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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 시한폭탄 … 주점 습격 등 2년간 7번 출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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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해 9월 29일 0시30분 서울 강동구 암사동 한 주점. 갑자기 멧돼지 한 마리가 뛰어들어와 술을 마시던 백모(29)씨를 들이받았다. 백씨는 허벅지에 상처를 입었다. 이 멧돼지는 오전 1시쯤 인근 천호동에서 시민 정모(42)씨를 들이받았다. 정씨는 넘어져 뇌를 다쳤다. 경찰에 쫓기던 멧돼지는 오전 11시 한강을 건너 광진교 북단에서 붙잡혀 도살됐다.

같은 해 11월 2일 오후 대구 남구 봉덕동 등산로에 멧돼지가 나타나 등산객 최모(64)씨를 들이받았다. 12월 11일 오후에도 전북 정읍시 정일동 호남고속도로 나들목에 멧돼지가 사람들 들이받고 달아나다 경찰이 쏜 권총에 사살됐다.

야생 멧돼지의 출몰이 잦다. 깊은 산속이 아니다. 사람이 붐비는 등산로는 물론 도심 한복판에 나타나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 그만큼 멧돼지의 숫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등 수도권에 서식하는 멧돼지 숫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 얼마나 살고 있나=환경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 사이에 수도권 22개 지역의 멧돼지 서식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27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수도권 산지 1㎢(약 30만 평)당 멧돼지 7.5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국 평균(3.7마리)의 두 배가 넘는다. 경기도 포천의 불무산이나 양주 감악산에는 19.8마리나 살고 있다. 의정부 용암산과 광주 남한산성에는 13.2마리, 하남 검단산에는 6.6마리가 살고 있다. 서울에서 가까운 북한산 송추지구(양주시)와 서울 광진구 아차산에도 9.9마리나 살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서식 밀도는 발자국 등 오랜 시간 동안 남긴 흔적으로 파악한 것이어서 특정 시점에 실제 서식하는 개체수보다 많게 측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수도권에 많은 이유=전국 다른 지역은 해마다 돌아가면서 수렵을 허가하기 때문에 멧돼지 숫자가 조절된다.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에서는 수렵을 할 수 없다. 인근에 도시가 많고 국립공원(북한산).군사보호구역이 끼여 있기 때문이다. 멧돼지는 한 번에 7~13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2년 정도 자라면 번식력을 갖는다. 환경적응력도 뛰어나 몇 마리가 몇 년 사이에 수십 마리로 불어나는 것은 보통이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두면 수도권 지역의 멧돼지 수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왜 도심으로 나오나=개체수가 많아지면서 먹이 다툼과 영역 싸움에서 진 멧돼지들이 밀려나왔다는 게 일반적인 설명이다. 하지만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많다.

국립환경과학원 김원명 박사는 "정상적인 상태라면 멧돼지가 소음이 심하고 공기 나쁜 도심에 먹이를 구하러 내려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등산객에게 놀랐거나 뭔가에 쫓겨 급하게 피하다 길을 잃고 도심까지 들어오게 됐다는 것이다. 대한수렵관리협회 관계자도 "먹이를 찾아 도시로 내려오는 것은 극소수"라고 설명했다.

◆ 숫자 조절해야=개체수가 늘면 도심에 출현하는 멧돼지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환경부는 멧돼지를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포획 틀로 멧돼지를 생포해 다른 곳에 풀어주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멧돼지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늘고 있어 농민이 인근에 멧돼지를 방사하는 것을 좋아할 리 없다. 대한수렵관리협회 측은 전문 구제단을 편성해 아예 사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멧돼지가 도로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가드레일을 설치하고 야생동물 이동 통로도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하고 있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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