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펜」과잉 인권공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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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제52차 국제서울 펜 대회에서 새삼 제3국에 대한 미국식 인권운동이 비판 대에 올랐다.
지난달 31일의 펜 대회 대표자회의는 구속중인 한국문인문제와 관련, 한국정부에「석방결의안」을 낼 것인지,「탄원서」를 낼 것인지를 놓고 표결에 붙인 끝에「탄원서」를 제출키로 결정했다.
그러자 평소 강경론을 펴온 미국 뉴욕 펜 본부(회장「수잔·손탁」) 측은 회의분위기 등을 문제 삼으며 재투표를 하자는 상식이하의 주장으로 한국을 비롯한 각국 대표자들의 반발을 샀다.
이날 회의는 결국 재투표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표결을 실시하는 해프닝 끝에 재투표 반대가 압도적인 우세(38표)를 보여 원안대로 통과시켰다.「투옥문인이 있는 국가에서는 펜 대회 개최를 허용할 수 없다』며 지난 3년간 서울대회개최를 맹렬히 반대해온 뉴욕 펜 본부는 대회기간중인 지난달 30일 저녁에는 서울시내 세종호텔에서「구속문인을 위한 소연」이라는 행사를 국제 펜 본부와 사전협의도 없이 독자적으로 개최했다.
이토록 한국의 인권문제에 적극적인 그들은 평소 과연 얼마나 진지하고 건강한 관심을 기울여왔을까.
지난달 27일의 김포공항 내한 기자회견에서 그들은 김남주·이산하 등 자신들이 석방대상으로 하고 있는 작가에 대해『단 1편의작품도 읽어본 적이 없어 작품경향을 모른다』고 했다.「르네·타베르니에」국제펜클럽부회장(프랑스)은 이들의 행동과 관련해『진지한 성찰이 결여된 미국 류의 광고문화의 한 형태』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외국문인은『한국정부를 궁지에 몰아넣고 윽박지르기만 하는 방식으로는 문제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걱정을 하기도 했다.
결국 이날 행사는 의도와는 달리「와야할 사람들이 안 나온」초라한 모임이 되고 말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릇된 도덕적 우월감에서 비롯된 미국축의 간섭방식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은 것은 바로 그들이「온정의 대상」으로 생각해온 구속 자들이었다.
이부영씨는『한국국민은 지난해 6월의 뜨거운 민중항쟁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분열과 미국의 간섭으로 또다시 고통받고 있다』는 요지의 옥중메시지를 통해 미국 펜 본부에 의한 명예회원 추대를「정중히」거절했다. 이하경<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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