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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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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사람 체액 속의 염분 농도는 2억 년 전 바닷물과 똑같다고 한다.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와 인간으로 진화할 동안 땅에는 42종의 무기물만 남았다. 빗물에 절반은 씻겨 내려갔다. 반면 바닷물에는 여전히 90종의 무기물 원소가 녹아 있다. 그래서 요오드 등 부족한 무기물은 해조류를 통해 섭취하는 것이 최고다.

중국의 산해진미 중 으뜸이라는 바다제비집 요리(燕窩湯.옌워탕). 바다제비는 외딴섬 절벽에 집을 짓는다. 바다에서 우뭇가사리 등 해초를 물어와 잘게 끊은 뒤 끈적이는 타액을 섞어 둥지를 튼다. 이 제비집을 뜯어 끓인 게 옌워탕이다. 바다제비가 만든 우뭇가사리 국수나 다름없다. 오돌오돌한 감촉과 끊길 듯 끊기지 않는 면발. 섬세하고 감칠맛 나는, 사치스러운 요리다. 바다 속 무기물이 듬뿍 녹아 있어 영양도 만점이다.

옌워탕은 제비를 괴롭히는 탐욕의 산물이다. 처음 지은 둥지는 흰색을 띤다. 임금에게 진상되는 상급품이다. 사람에게 집을 빼앗긴 바다제비는 급한 김에 깃털도 함께 섞어 다시 둥지를 짓는다. 하급품이다. 마지막으로 짓는, 붉은 색이 도는 둥지가 임금에게도 안 준다는 최상품이다. 침샘이 말라 피까지 토하며 지은 둥지다. 청나라 건륭 황제는 이런 수프를 매일 아침 한 그릇씩 비웠다고 한다. 83세까지 살아남은 그는 중국 임금 중 최장수했다.

제비에게 야박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음력 삼월 삼짇날이 달포나 지났는데 강남 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 서울시가 '관리 대상 동물'로 지정하고 기다린 지 6년이 흘렀다. 올해는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 지정을 검토할 만큼 개체 수가 급감했다. 조류 전문가들은 "아파트 천지가 되는 판에 처마 끝에 둥지를 트는 제비가 보금자리를 잃었다"고 말한다.

제비가 사라지자 우체국도 꼬리를 빼고 있다. 빠르고 좋은 소식을 물고 온다는 제비. 우체국은 그런 제비 상징물을 22년 만에 바꿀 계획이란다. 그나마 환경운동연합이 서울시장 출마 후보들에게 제시한 비전이 눈길을 끈다. 자전거 타는 서울, 콘크리트 없는 한강에 이어 '제비가 나는 서울'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이미지 정치고, 성별이고, 상관없다. 제비를 불러오는 후보라면, 한 표가 아깝지 않을 성싶다. '북쪽 툰드라에도 찬 새벽은/…/제비 떼 까맣게 날아오길 기다리나니/마침내 저버리지 못할 약속이여'(이육사의 '꽃'). 제비 없는 서울은 툰드라보다 나을 게 없다. 나중에 아이들에게 흥부전을 어떻게 읽어줘야 할지도 겁나고….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