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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에 오성홍기 옆 출국 사진 … 김정은 자신감 과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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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 주민들이 11일 평양역에 있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가 악수하는 장면을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나온 보도다. [AP=연합뉴스]

북한 주민들이 11일 평양역에 있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가 악수하는 장면을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나온 보도다. [AP=연합뉴스]

북한 매체들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중국 전용기 이용을 하루 만인 11일 공개했다. ‘주체의 나라’로 자부하는 북한에서 이른바 ‘최고 존엄’이 다른 나라 비행기를 타고 정상회담장으로 향했다는 점을 밝힌 자체가 이례적이다.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일제히 김 위원장이 “조·미(북·미) 수뇌 상봉과 회담이 개최되는 싱가포르를 방문하기 위해 10일 오전 중국 전용기로 평양을 출발했다”며 회담이 12일 오전 싱가포르에서 진행된다는 사실을 전했다. 또 김정은이 북한의 공식 전용기인 참매 1호가 아닌 중국 전용기를 이용했다는 사실까지 주민들에게 알렸다. 노동신문이 1면에 게재한 사진엔 김정은이 항공기 트랩에 올라 손을 흔드는 모습 옆으로 중국 오성홍기가 선명히 박혀 있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당 선전선동부의 철저한 통제하에 제작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엔 북한이 중국 비행기를 타고 간 사실을 숨기지 않아 거꾸로 자신감을 보여 주려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동시에 중국을 챙겼다는 분석도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중국 전용기를 빌려 해외 방문에 나선 사실을 전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솔직한 북한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동시에 북·중 관계를 과시했다”며 “김정은 위원장의 안전을 의식해 명분보다 실리를 택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방문 이례적 신속 보도 #1면에 중국 전용기 탑승 사진 공개 #“솔직한 이미지 만들며 중국 챙기기” #“비핵화·평화체제 협상” 의제 공개 #일정 끝나지 않았는데 상세한 보도 #김정은 평양 비워도 끄떡없다 부각

최고 지도자의 해외 방문을 놓곤 방문 일정이 마무리된 뒤에야 보도해 왔던 관행도 이번엔 깼다. 김 위원장의 향후 일정, 특히 국외 체류 일정을 예고성으로 보도한 것은 이례적이다. 김정은의 지난 3월 첫 방중 당시 북한 매체들은 3박4일간의 일정이 모두 끝나고 그가 평양에 돌아온 후에야 관련 사실을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관련 소식을 1~2면에 걸쳐 전했다. 김정은이 장시간 평양을 비우고 해외에 나가 있어도 끄떡없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매체들은 북·미 회담 의제도 상세히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달라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새로운 조·미 관계를 수립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문제,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문제들을 비롯하여 공동의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에 대해 폭넓고 심도 있는 의견이 교환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일 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로 떠나며 전용기 ‘참매 1호’가 아닌 중국 전용기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일 정상회담을 위해 싱가포르로 떠나며 전용기 ‘참매 1호’가 아닌 중국 전용기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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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관계자는 이날 싱가포르 미디어센터에서 노동신문이 6·12 북·미 정상회담 의제를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라고 보도한 것에 대한 논평을 요청받고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조선중앙통신이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 방문 소식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보도한 것에 대해서도 “낙관론의 원천(source for optimism)”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이와 함께 노동신문 논설을 통해 “지난날에는 적대 관계에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자주권을 인정하고 우호적으로 나온다면 관계 개선과 정상화를 실현하자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자주권’을 수차례 밝혔다. “자주성을 견지하는 것은 공정한 국제관계 수립의 필수적 조건”이라며 “각 나라는 자기에게 알맞은 사상과 제도, 이념을 선택할 권리가 있고, 남의 일에 간참(참견)을 하고 남에게 자기의 의사를 강요한다면 공정한 국제관계를 수립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 체제나 인권 문제에 간섭하지 말라는 얘기다.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싱가포르에 도착해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교장관의 영접을 받았다는 소식도 별도로 전했다. 이어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와의 회담 소식도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김정은이 남·미·중 등 한반도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있는 국가가 아닌 제3국 정상과 회담을 한 것은 처음이다. 신문은 김정은이 “(정상회담을 위해) 온갖 편의를 제공해 준 싱가포르 정부에 깊은 사의를 표했다”며 “공화국 정부와 조선 인민을 대표해 싱가포르 정부와 인민들에게 진심으로 되는 인사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싱가포르=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특별취재팀

김현기·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예영준·신경진 베이징 특파원, 정용수·이철재·전수진·유지혜·박유미·윤성민 기자, 강민석 논설위원,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오영환 군사안보연구소 부소장,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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