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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장정 88정기국회(3)|국정감사와 예산 심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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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추곡수매 값 서로 올리려 해 진통 클 듯
13대 첫 예산국회인 이번 정기국회에서 정부·민정당은「여소」의 실상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될 것이다.
다수 야당 측이 벌써부터 16년만에 부활된 국정감사를 통해 중앙정부·지방관서에 들이닥쳐 현장중심 감사로, 들쑤셔대려고 단단히 작심하고 있는데다가 정부가 내놓은 예산을 대폭 깎아 내리겠다고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민정당은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화 의지를 가시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정기국회의 국정감사 등을 성공적으로 주도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는 있다.
지난 7∼8일 양평 세미나에서△국정감사는 회계감사나 비리감사가 아닌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정책선택 등에 대한 감사여야 하고△법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충실히 하되 조사대상 역시 법에 규정된 범위만을 수용하며△가능한 출장감사를 삼가고 국회 내 감사를 하며△5공 비리조사 대상을 다시 감사대상으로 하는 것을 최대한 배제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김윤환 총무는『16년만에 국정감사가 부활된 만큼 구태의 폐습을. 탈피해 국회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줘야 할 책임이 주어져 있다』면서『행여 4당 체제 아래서 국정이 마비되지 않도록 여야간 협의가 필요하며 이것은 단순히 정부를 보호하려는 차원이 아니고 지난날의 잘못을 답습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당의 구상은 처음부터 빗나가기 시작하고 있다.
평민·민주·공화당은 이미 의원세미나·특별연수 교육 등을 통해 산전수전을 다 겪은 3김 총재들로부터 국정감사의「비법」을 전수 받는 한편 과거 국정감사를 받아본 경험이 있는 전직고위 관리 등을 초청해 실무를 익히는 등 칼을 갈고있다.
김대중 평민당총재는 소속의원들에게『올림픽기간을 입산 수도하는 기분으로 철저히 활용하라. 최대한 정보를 캐내고 문서검증을 충분히 하고 관계법 등을 완벽히 숙지하라』고 독려하고 있으며, 김영삼 민주당총재·김종필 공화당총재도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새 야당 모습을 보여야 한다면서 여러 차례 정책 모임을 갖고 대비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야당은 이번 국정감사가 입법에 반영키위한 국정의 실태파악과 예산심의 자료확보의 기본목표에 충실해야함은 물론△인권유린·예산남용·부정부패 등의 비리를 파헤치고△되도록 많은 곳을 다양하게 하되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대상 범위를 과감히 갈라내 몇몇 주요기관 단체에 초점을 맞춘 집중적 감사를 실시하며△국정감사를 잘하면 특위활동에도 도움이 되는 만큼 앞으로 특위운영에도 참고할 수 있도록 한다는 입장을 세워놓고 있다.
이처럼 여야가 기본시각에 차이가 있는 데다 청와대 감사요구 등 감사대상에서부터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이고 있고 감사범위에 있어서도 야당 측은 상위별로 지방관서까지를 모두 망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등 여야간 조정이 쉽지 않아 국정감사는 첫 단계의 일정마련에서부터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결국 야당의 의도대로감사가 진행될 판이어서 자칫하다간 집권여당의 권위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도 있으며 4당의 협의·통제체제가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면 과거국정감사의 폐단이 재현될 우려도 없지 않아 정부 각 부처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예산안심사 역시 여야입장이 완전히 엇갈리고 있어 조정내용이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민정당은△담배세 등 전매수익금의 지방이관과△각종 세법개정으로 2조6천억 원의 세 수입이 감소된 마당에 야당이 이번 심의에서 예산을 대폭 깎겠다고 덤벼들면 민생 저소득층 배려 등 공약사업 수행에 어려움이 많다고 보고 19조3천7백억 원의 89년 정부안을 그대로 밀고 나갈 방침이다. 여당은 이 예산이 올해의 17조4천6백44억 원보다 10·9%의 증가에 그쳐 금년도 예산증가율 122%보다 낮은 긴축예산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국세이던 담배세가 내년부터 지방으로 이관되고 서울지하철건설 등 일반회계에서 지원되던 약1조 원이 세출예산에 반영돼있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실질증가율은 16∼18%에 이르는 팽창예산』이라며 내년도 예산증가율은 7%(민주당은5%, 공화당은 미정)를 넘지 않는 18조6천억 원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야당은 이와 함께 세입을 줄이려면 과감한 세법개정이 뒤따라야 한다는 전제아래△특별소비세·부가가치세의 세율조정과 방위세 등 한시세의 폐지△간접세보다 직접세 비율을 점차 높여 재산과세를 강화△전화세 등을 폐지하는 한편△세출부문에서도 정부·여당의 선거공약성 사업은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이번이야말로 소외계층에 대한 재분배 차원에서 예산편성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야당 측은 대충△매년 당연히 증가하는 경직성경비중 공무원급여·교육재정교부금·일반회계의 양특지원 등을 제외한 예비비·방위비는 적정 선까지 재조정하고 기타 정상세출 예산은 88년도 기준으로 동결 편성하고△정치성 공약사업은 일체의 공공투자 사업예산에서 제외하며△재정투융자예산은 사회간접자본·중소기업·임대주택건설 등에 최우선 확대지원하고△지자제 실시와 유관한 정치성투자도 대폭 줄여 편성해야 한다는 내부방침을 마련했다. 정부예산을 통해 야당이 생색을 내겠다는 것이니 민정당으로서는 죽을 맛이다.
이번부터 국회 동의를 받게된 추곡수매가 결정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논란과 진통이 예상된다.
민정당은 가격 결정에 있어 물가인상요인과 도시근로자의 생계비 상승 및 정부재정 확보문제가 고려돼야 한다며 야당의「정치카드」이용 가능성을 경계, 추곡수매가를 14%이상 올려야한다는 농림수산부 입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야당 측은 한술 더 떠서 최저생산비, 물가상승과 금리에 따른 걱정이윤, 도시근로자수준에 준하는 노임 외에 농가부채경감 차원에서의 정치적 결단까지를 고려해 대폭 인상돼야 한다며 평민은 18%, 공화 20%, 민주 22%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야 3당이 끝까지 공동보조를 취해 그들의 입장을 관철해 나갈지, 아니면 민정당이 야당사이의 의견차이를 비집고 들어가 야당과의「정책제휴」에 성공할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고도원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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