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는 지금 ⑩ 끝·희망의 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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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상파울루 선물·상품 거래소에서 한 중개인이 손가락으로 값을 흥정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수출 호조에 힘입어 브라질 증시는 연일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상파울루 AP=연합뉴스]

파올로(35). 브라질 상파울루에 사는 회사원이다. 요즘 그는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월급을 모아 산 페트로브라스(브라질 국영 석유회사)의 주식값이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20헤알(약 10달러)대에서 산 페트로브라스의 주가는 최근 46헤알까지 올랐다. 이쯤에서 빠지는 게 좋을지 어쩔지 고민 중이다. 헤알화 강세와 수출 호조 속에 지금 브라질 증시는 활황장세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삼성전자 책임자인 Y부장. 얼마 전 좀 더 넓은 곳으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애를 먹었다. 시내에 빈 사무실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2001년 디폴트(국가부도) 사태까지 갔던 아르헨티나는 지금 경기 과열을 걱정하고 있다. '좌파 바람' 속에서도 남미 각국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최근 브라질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 목표를 5%로 올려 잡았다.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5~8%의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남미의 고질병이었던 외채 위기와 살인적 인플레는 옛날 얘기가 됐다. 브라질의 경제 칼럼니스트인 카를로스 사르덴버그는 "투자자들이 남미의 '좌파 바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지난 3주 남짓 남미 여러 나라를 둘러보고 느낀 것은 '일반화의 함정'이었다. 좌파 정당들이 집권했다고 '좌파 바람'이라 규정하는 것은 실상을 호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보여준 대로 정치와 정책은 별개의 문제다. 세계화한 시장의 힘은 정치로 정책을 채색(彩色)하는 사치를 용납하지 않는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의 우고 차베스와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사회주의적 좌파 노선을 외치고 있지만 북한 같은 자급경제의 고립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시장의 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장은 이미 그것을 간파했다. 아르헨티나의 언론인인 호르헤 엘리아스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좌파, 우파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시리즈를 연재하는 동안 여러 독자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치안 부재.부패문화.포퓰리즘.차등교육 등 부정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한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열 개 주제로 구획을 지어 정리하다 보니 또 한 번의 '일반화의 오류'를 저지른 느낌이 없지 않다.

치안 문제에서 칠레는 예외라는 보도에 대해 구체적 통계까지 제시하며 반박한 교민 독자도 있었다. 국영기업을 외국에 매각하면서 천문학적 돈을 챙긴 혐의로 물러난 볼리비아의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중 한 명인 곤살로 산체스 데로사다'로 바꾸는 게 정확하다고 알려 온 독자도 있었다. 군부독재의 유산을 언급하면서 왜 브라질에 대한 설명은 뺐느냐고 항의한 독자도 있었다. 감사드린다. '좌파 바람'을 쫓아 남미에 갔다가 뜻하지 않게 새로운 희망의 빛을 보았다는 소회로 시리즈를 맺는다.

상파울루=배명복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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