누나 지금 안 잘 거면 매트 켜고 나 먼저 잔다’ 하는 것처럼.

이불 집을 짓고 들어가 고개만 내놓고 잠을 청하는 나무.

이불 집을 짓고 들어가 고개만 내놓고 잠을 청하는 나무.

첫눈이 오던 날을 기억한다. 창가에 앉아 눈 내리는 하늘을 신기한 듯 올려다보는 나무의 뒤통수를 보면서, 이게 나무 생의 첫눈일까 아닐까에 대해 생각했다. 나무가 겨울에 태어났다면 아주 어릴 때 공원에서 눈을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몸 약한 새끼냥이가 밖에서 겨울을 온전히 견뎌냈을 가능성은 작다. 캣맘들의 추측대로, 눈도 제대로 못 뜬 나무를 누군가 데려가 잠깐 키우다 추운 날이 지나고 다시 공원에 버렸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나와 함께 보았던 눈이 나무가 직접 본 첫눈이 된다. 나무는 추운 줄도 모르고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며 한참 동안 눈꽃을 지켜봤다.

봄이 오며 나무의 털갈이가 시작됐다. 365일 털을 날리는 고양이에게 털갈이 계절이 따로 있겠느냐마는, 나무는 유독 봄에 많은 털을 뿜어냈다. 다른 계절에 털 비가 이슬비처럼 내린다면, 봄엔 여기저기 우박이 떨어진 듯 뭉텅뭉텅 빠져 있다. 이 때문일까. 봄은 집사의 고양이 알러지가 유독 심해지는 계절이었다. 초미세먼지와 황사의 콜라보까지 더해져, 나는 봄 내내 눈물 콧물을 달고 살았다. 나무는 ‘누나가 왜 나만 보면 울지?’ 궁금했을지 모른다. 별거 아냐… 봄이 감성적인 계절이라서 그래….

봄은 나무에게도 잔인한 계절이다. 추운 날씨엔 감기에 걸릴까 봐 미뤄왔던 ‘냥빨(고양이 빨래의 줄임말. 목욕시키는 걸 말한다)’을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털 사이사이에 남아 있는 죽은 털을 물로 씻어내면 털 날림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꼬질꼬질해진 나무를 위해서도, 알러지로 고통받는 집사를 위해서도 반드시 거행해야 하는 의식이다. 다만, 의식을 치르고 나면 팔다리에 찍히고 물린 상처가 남을 수 있다. 여름 옷을 입기 전에 상처가 아물게 하려면 냥빨은 이른 봄에 해치우는 게 좋다.

여름이 왔다. 베란다에 보관하던 돌덩이를 꺼냈다. 가로 60cm, 세로 40cm 크기의 거대한 대리석 타일이다. 우리 집을 찾아온 친구들은 거실에 뜬금없이 놓인 회색빛 대리석을 보고 ‘저런 게 집에 왜 있냐’며 놀란다. 그러다 방에서 총총 걸어 나와 대리석에 털썩 주저앉는 나무를 보고는 ‘아~’ 한다. 나무의 여름 전용 돌침대다.

대리석 매트를 꺼내주자마자 스크래처 소파는 2순위가 됐다. 시원한 대리석에 배를 대고 스크래처를 베개 삼아 누워있는 모습.

대리석 매트를 꺼내주자마자 스크래처 소파는 2순위가 됐다. 시원한 대리석에 배를 대고 스크래처를 베개 삼아 누워있는 모습.

혀를 내밀고 헥헥거리며 체온을 조절하는 강아지와 달리, 고양이는 조용히 더위를 탄다. 고양이 특유의 포커페이스만 봐서는 더운지 추운지 알 길이 없다. 더위 속에 마냥 방치했다간 고양이도 열사병에 걸릴 수 있다. 더운 날에도 온도가 시원하게 유지되는 대리석은 그 위에 누워만 있어도 열을 식혀 준다. 티 안 나게 더위와 싸우는 나의 털북숭이 동물을 위한 작은 사치다. 지난 여름엔 좀 어색해하더니, 올해는 거실에 꺼내놓자마자 먼지도 닦기 전에 올라가 앉았다. 하지만 대리석은 잠시 체온을 낮추는 용도일 뿐, 잠은 꼬박꼬박 침대나 안락의자에서 잔다.

이제 곧 나무를 더 심심하게 만드는 장마와 태풍이 시작된다. 집 앞을 오가는 사람들 발길도 뜸해지고 동네 길냥이들도 비를 피해 숨어서 영 창밖을 보는 재미가 없어진다. 그럴 땐 누나랑 TV를 보자 나무야! 시원한 대리석 위에 누워서, 비 오는 날엔 외출하기 싫어하는 누나랑 한껏 게으르게 여름을 나자. 바닥에 네가 좋아하는 털 러그가 깔리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을 함께 기다리자. 그리고 그다음 계절도, 그 다다다음 계절도.

글·그림=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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