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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억대 비자금 조성 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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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을 취재하기 위해 28일 서울 중앙지법 호송차량 출입문 앞에 기자들이 몰려 있다. 변선구 기자

검찰은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 대해 1300억여원의 비자금 조성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와 현대차와 계열사에 4000억여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경가법상 배임)가 있다고 사전구속영장에서 밝혔다. 검찰은 정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지시.개입한 진술 등 물증을 확보했다. 또 정 회장이 개인적으로 부실 계열사에 보증을 섰던 1700여억원의 빚을 갚기 위해 우량 계열사에 손실을 떠넘긴 혐의도 밝혀냈다.

◆ "정 회장이 비자금 조성 지시"=검찰은 2001년부터 현대차 등의 비자금 규모가 1300억여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현대차 본사 460억여원▶글로비스.모비스.기아차.위아 등 4개 계열사 680억여원▶해외 거래처를 통한 위장거래 230억원 등이다.

검찰은 "정 회장이 김동진 현대차 부회장 등을 통해 비자금 조성을 지시하고, 김 부회장이 계열사 관계자에게 이를 전달했다"고 구속영장에 적시했다. 김 부회장 등은 회사의 경비를 정상적으로 처리한 것처럼 허위로 회계처리하는 방법을 동원했다. 현대차 계열사에서 조성된 비자금 680억여원은 대부분 글로비스 비밀금고에 보관됐고, 정 회장의 지시에 따라 사용됐다. 검찰은 이렇게 조성된 비자금을 "정 회장과 가족의 용돈 및 생활비, 불법 정치자금 등의 명목으로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2002년 대선 기간 여야에 불법 정치자금 제공 등으로 상당액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정.관계 로비 여부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드러난 현대차의 비자금이 과거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서 확인된 100여억원과는 별개로 보고 관련자 계좌추적 등 사용처 수사를 진행 중이다. 2003~2004년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서 검찰은 현대차가 한나라당에 100억원, 대선 당시 여당인 민주당에 6억6000만원을 전달한 사실을 밝혀냈었다.

◆ "개인 빚 떠넘기기"=정 회장은 1998년 부실해진 현대우주항공의 3000억원 채무를 덜어내기 위해 현대차와 현대정공.고려산업개발 등을 유상증자에 참여시켰다.

당시 정 회장은 연대보증한 1700억원의 개인 빚을 물어내야 할 상황이었다. 현대차 등은 당시 주당 1157원이던 현대우주항공의 주식을 주당 5000원으로 계산해 총 2600여억원어치를 매입하면서 정 회장의 빚은 사라졌다. 따라서 현대차 등은 2600억원을 고스란히 손해를 봤다고 검찰은 지적했다.

정 회장은 또 현대우주항공의 부채가 추가로 920억원이 발생하자 다시 계열사를 동원해 유상증자에 참여시키는 방법으로 이를 해결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자신의 현대우주항공 주식은 계열사 직원에게 주당 1원에 미리 팔아넘겼다고 검찰은 전했다.

◆ "손실 위험 명백한데도 투자"=정 회장은 99년 12월 조세피난처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페이퍼컴퍼니인 '오데마치펀드'를 설립했다. 이어 이 페이퍼컴퍼니를 현대강관 유상증자에 참여시킴으로써 채권 발행에 투자한 현대차에 390억원, 현대중공업에 110억여원의 손실을 입혔다.

2001년 본텍(당시 기아차 계열사)을 그룹 계열사로 편입하는 과정에서는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유상증자를 하며 자신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90%의 지분을 보유한 ㈜한국로지텍에 본텍 30만 주씩을 실제 가치인 254만원이 아닌 5000원에 배당해 기아차에 손해를 끼친 혐의도 드러났다.

문병주 기자 <byungjoo@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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