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은 하나의 이야기다. 도전과 고통, 실패와 극복, 두려움과 즐거움이 모두 있다.”
알파인클럽 전 회장 스티븐 베너블스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참석차 방한 #영국인 첫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스티븐 베너블스(64)는 산에서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등반가이자 이를 대중에게 알리는 이야기꾼이다. 무산소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최초의 영국인인 베너블스는 17세에 전문 등반을 시작해 히말라야·알프스·안데스 등 세계 유명 산지 40여 곳을 탐험했다. 세계 최초의 산악회인 알파인클럽 회장을 역임한 유명 등반가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등반기를 담은 책을 15권 이상 출간해 보드맨-태스커 산악문학상, 밴프 마운틴 북 페스티벌 그랑프리와 베스트북을 수상했다. 2007년에는 그가 시나리오를 쓴 산악 다큐 영화 ‘알프스(The Alps)’가 개봉했다. 지난 9~10일 베너블스는 ‘울주세계산악영화제’와 산악전문매체 ‘마운틴저널’ 초청으로 울산과 서울을 찾아 ‘에베레스트 그리고 그 너머’를 주제로 다양한 등반 경험을 들려줬다. 그를 9일 울산 울주군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에서 만났다.
- 1988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시 험난하기로 유명한 동벽캉슝페이스에 신루트를 개척했다. 새로운 길을 가는 이유가 뭔가.
- “누군가 간 길을 가는 것은 너무 지겹다. (웃음) 히말라야 산맥에 가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더 특별하고 어려운 등반을 하고 싶다. 당시 전문가들은 나에게 ‘정신 나갔다(mad)’고 했지만 우린 해냈다. 미답봉(未踏峯)에 오르는 것은 불확실성이 크다. 어디까지 가능할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새 길을 개척한다. 인간은 더 어려운 일을 하고 싶은 열망을 타고난다. 그게 도전의 큰 동기다.”
영화 ‘알프스’는 등반가이자 산악잡지 편집자인 존 할린 3세가 험난하기로 유명한 스위스 알프스의 아이거 북벽을 오르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 존 할린 2세를 추모하며 같은 곳을 등반하는 이야기다. 이번에 한국에 번역 출간된 『히말라야 알파인 스타일』은 베너블스가 99년 앤디 팬쇼와 공동 집필한 책이다. 히말라야 40개 산의 등반 역사와 정보를 담고 있다.
- 등반기를 책·영화 같은 콘텐트로 남기는 이유는.
- “등반은 거대한 이야기다. 첫 책인 『페인티드 마운틴(Painted Mountains)』을 읽으면 왜 산에 오르는지 알 수 있다. 사람들이 산악 책이나 영화를 보고 등반에 흥미를 느꼈으면 한다.”
- 왜 산에 오르나.
- “배고프면 음식을 먹고 목마르면 물을 마시는 것처럼 등반하고 싶기 때문에 한다. 물론 큰 고통이 따르지만 그것을 다 이겨내고 목적을 이뤘을 때 즐거움은 대단히 크다. 또 등반하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갈 수 있다.”
- 등반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나.
- “20대 초반 너무 많은 실패로 동기를 잃었다. 등반을 완전히 접으려 했지만 동생과 히말라야 트레킹을 가서 생각을 바꿨다. 너무 아름다웠다. 92년 인도 판치출리 하산 중 두 다리가 부러진 뒤로는 고산 등반보다 남극 사우스 조지아섬 등 탐험에 눈을 돌렸다.”
- 포기하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 “에베레스트 등반은 정말 힘들다. 그래도 계속 나아가는 것은 스스로 실망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포기한 뒤에 ‘좀 더 열심히 할걸’ 후회하느니 두렵더라도 계속 나아가는 게 낫다.”
부상 때문인지 베너블스는 다리를 절었다. 그럼에도 올 9월 사우스 조지아의 미답봉 3곳 등반을 목표로 삼았다. 아직 주제를 정하진 않았지만 다음 책도 낼 계획이다. 베너블스는“한국에 처음 왔는데 팔을 다쳐 북한산·설악산 등반을 못 하는 것이 아쉽다”며 “영국 산악회와 한국 산악회가 교류하는 기회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