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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훈련에서 알선까지 … 시·구청이 현장 지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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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코하마의 고토부키초(壽町). 일용직 근로자나 빈곤층이 많이 사는 곳이다. 떠돌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싸구려 하숙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대낮인데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길바닥에 하루종일 주저앉아 있는 사람도 있다.

도쿄도 시부야구의 '할로 워크(공공직업안정소)'엔 청장년층을 가리지 않고 구직자가 몰려 전산망에 올려진 구인정보를 검색한다. 지자체들은 지역 주민에게 많은 일자리를 주기 위해 저마다 직업소개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 가끔 외국인을 태운 견학 차량이 오곤 한다. 슬럼 구경이 아니다. 이곳의 노숙자 자활지원 센터 '하마카제'(해변의 바람이라는 뜻)를 찾는 견학자들이다.

'하마카제'는 요코하마시의 노숙자 자활 지원사업을 위탁받아 민간이 운영하는 시설이다. 일본에선 물론 국제적으로도 성공적인 지원센터로 꼽힌다. 시는 이곳의 운영비(연간 2억6000만 엔)를 지원해준다. 이치카와 히로아키(市川裕章) 원호대책담당 계장은 "노숙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는 일을 시가 직접 하기 어려워 민간 복지법인인 '하마카제'에 맡겼다"고 말했다.

이곳의 구도 히로오(工藤廣雄) 소장은 직원들에게 "노숙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늘 생각하라"고 강조한다. 그는 노숙자들의 심리를 훤히 꿰고 있다. 어떻게 시청과 부닥치지 않고 일할지, 어떻게 기업에 부담을 주지 않고 노숙자를 취업시킬지 등에 대한 실전경험도 무궁무진하다.

그는 사무실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는다. 시설 내부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노숙자들과 스스럼없이 얘기한다. 이들과 눈높이를 같이하기 위해서다. 밤이면 길거리로 나가 떠돌이 노숙자들의 애환을 들어주고, 건강상담도 한다.

그의 목표는 정규직 취업을 통한 자립이다. '월급여 18만 엔 이상, 저축 60만 엔 이상'이 자립의 기준이다. 이 정도면 조그마한 방에 세들어 빚 안 지고 혼자 살 수 있다. 밑바닥을 벗어나 중산층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열리는 첫 단계인 셈이다. '하마카제'는 2005년 1874명의 노숙자를 받아 220명을 자립시켰다.

'커뮤니티 비즈니스'. 노숙자보다 사정이 조금 나은 사람을 위해 요코하마시가 직접 벌이는 사업이다. '사회적 일자리'와 비슷한 개념으로 공공 서비스를 강화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일자리도 만들어 내려는 시도다. 보육, 고령자 개호, 교육, 거리 정비 등의 사회적 서비스 분야에서 수익모델을 찾자는 것이다. 다카하시 이사오(高橋功) 요코하마시 프로모션추진사업본부 계장은 "행정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수익성도 크지 않아 등한시되던 분야에 민간이나 시민단체의 사업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통해 결실을 본 사업이 속속 나오고 있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는 노인들을 위한 개호택시 회사 '코알라', 어린이 아토피 환자에게 간식거리를 만들어 주는 '아토피코 하우스', 몸이 불편한 노인을 위한 장보기 대행사 '고요켄 기키벤'…. 이들은 행정과 민간의 중간지대에서 틈새시장을 개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고 평가받고 있다.

중산층 육성에 성공을 거둔 또 하나의 지자체가 오사카(大阪)부의 이즈미(和泉)시다. 오사카의 베드타운인 이즈미시의 골칫거리는 도시로 통근하는 시민과 시에 남은 저소득층과의 양극화 현상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즈미시는 취업 지원에 적극 나섰다.

이즈미시에서 세 살배기 아들을 키우는 싱글맘 오바야시 도모코(大林智子.32)는 요즈음 인생 설계를 다시 하고 있다. 고교 졸업 후 오사카에서 프리터 생활을 했으나 아이를 낳은 뒤엔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부의 저소득층 수당을 받고 있는 그는 "아이를 제대로 교육시키려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가 찾은 곳은 이즈미시가 운영하는 무료 직업소개센터. 오바야시는 이곳에서 구직 활동을 하는 동안 시의 지원으로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취업훈련을 받고 있다. 원래 공공 보육원은 일을 하거나 학교에 다니는 여성의 아이만 받아준다. 하지만 이즈미시는 오바야시처럼 취업을 준비하는 싱글맘에게 '취업준비증명서'를 발급해주고 3개월간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했다. 행정의 융통성을 발휘한 것이다.

이런 자그마한 아이디어들이 오사카부 전역에서 채택돼 시행되고 있다. 고바야시 노부코(小林信子) 취업지원계장은 "현장에서 먼 정부보다 주민의 고충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지자체가 나서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주민과 지자체가 힘을 합치는 경우도 있다. 도쿄(東京)의 세타가야(世田谷)구에선 구청이 2억 엔을 내고 구민 기부금 1억 엔을 모아 내년부터 보육 서비스를 제공한다.

저소득층을 돕고, 실업자들의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선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정책으론 한계가 있다. 수혜자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으면 효과를 거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에선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은 지자체가 맡는다. 지자체가 힘이 달리면 민간이 거든다. 이런 역할 분담은 행정의 기본 입장이다.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안하면 당연한 결론이기도 하다.

"연금은 국가, 의료 서비스는 광역 자치단체, 복지와 개호는 주민과 가장 가까운 기초 자치단체가 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사회 안전망을 서로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지요."(가누마 히토시 후생노동성 사회보장 담당 참사관실 실장보좌)

◆ 특별취재팀=김정수 경제연구소장.오대영.남윤호.박소영 기자, 도쿄=김현기 특파원.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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