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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시대, 신간의 사명과 책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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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이 산업사회로 발돋움을 시작할 무렵인 1965년 고속 윤전기를 가동시킨 중앙일보가 오늘 창간 23돌을 맞았다.
당시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95달러의 전형적인 후진국이었다. 빈곤과 저발전, 비능률이 온사회에 보편화돼 있던 세계의 변방이었다.
그러나 이젠 그 30배의 성장을 기록하여 GNP는 세계 19위, 무역거래량 10위의 신홍 공업국가로 부상하여 세계의 중심부로 도전하고 있다. 더구나 지금은 세계의 주인으로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나가고 있다.
산업사회는 자유와 능률과 풍요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우리한국은 오히려 산업화와 함께 자유는 억압되고 언론은 퇴보했었다.
국가발전에 중요했던 지난 4반세기동안 언론은 자유 없는 상태에서 책임만 지워졌다. 권이없는 상태에서 의무만 짊어졌다. 그 신성한 언론의 사명이 일방적으로 왜곡된채 체제유지에 봉사하도록 강요당했었다. 암흑과 질곡 속에서 언론은 전반적인 침체, 예외적인 저항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젠 자유를 찾았다. 권리도 얻었다. 무겁게 짓누르던 억압은 사라졌다. 지금은 언론이 스스로 책임과 의무를 떠맡아 본연의 사명에 충실해야할 때다. 그러나 갑작스런 햇살의 눈부심 탓인가. 끈 잃은 허공의 무중력 탓인가. 아직도 언론은 혼돈과 미몽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 시대, 새 과업에 맞는 위치정립이 안돼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더욱 가평적으로 변해 나간다. 잠재상태에 있는 각종 요구가 분출하고 휴전상태에 있는 사회세력의 도전이 일제히 재개될 전망이다. 사회의 다원화와 함께 갈등이 더욱 복잡하고 첨예해질 것은 자명하다.
지금이야말로 언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때다. 그러나 언론이 제 기능을 원만히 수행하려면 언론인의 각성과 준비가 필요하다. 민주화 도상에서 사회적 분화작용을 겪고 있는 지금의 우리언론은 세 가지 과제부터 해결해 나가야 한다.
첫째는, 잘못된 과거의 청산이다. 이것은 병든 체질의 재정화, 흩어진 자세의 재정립이다. 언론인들은 과거의 오염을 씻고 도덕과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왜곡된 자세를 고쳐 용기와 정의를 되찾아야 한다.
우리는 과연 언론의 자유와 편집의 독립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언론의 정도를 스스로 저버린 일은 없는가. 만의 하나 아직도 무기력과 안일, 자만이 남아있다면 한시바삐 척결해야 한다. 그것은 언론인 자신의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둘째는, 언론문화의 창달이다. 언론자유의 확대는 언론매체의 양적 팽창을 수반했다. 다수의 신문이 새로 생기고 각 신문의 증면이 불가피해졌다. 이 때문에 언론은 양보다 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언론인 자신의 능력계발과 자질향상, 언론사의 시설개선과 기술도입이 요구된다. 이런 자기혁신을 통한 언론인의 전문화, 경영혁명을 통한 언론사의 첨단화 없이는 정보산업으로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격심해질 경쟁에서 살아남지도 못한다.
세째는, 사회적 사명의 완수다. 언론은 정확한 보도와 공정한 논평을 생명으로 한다. 이 기능을 통해 국민에게 알리고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과도사회다. 정치는 권위주의에서 민주주의로, 농촌은 전통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도시는 산업사회에서 후기산업사회로 변화해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또 대중사회다. 6·29이후 사회의 주도권은 국민대중에 넘어갔다.
이런 과도적인 대중사회에서는 국권부문이 약화되고 민권부문이 강화된다. 정치 지도력은 무력해지고 사회 세력들의 행동력은 강화된다. 각 세력은 이해관계에 따라 분산되어 상호 대립이 격화된다. 여기서 언론은 잘 잘못을 가리고 바른 길을 제시하여 사회통합과 국민결속을 성취해야 한다.
사회가 민주화, 대중화하면 정치는「미디어크러시」(mediacrazy)를 지향하게 된다. 즉 언론의 영향력에 따라 움직이는 이른바「언론지배정치」가 불가피해 진다.
다가오는「미디어크러시」시대에 언론이 올바른 주도권과 영향력을 발휘키 위해서는 스스로 권위와 지도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것은 올바른 언론자세의 정립, 언론문화의 선진적인 창달, 언론사명의 철저한 이행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금 언론환경은 크게 개선됐다. 언론을 제약하는 힘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 없는 책임, 권리 없는 의무의 악몽도 끝났다. 지금이야말로 언론인이 스스로 자유보다는 책임, 권리보다는 의무에 충실하여 언론의 시대적 사명을 완수해야할 때다. 이것은 창간 23주년을 맞는 중앙일보의 자기 성찰이며 사회공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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