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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포스1 vs 인민포스1, 벤츠 vs 비스트···북미 장외 신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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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지난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국제항공 CA61편 전용기를 타고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내리고 있다. [로이터=연합]

지난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국제항공 CA61편 전용기를 타고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내리고 있다. [로이터=연합]

‘세기의 담판’을 하루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이에 장외 자존심 대결이 치열하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오후 2시 36분(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보다 먼저 회의가 열리는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그는 자신의 전용기인 참매 1호(IL-62M)가 아닌 중국 정부로부터 빌린 항공기를 탔다. 중국의 국영 항공사인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ㆍAir China) 소속의 보잉 747-400이었다. 편명도 CA61이었다. 일부 네티즌은 이 항공기를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1’에 빗대 ‘인민포스1’이라고 부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 싱가포르 파야 레바르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AFP=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 싱가포르 파야 레바르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AFP=연합]

트럼프 대통령의 에어포스1은 오후 8시22분 싱가포르의 파야 레바르 공군기지에 내렸다. 에어포스1은 여객기인 보잉 747-200B를 개조해 첨단 통신와 방호 장비를 갖췄다.

미국의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1(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탑승한 중국국제항공 CA61 '인민포스1'. [트위터 Joseph Dempsey]

미국의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1(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탑승한 중국국제항공 CA61 '인민포스1'. [트위터 Joseph Dempsey]

그러나 김 위원장의 CA61(최대 탑승인원 416명)이 트럼프의 에어포스1(366명)보다 좀 더 크다. 그리고 CA61의 747-400은 1988년 양산된 기종이지만 에어포스1의 747-200B는 1970년 첫 생산한 기종이다. CA61이 에어포스1보다 좀 더 크고 좀 더 신형이다.

노동신문 6월 11일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도착 기사. 김 위원장이 내린 전용기에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와 에어차이나 표기가 또렷하게 보인다.

노동신문 6월 11일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싱가포르 도착 기사. 김 위원장이 내린 전용기에 중국의 국기인 오성홍기와 에어차이나 표기가 또렷하게 보인다.

정용태 북한연구소장은 “먼저 기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북한의 의도가 엿보인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관영매체인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 도착 소식을 전하며 중국의 중기인 오성홍기와 에어차이나 마크가 그려진 여객기 사진을 그대로 내보냈다. 정 소장은 “북한 당국은 대내적으로 북한 주민에게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좋아져 중국이 배려했다. 이 모든 게 김 위원장의 업적’이라고 선전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전용기 이외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존심 대결을 펼치고 있다.

①경호=싱가포르에도 북한의 러닝맨이 등장했다. 지난 10일 김 위원장이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와의 회담을 위해 숙소인 세인트레지스 호텔을 출발하자 짧은 스포츠형 스타일과 짙은 색 양복 차림의 경호원이 따라붙었다. 35도가 넘는 열대의 날씨에도 이들은 차를 에워싸고 뛰었다. 이들은 김 위원장의 근접 경호를 담당한 974 부대원들이다. 한국의 대통령 경호처와 비슷하다. 김 위원장의 현장지도를 따라 다닌다. 부대원은 3000여 명 수준이며 이들만이 무장한 채 근접경호를 할 수 있다.

지난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리셴륭 싱가포르 총리를 만나기 위해 차량을 타고 세인트레지스 호텔을 나서고 있다. 경호원들이 차량을 에워싸고 있다. [뉴스1]

지난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리셴륭 싱가포르 총리를 만나기 위해 차량을 타고 세인트레지스 호텔을 나서고 있다. 경호원들이 차량을 에워싸고 있다. [뉴스1]

트럼프 대통령 곁엔 늘 비밀경호국(SS)이 있다. 비밀경호국은 원래 재무부 산하에서 위조지폐단속을 하는 조직이었으나 1901년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암살 이후, 요인 경호를 임무도 맡게 됐다. 비밀경호국의 역사가 요인 경호의 역사라 불리는 이유다. 2011년 기준 예산은 18억달러, 인원은 7000명이 넘는다.

지난 10일 미국의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에서 장비를 옮기고 있다. 이들은 대(對) 저격팀 소속이다. [AP=연합]

지난 10일 미국의 비밀경호국 요원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에서 장비를 옮기고 있다. 이들은 대(對) 저격팀 소속이다. [AP=연합]

②차량=지난 10일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서 북한의 수송기 Il-76가 차량을 내리는 장면이 포착됐다. 김 위원장은 번호판을 가린 이 차량에 타고 공항을 떠났다. 벤츠S600 풀만가드로 알려진 이 차량은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때도 모습을 보였다. 북한이 유엔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에 2013년께 중국을 통해 밀수한 차량으로 정보당국은 추정한다.

지난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이 싱가포르 창이공항을 나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이 싱가포르 창이공항을 나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의 차량은 ‘비스트(Beastㆍ짐슴)’ 또는 ‘캐딜락1’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방탄은 기본이다. 항상 2대를 운영한다. 어느 차에 대통령이 탔는지 숨기기 위해서다. 보통 한 나라 수반이 외국을 방문할 때 해당 국가에서 제공하는 의전 차량을 이용하는 게 관례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은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전용차량을 공수한다. 김 위원장도 이런 점을 따라 한 듯 하다.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가 꽂힌 차량(앞에서 셋째)가 대통령 전용차량이다. [AP=연합]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가 꽂힌 차량(앞에서 셋째)가 대통령 전용차량이다. [AP=연합]

③핵가방=전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포인트 중 하나가 김정은이 싱가포르에 핵가방을 가져왔는지다. 북한은 핵가방의 존재를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김정은은 핵 위기가 한창인 1월 1일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있다”고 언급했다. 유사시 핵무기 사용 명령을 내릴 수 있는 통제 체계를 휴대용으로 만든 게 핵가방이다. 가방 안에 통신 장비와 핵무기 사용 명령 암호책이 들어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마라라고 리조트 방문 당시 핵가방을 운반하는 백악관 군사보좌관의 모습이 일반인의 눈에 띄어 페이스북에 올랐다. [사진 페이스북]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마라라고 리조트 방문 당시 핵가방을 운반하는 백악관 군사보좌관의 모습이 일반인의 눈에 띄어 페이스북에 올랐다. [사진 페이스북]

미국은 1950년대부터 핵가방을 운용했다. 미국 대통령이 가는 곳엔 언제나 ‘뉴클리어 풋볼’이라는 별명의 핵가방을 들고 있는 장교가 따라다닌다.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의 핵가방을 회의장에 반입하는 문제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몸싸움을 벌인 적도 있었다.

이철재ㆍ정진호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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