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무형문화재 정책, 과잉보호벽을 깨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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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러나 인기 종목이 죄가 될 수는 없다. 가야금산조는 어쩌면 천도깨비 때문에 벼락 맞는 고목일 수 있다. 오늘의 이 사태는 "인멸의 우려가 있는 종목의 보호"라는 1960년대 초발심이 흐려진 무형문화재 정책의 잘못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예를 도입해 무형문화재를 보호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40년이 넘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이렇게 시끄러운 이유는 일본과 우리의 전승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실스(E Shils)는 전통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2번의 전달과 3세대(약 100년)의 간격이 요구된다고 했다. 우리의 경우 한 세대가 넘는 일제강점기에 전승이 단절되고, 현재 지정된 종목 대부분이 어렵게 복원된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원형'에 대한 논란들도 그 때문이다. 60년대에는 아무도 돌보지 않던 종목들이 이제는 돈이 된다는 인식과 함께 보유자 인정도 경쟁의 시대에 돌입했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보유자의 문화권력에 대한 제재의 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제도는 예전의 과잉보호 정책에 머물고 있다.

현행 제도도 그간 우여곡절을 겪었다. 94년 보유자의 권한 강화를 골자로 하는 시행규칙 개정이 있었다. 이후 시민.학계의 요구로 99년 12월 개혁이 이뤄졌다. 신규 보유자에게는 돈 지원 없는 '명예제'가 주요 골자였고, 이후 2년 동안 별 문제없이 시행됐다. 그러나 2002년 일부 기존 보유자의 문화권력 수호운동과 직면하게 되자 당시 정책 책임자는 이를 원위치(돈 인상 지급)시키고 떠나버렸다. 그 후 전승력 향상과는 관계없이 보유자 인정 경쟁만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결국 돈 때문이었다. 정부의 의지 부족이었다. 현 문화재청은 또다시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무형 유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여기서 재론하지 않겠다. 제도를 잘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적당한 타협도 필요하다. 사족(蛇足) 같은 명예보유자제도도 타협의 산물이다. 그러나 이기주의는 배척돼야 한다. 제도는 정책의 산물이고 보유자는 그 최고의 수혜자임을 모두가 잊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종목의 자생력 신장에 장기 목표를 두고 보호를 필요로 하는 종목에 대해 일정기간 보호와 지원을 해줘야 한다. 개개의 종목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함께 소생 가능성이 없는 종목에 대해서는 그때까지의 상황을 철저하게 기록화해야 한다. 동시에 '기록 보존' 종목으로 전환하고 과감하게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의 사태는 행정편의상 일률적인 종목 관리와 평생연금(월 100만원)의 평등한(?) 분배가 자초한 것이다. 42년 동안 정부 지원으로 전승자가 몰리는 인기 종목에 대해서는 재정적인 지원을 과감히 중단하고 별도의 예시 종목으로 분류.관리함이 필요하다. 이미 자기 몸보다 더 커버린 뻐꾸기 새끼에게 끊임없이 벌레를 물어다 주는 뱁새의 어리석음이 지속돼서는 안 된다. 결국은 국민의 세금이다.

이장열 서울시문화재위원·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