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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단위 대한 교역은 당 중앙의 편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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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중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원로 경제학자 중의 한 사람이자 중국 경제개혁의 이론형성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치엔지아쥐」 (천가구· 79) 교수를 꼽을 수 있다. 본지의 천 교수 특별 인터뷰는 천 교수가 97년 중국으로의 주권이양을 앞둔 홍콩경제계를 돌아보기 위해 일주일 예정으로 홍콩을 비공식 방문했을 때 이뤄졌다. 천 교수는 홍콩 방문 동안 외국 특파원들은 물론 홍콩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을 「비 공식 방문」 이라는 이유로 일체 거절했으나 유일하게 중앙일보 창간 23주년 특별 인터뷰에 응했다. 천 교수의 이론은 중국개혁파의 적극적 지지를 받고 있으나 일부 보수파에서는 그 이론의 대담성에 대한 비난도 있다. 천 교수의 집은 북경에 있으나 심천 특구 경제학회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어 최근에는 심천에 머무르고 있다.
다음은 본사 박병석 특파원이 앞으로의 한중관계를 중심으로 한 천 교수와의 회견내용이다.
-박병석=최근 한중 양국관계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하순 열흘간 서울을 방문한 산동성 경제대표단은 한국과 무역사무소를 교환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비망록을 서명· 교환했다. 이에 대한 귀하의 평가는.
▲천가구=중국 당국이 올림픽을 전후해 취하고 있는 적극적인 대한 정책의 하나다.
무역사무소 교환 설치는 물론 중국이 한국인에 대한 중국여행을 개방하겠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같은 중요한 조치는 산동성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 국무원의 사전 승인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당 중앙은 『우리는 산동을 포함한 지방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일일이 알 수 없다』 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한 권한은 이미 지방 정부에 위임했다』 고 말함으로써 중앙 정부와는 비공식 수준의 접촉으로 국한하는 편법이다.

<양국관계 발전 낙관>
현재 중국과 싱가포르는 무역사무소만 교환 설치했을 뿐 정식 국교관계는 없다. 그러나 중국과 싱가포르 양국관계는 상당한 수준에 와 있음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다만 내 개인 의견으로는 한중 양국이 북경과 서울에 정식 대사관을 설치하기에는 아직 여러 가지 조건이 성숙되지 않았다. 정식 외교관계의 수립은 비교적 오랜 시일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중 양국 관계 발전은 낙관적으로 본다.
-그 동안 한중 양국은 간접 교역 방식으로 경제교류를 해왔으며 귀국은 한국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경제면에서 귀국의 대한 입장이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올 봄부터로 분석된다. 이 같은 대한정책 변화의 배경은.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중국의 대외 개방은 한국만을 겨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의 대외 개방은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그 동안 한중 양국은 홍콩 등을 경유하는 간접무역을 해 왔다.
중국은 한국으로부터 철강제품 등을 수입해 왔고 한국은 중국에서 석탄 등을 사갔으나 홍콩을 중계지로 해 왔다.
운임도 많이 들고 여러 가지 불편했지만 간접무역 방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외교상의 제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무역규모가 상당 수준에 이르렀고 국제적 환경이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한국의 많은 기업인들이 산동성의 항구를 돌아보기도 했고 제철소를 방문한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제 쌍방 모두가 간접무역에서 직교역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상호 유리하다는 인식을 현실적으로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중국은 보수적 흐름과 역량이 컸다. 나이가 든 계층보다 젊은 세대들이 개방적이다. 중국은 현재 각 방면에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대한 정책도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이다. 88 서울 올림픽에 중국이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하는 것도 이 같은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중 양국관계는 부단히 변화, 발전해 나갈 것이다. 그러한 변화의 추세는 서서히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나 외교상의 제한이 따른다. 중국에 있어 북한문제는 대단히 민감한 문제다.
-귀하외 자서전인 『칠십년의 경력』 이라는 책을 보면 56년 봄 중공 당 중앙이 조직한 대규모 북한 위문단에 부단장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 김일성과 만난 것으로 돼있다.
현재의 남북한 경제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의 경제적 발전은 국제적 관심 대상이다. 대만· 싱가포르· 남한· 홍콩 등은 「4마리 작은 용」 (4 소룡)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사정은 비교적 어렵다.
-최근 한국의 대 중국 경제창구는 산동성처럼 돼 버린 인상이다. 한국에는 산동붐이, 산동성은 한국열이 일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내 개인 의견으로는 비록 한국과 산동성의 지리적 위치가 가장 가깝고 각종 자원이 비교적 풍부하다는 점에서 운임 등을 절약할 수는 있겠지만 일찍 개방했던 광동성· 복건성 등에 비해 자본주의 방식을 이해하는 정도 등 사고방식의 전환이나 제도 정비 등에서 뒤떨어져 있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대 중국경제교류가 산동성으로 집중되는 것이 꼭 바람직한 것이냐 하는데 의문을 갖는다.
▲중국의 연해 경제개발 전략은 한국과 직접 관련을 갖는다기보다는 간접적인 관련을 갖는다고 봐야한다.

<북한경제 사정 곤란>
산동성은 산동성 나름대로, 광동성 등은 그들 나름대로의 특성을 갖고 있다.
한국의 적지 않은 기업들이 산동성을 방문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의 경제협력에 있어 교역의 확대보다는 한국 자본· 기술의 유치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익이 나면 전쟁터의 최일선에도 달려가는 일본의 기업인들이 그 동안 왜 중국투자에 소극적이었나 하는데 의문을 갖고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일본은 한국에 비해 자본· 기술 등에서 한 수위인데다 귀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지도 꽤 오래됐지 않은가.
특히 「다케시타」 일본수상이 지난 8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일본인의 투자는 중국 내국인과 동일한 대우를 해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중일 투자 보호 협정」 서명을 지켜보았으며 미화 60억달러 규모의 차관도 제공키로 했다.
왜 일본은 그 동안 대 중국투자를 꺼렸으며 과연 국교도 없는 한국이 중국에서 일본과 경쟁할 수 있다고 보는가.
한중 경제협력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귀하의 솔직한 견해를 듣고 싶다.

<일은 기술제공 인색>
▲일본이 그 동안 대 중국투자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들은 대 중국 투자에 있어 주판을 아주 짜게 놓았다.
일본은 중국에 「투자환경이 좋지 않다, 이상적이 아니다」 고 말하면서 물건을 팔고 사는 교역에 치중해 왔다.
이 점은 미국과 다르다. 일본인은 영리해서 투자를 하면 곧 이익을 내야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지만 미국인들은 도량이 커서 즉시 이익을 얻어내야만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일본이 일부 기술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이 정말 필요로 하는 좋은 기술을 제공하는데는 인색해 왔다.
일본은 중국과의 기술· 경제수준 격차를 15년 정도는 둬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일 투자 보호 협정 체결이 일본 기업인들의 대 중국투자를 촉진시킬 것은 틀림없다.
중국의 제도나 상 관습 등이 국제수준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투자환경이 이상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중국도 여러 가지 불합리하거나 미흡한 점을 개선, 보충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일본은 근본적으로 중국과의 기술· 경제수준 격차를 15년 정도는 벌여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당신은 한국이 자본· 기술 등에서 일본보다 한 수 아래이고 외교관계도 없이 중국에서 일본과의 경쟁이 가능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한국인들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있으며 사실 반드시 그렇치 만도 않다고 본다.
한국은 반도체· 컴퓨터 등의 고 정밀산업에서 이미 상당한 수준에 와 있으며 고급 기술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 특히 일부 제품의 가격이나 생산 원가 면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리고 한국의 어떤 기술 등은 일본의 기술보다 중국에 적합한 것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우리는 판단하고 있다.

<개방 되돌릴 수 없다>
한국이 외교관계로 인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경제교류를 하는데 있어서의 불편은 점차 해소될 것이다.
-중국은 78년 이후 개방·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에서는 개혁· 개방의 폭과 속도를 둘러싸고 상당한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는 「등대인」 (등소평을 높이는 말) 이후 귀국의 정책변화 여부에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개혁· 개방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과거 중국이 문호 봉쇄정책을 폈을 때는 일반 국민들은 외부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당국은 자본주의는 모두 나쁜 것이며 악의 근원이라는 정치적 선전을 계속해왔다.
그러나 중국이 봉쇄됐던 문을 연 후 외부세계가 중국으로 밀려들어오기도 했고 중국인 자신들이 외국에 가서 서방세계의 발전된 모습을 직접 목격하면서 중국은 그 동안의 혼미한 상태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자본주의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제도에도 장점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이제 그 누구도 개방의 문호를 닫을 수 없으며 도도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의 개혁 정책, 특히 각종 자본주의적 방식이나 시장 경제 원리의 도입이 계속 확대돼 가는 추세인데 중국식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하는 느낌마저 불러일으키게 한다. 자본주의와의 궁극적 차이는 무엇인가.

<인플레· 교육 등 문제>
▲소유제의 차이에 있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개인의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추세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통· 철도 등 대부분의 큰 재산은 모두 국가가 소유하고 있으며 개인 재산이란 아주 미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천 교수는 지난 4월 개최된 전국 정치 형상회의에서 현 정부 정책을 신랄히 비판해 주목을 끌었는데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간단히 요약하면 무엇인가.
▲인플레· 교육· 사회 기풍 등이 현재 중국이 안고 있는 최대의 문제다. 물가와 임금 개혁, 지식인 우대 정책, 부패 및 관료제도의 척결이 관건이다.

<천 교수 약력>
1909년 중국절강성 무의현에서 태어나 북경대 경제학과를 졸업, 동 대학 강사와 광서대 교수, 홍콩 달덕학원교수, 홍콩 「경제통신」 편집인, 중국 인민은행 고문, 청화대 교수 등을 역임했다. 천 교수는 현재 전국 정치 협상회의 상무위원, 중국 민주동맹 부주석, 중앙 사회주의학원 부원장, 광주대학 명예총장, 심천 특구 경제학회 명예회장, 전국 공상연합회 고문, 중국 국제무역 촉진회 특별고문 등의 직책을 갖고 있다. 그는 85년 미국을 방문해 「레이건」 대통령을, 86년에는 일본을 방문해 당시「나카소네」 수상을 만났으며, 56년 봄에는 중국 당 중앙이 조직한 북한위문단 부단장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도 만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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