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7천 출연진에 감사|2년 반을 정열 바친 이기하 SLOOC 개·폐회식국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개회식의 대미인 「한마당」작품이 메인스타디움을 집어삼킬 듯 진동시키고 선명회 합창단의 동요가 은은히 울려 퍼지는 순간 스타디움 귀퉁이에 서있던 초로의 신사는 조용히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불과 3시간에 걸친 공연을 위해 2년 반이라는 기나긴 형극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이기하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 개·폐회식 국장.
그는 수많은 제작진들의 축하악수를 받으면서도 그러나 단 한마디의 대꾸도 하지 못한 채 한동안을 그렇게 서있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이만큼 끝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감사하다』라는 표현으로 말문을 연 이국장은 『서울올림픽의 서막인 개회식 공개행사가 성공리에 끝났다고 평가된다면 이는 단 몇 분간의 출연을 위해 2백시간 이상의 고된 연습을 마다하지 않은 1만6천여 출연자와 두달동안 밤을 새워온 제작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국장은 특히 우리의 전통무용이나 놀이 자체가 양식화되지 않은 현실 때문에 개회식을 보는 사람에 따라, 또 관점에 따라 평가가 다르고 이로 인해 그 동안 숱한 잡음과 말썽이 일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노력해온 제작진과 출연진들의 굳은 의지가 오늘의 원동력이 됐다고 강조한다.
개회식에 선보인 15개 작품 중 첫 도입부분인 『새벽길』과 『용고행렬』이 난산을 거듭했던 작품이라고 털어놓은 그는『새벽길』의 경우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주제표출을 위해 여명을 뚫고 나오는 조용한 이미지를 전달하려고 했으나 『첫번부터 강렬한 이미지가 없어 맥이 빠진다』고 지적, 막판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고 했다.
이국장은 또 『성화점화를 축하하는 연막비행은 단 1초만 어긋나도 비행기가 정확히 주경기장 상공을 지나갈 수 없어 성화점화 1분전부터 비행기 파일러트들과 카운트다운을 세어가며 타이밍을 맞출 때는 맥박마저 멈춰버릴 것 같은 극도의 긴장감을 느껴야했다』고 말한다.
『막상 끝내놓고 나니 아쉬움도 남는다』는 그는 매스게임이나 쇼 형태의 고전적인 개회식 공개행사 방식에서 탈피, 새로운 기법으로 시도했던 『혼돈』의 가면극은 당초 1백67개 전 회원국의 가면을 수집하려 했지만 외교채널이 없는 국가나 아프리카 국가 등과는 도통 연락할 수 없어 60개국 가면수집에 그쳐 미련이 남는다고 했다.
이국장은 그러나 『역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오대양육대주를 상징하는 동서 양진영 12개국 민속무용단이 출연한 것과 세계각국에서 모인 패러슈터들이 자비를 들여 개회식의 한 부문을 장식해 준 것은 서울올림픽의 모토인 「화합과 전진」의 이미지를 구현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그는 『패러슈트를 단순한 낙하시법으로 그치지 않고 잔칫날에는 반드시 차일을 치고 손님을 맞는 우리의 고유한 전통으로 응용시켜 차일 춤을 창출해낸 것은 나름대로 자부심과 공지를 느끼는 부분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 종이 한 장으로 세가지형태의 카드섹션을 연출한 관중 카드섹션이나 우리의 버들피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도」「미」「솔」3음을 선수단 입장시 한꺼번에 불게 해 소위 화합의 이미지를 전달하려한 것 등은 종래의 공개행사 방식을 과감히 탈피해보려는 시도였다고 말하고 이 같은 기획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예산제약, 국내제작업체의 영세성 등 숱한 고충이 따랐다고 털어놨다.
이국장은 특히 『과거 올림픽에서도 상상조차 못했던 이어폰을 이용한 8개국어 해설 방송을 실현시킨 것은 체신부를 비롯한 유관기관과 각 방송국들의 절대적인 협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최식을 치르기까지 가장 큰 고민거리는 예정에도 없던 시연회를 세 차례나 실시하는 바람에 그러잖아도 지쳐있는 출연진들에게 가중된 부담을 주게 된 것이며, 특히 개막 전에 공개행사 자체가 수 차례에 걸쳐 공개됨으로써 신선도가 크게 떨어져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이었다』고 말했다.
이국장은 이 같은 불안스러운 요건을 감수하고 개회식공개행사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준 국내 관중들께 감사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또 개회식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멀지 않은 시기에 전국민과 개회식을 지켜본 세계인들이 하게될 것이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며 결코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개회식을 끝냈으니 이제는 폐회식을 준비해야죠. 폐회식도 아무쪼록 사고 없이 잘 끝내야만 맡은바 소임을 다 끝내는 거 아닙니까.』
그는 땅에 놓았던 워키토키를 집어들고 또다시 그라운드로 발걸음을 옮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