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인의이것이논술이다] 짜깁기 식 제시문 요약은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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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간접적인 물음은, 물음에서 명시적 요약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답 글을 써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제시문의 요약을 포함하도록 암시적으로 요구한다. 가령 2002학년도 연세대 정시 인문계 논술 문제는 이렇다. "동일한 사물과 사건일지라도 그에 대한 표현은 다양할 수 있다. 제시문 (가), (나)를 참조하여 (다)와 (라)의 차이점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한 뒤, 그것이 지닌 사회.문화적 의미를 오늘날의 문제와 연관지어 논술하시오."

이 물음에 답하려면, 글을 쓰는 과정에서 (가), (나)의 내용뿐 아니라 (다)와 (라)의 내용도 요약해서 언급해야 한다. 무언가를 참조하기 위해서는, 또한 무엇의 차이점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간략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즉, 출제자는 네 제시문의 내용을 학생이 이해했는지 확인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요약을 물음으로 묻는 까닭은 학생이 제시된 자료를 얼마나 이해했는지 측정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해력 또는 독해력은 어떤 자료를 자기 것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이다. 즉, 어떤 정보가 있을 때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이를 발판으로 다음 단계로 진전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말이다. 자료 이해는 모든 공부의 기초이기에, 논술에서는 직.간접적으로 요약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요약을 할 때는 제시문을 정확히 이해했다는 것을 채점자가 알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학생들에게 요약을 시켜 보면, 가장 많이 범하는 오류가 제시문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문장이나 어구를 따와서 죽 이어 붙이는 일이다. 이런 식의 짜깁기는 요약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그 까닭은 100자에서 200자 정도로 아주 짧게 요약할 때 그 안에 긴 제시문의 내용을 다 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피하려면 학생이 내용을 완전히 소화한 다음 자기 언어로 다시 풀어 쓰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 제시문을 전혀 읽어 보지 못한 사람에게 제시문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아주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요약을 해보라. 제시문의 구절들을 직접 가져다 쓰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왜냐하면 맥락을 벗어난 표현은 원래 의미를 간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자기 식으로 해석해서 표현해야만 의미가 전달된다.

제시문을 이해하는 능력인 독해력은 언어나 외국어를 공부할 때도 많이 강조되므로 여기서는 별도의 언급을 덧붙이지 않겠다. 단, 이해한 것을 자기 말로 표현하는 것은 별도의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에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요점은 다른 사람에게 읽혀서 제시문의 내용을 그 사람이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데 있다. 전문적인 교사가 첨삭 지도를 해주면 가장 좋겠지만, 이 정도라면 친구끼리 서로 봐주면서 검토하는 것도 가능하다.

요약 연습은 결국 다른 과목을 공부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기본 능력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교수들은 학생에게 요약 잘 하기를 요구하는 것이고, 논술에서 반드시 요약하기를 묻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김재인 유웨이 중앙교육 오케이로직 논술 대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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