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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영화천국] "비야, 그만 좀 와라" 영화계도 '水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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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Q : 최근 집중호우로 농작물 피해가 크다고 한다. 그렇다면 영화 촬영시 비 때문에 손해보는 건 없나.

A : 비는 촬영장의 가장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설령 비 오는 장면을 찍는다고 해도 그날 비가 오면 손해막심일 정도다(비 오는 장면은 살수차를 부르거나 심지어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 넣어도 된다).

비 때문에 개봉을 미뤄야 했던 영화도 적지 않다. 두 죄수가 특사 출소를 하루 앞두고 탈옥한다는 내용의 설경구.차승원 주연 '광복절 특사'는 지난해 8월 15일 광복절에 첫 선을 뵈려 했으나 연이은 비 때문에 극장 비수기인 11월에 개봉했다.

전주 공업고등학교에 지은 교도소 세트가 태풍 때문에 지붕이 날아가고 깔아놓은 흙이 빗물에 쓸려내려가는 등 비 피해가 컸기 때문이었다.

또 차승원이 도넛 판을 엎는 장면은 관계자 말을 빌면 "무슨 귀신 붙은 것처럼 찍으려고만 하면 비가 오는 바람에"결국 여섯번째 시도에서 촬영에 성공했다.

비가 '웬수'인 까닭은 돈 때문이다. 지방 촬영이 잦아진 요즘은 더하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동안 감독 이하 제작진의 숙박비와 식비가 고스란히 빠져나가는 것이니 우기(雨期)가 길어질수록 영화사의 속은 시꺼멓게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엑스트라를 불렀다면 사태는 더 커진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광주까지 당일치기로 촬영하기로 하고 엑스트라를 1백명 불렀는데 현장에 도착하고 보니 비가 내려 취소됐다고 치자. 그래도 얄짤없다. 평균 5만~7만원 하는 일당은 전액 지급해야 한다. 여기에 크레인 같은 촬영 장비까지 대여했다면 대여료까지 더해진다.

이 '원망스러운 비(雨)님'은 촬영장만 괴롭히시는 게 아니다. 10월 개봉하는 임창정.김선아 주연의 코미디 '위대한 유산'처럼 옥외에서 포스터 사진 찍을 때 쫓아와 산통을 깨놓으시기도 한다.

개봉 후에 비가 온다면? 이 또한 손님을 쫓는 편에 가까우니 이래저래 비는 애물단지임이 분명하다. 천수답(天水畓)시절에는 기우(祈雨)제를 지냈다지만 2000년대 영화 촬영장에서는 기우(忌雨)제라도 지내야 할 판국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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