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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마리 잡고도 20일간 수사 제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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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앙경제신문 오홍근 사회부장피습사건은 사건발생 20일 만인 25일 군 수사당국이 범인 4명을 검거, 범행을 자백 받음으로써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 언론 테러」라는 점에서 세인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던 이번 사건은 당초 용의차량의 번호가 아파트경비원으로부터 정확히 목격돼 의외로 빨리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보였으나 문제의 승용차가 군 정보기관 소유로 밝혀짐에 따라 경찰수사의 한계점을 드러내며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남겼다.
결국 사건이 「언론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는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정치문제화 되면서 군 당국이 적극수사에 나서 하루만에 범행 내용이 일단 밝혀졌으나 그 동기나 배후·범행 후의 은폐 등 전모는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이 같은 수사 급전에 대해 사회 일각에선 그 동안 계속돼 온 「군 관련 의혹」 보도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 온 군 당국이 갑작스레 일기시작한 정치적 파문의 더 큰 확산을 막기 위해 서둘러 사건을 일단락 지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경찰수사=경찰은 사건발생직 후 탐문 끝에 유력한 목격자 이명식씨(55·아파트경비원) 등 4명을 찾아내 이씨로부터『유력한 용의 차량은 서울 1라3406 포니 2 승용차』라는 사실을 밝혀 냈다.
이에 따라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이던 경찰의 수사가 갑자기 벽에 부닥쳐 위축되어 버린 것은 문제의 차량이 육군 정보 사 소유로 밝혀진 다음부터다.
이 때부터 경찰은 문제의 차량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포기한 채 『월간중앙』4월호 기사가 나간이래 10여 차례의 협박전화를 받아 왔다는 오씨의 말에 따라 기사와 관련, 기사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에 대해서만 형식적인 수사를 펴 왔다.
한편 경찰은 오 부장 테러사건에 군 관련 의혹이 있다는 평민당과 기자협회 등 여론의 화살이 빗발치자 12일 군 수사기관에 차량수사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군 수사기관이『문제의 차량은 사건당일 나간 적도 없다』는 짤막한 통보를 해오자『「공신력 있는 군 수사기관의 통보이므로」경비원 이씨가 차량번호를 잘못 보았거나 위조번호일 가능성이 있으니 비슷한 차량번호나 번호 판 위조·변조수법 전과자를 추적하겠다』며 차량수사의 초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경찰의 이러한 수사방향 전환에 따른 수 차례의 확인에도 불구, 이씨는『차량번호는 틀림없다』며 끝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자 여론도 차량대질을 요구, 경찰도 17일 군 수사기관에 목격자와 차량의 대질을 요청했다.
그러나 군 수사기관이 재차 『관련 없으므로 대질은 필요 없다』고 통보 해와 경찰의 차량수사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에 있었다.
경찰은 오히려 군 당국이 23일 갑자기 방침을 변경, 차량대질에 응하겠다고 나서자 의아해 하기까지 했다.
◇군의 대응=정보 사 소유 문제의 포니2 승용차가 유력한 용의차량임이 알려진 뒤에도 군 측은 처음 일언반구의 해명도 하지 않았다.
11일 한국기자협회·전국 언노협·평민당·민주당 등이 군 관련 설의 진상규명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서자 군 측은 12일 경찰에 『문제의 차량은 육군정보사소유 업무용 차량임에 틀림없으나 4일 오후1시부터 6일까지는 운행된 사실이 없다』고 통보했다.
이에 대해 목격자 이씨와 언론에서 강한 의문을 표시하며 차량 대질을 요구하고 나서자 마지못해 17일 차량대질 협조를 경찰로부터 요청 받은 군 측은 처음과 마찬가지로『이미·통보한 것으로 가름한다』며 대질을 거부, 의혹을 더 샀다.
군의 이 같은 태도는 22∼23일 들끓는 여론에 따라 정치 문제화 될 기미를 보이고 민정당 과 내무장관 및 국방부장관이 잇달아 진상규명과 범인검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나서 하루 아침에 돌변했고, 24일 군경합동수사를 본격적으로 시작, 차량대질을 가졌고 이어 하루 만에 범인검거 발표가 나오게 된 것이다.
◇잇단 제보=오 부장 피습사건수사가 군의 협조거부로 벽에 부닥쳐 지지부진하자 유력한 제보전화가 각 언론사로 빗발쳤으며, 이 같은 제보는 군 수사기관에도 들어가 군 측이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게 한 한 가지 요인이 됐다.
21일 새벽 익명의 제보자는 본사로 전화를 걸어와 『이번 사건은 육군 정보 사 예하 조직의 소령1명과 하사관2명의 짓이며 차량은 보도된 3406 포니2등 2대가 사용된 것으로 안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사태의 진전을 보아 추후 다시 제보하겠다』고 말해 왔다.
이어 22일에는 『범인은 박철수 소령과 하사관2명으로 수사에 대비, 엉터리 서류 등 각본을 이미 짜 놓았다』고 알려 왔다.
24일 차량대질 결과 문제의 차량이 번호는 같지만 색깔 등 이 아파트 경비원에 의해 목격된 차량과는 달랐다는 기사가 나가자 밤중에 또 다른 제보자가 전화를 걸어 『차량이 모색됐다. 3406이 범행차량임에 틀림없다』는 제보를 해 왔다.
25일 밤에도 익명의 제보전화가 걸려 와『군 수사당국이 범행차량으로 발표한 서울 1거6873호 포니 엑셀 승용차는 범행차량이 아니며 3406 포니2의 범행관련을 숨기려는 의도』라고 말해 왔다.
◇의혹=이번 사건은 국방부 발표로 일단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으나 ▲치밀하게 사전 계획되고 주민의 눈에 띄는 것도 개의치 않는 대담한 수법을 볼 때 과연 알려진 대로 소령 차원에서 독단적으로 모의된 것인가 하는 점 ▲국방부는 범인들이 정보 사 본대 소속 서울 1라3406 포니2를 사건 전날 밤 사전답사 때 타고 왔고 범행에는 정보 사 예하 부대 소속 서울1거6873포니 엑셀을 사용했다고 밝혔으나 3406이 사건1시간30분전인 6일 오전6시 오씨 집 부근에서 목격되었고, 신문배달원 유민호씨(26)가 본 범인들은 연한 쑥 색 마크V를 타고 달아났다는 점 ▲3406에 대해 군 수사기관은 그 동안 두 차례나 사건당일 나간 일도 없다고 말해 왔으며 또 차량대질 때 차 색깔이 새로 칠해져 있었다는 점 등 여전히 사건의 배후와 은폐·조작에 대한 의혹을 강하게 남기고 있다.
이러한 여러 의문점들을 종합해 볼 때 당초 군 수사기관이『관련 없다』고 두 번씩이나 거짓 통보를 하게 된 경위가 명백히 밝혀져야 하고 육군정보사본대가 이번 사건과 관련 없는 것처럼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3406호의 변조·도색부분이 규명되어야 할 것이다.
범행의 배후 또한 규명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24일 목격자와 차량대질을 하게 함으로써 3406호가 전혀 다른 색으로 사건과는 무관한 것처럼 목격자들에게 보이게 해 범행이 조작·은폐되게 한 군의 시도 역시 해명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점=이번 사건은 발생2일만에 경찰이 해결의 실마리를 잡고도 20일 동안이나 수사의 진전을 보지 못했다는데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군 당국은 군 당국대로 사건과 관련된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명쾌한 해명은커녕, 두 번씩이나 관련을 부인함으로써 사건을 은폐·조작하러 했다는 의혹과 함께 국민의 불신을 사게 되어 온 것이 사실이고, 경찰은 너무나 저 자세를 보임으로써 6·29이래 사라져 간다던 「성역」의 실재를 확인시켜 주는 것 같은 인상을 감출 수 없다.
군에 관련된 사건의 경우 군경의 즉각적인 합동수사체제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도 이번 사건 수사를 계기로 생각해 봐 야 할 것이다. <김기봉 기자>

<오홍근 부장 피습사건 일지>
▲8월6일=서울 청담동 아파트 앞서 피습
▲7일=경찰, 용의차량 군 소속 확인
▲10일=경찰, 군에 수사협조 요청
▲11일=평민당, 민주당, 기협, 언노협, 중앙일보노조, 진상규명 촉구성명
▲12일=군,「문제차량, 사건과는 무관」통보
▲17일=경찰, 군에 용의차량·목격자 대질요청. 용의차량 목격자. 2명 추가
▲18일=군-경 합동회의, 범인몽타주 배포
▲24일=군-경 합동수사본부 설치. 목격자·차량대질
▲25일-국방부, 용의자 4명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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