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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의 어쩌다 투자]기업만 있다...크라우드펀딩서 빠진 투자자 보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창업ㆍ중소기업 자금조달 활성화로 혁신성장을 지원하겠습니다’(2018년 6월 5일)
‘창업ㆍ중소기업에 힘이 되는 크라우드펀딩 주요 동향 및 향후 계획’(2018년 1월 24일)
‘건강한 창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지원방안 마련’(2017년 4월 19일)

P2P 이어 크라우드펀딩까지 터졌다(하)

금융위원회가 배포한 크라우드펀딩 관련 주요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크라우드펀딩은 금융당국이 ‘창업기업의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한다’, ‘창업ㆍ중소기업에 힘이 된다’며 역점 과제로 삼는 분야다.

대접도 남다르다. 금융당국은 2016년 1월 ‘온라인소액투자중개자’를 신설해 크라우드펀딩 업체에 대한 감독 권한을 가져 왔다. 한때 하루 거래대금이 10조원을 웃돌았는데도 금융이 아니라며 외면받았던 암호화폐 시장과 비교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5일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에서 열린 크라우드펀딩협의회 발족 기념식에 참석했다. 출처: 금융위원회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5일 서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에서 열린 크라우드펀딩협의회 발족 기념식에 참석했다. 출처: 금융위원회

문제는 ‘창업기업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투자자 보호’에는 소홀하다는 점이다. 투자자 보호와 관련한 내용을 상대적으로 찾기 어렵다.

부루마블 프로젝트의 사례처럼, 발행(펀딩) 기업이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상에서 버젓이 ‘원금 보장’이라는 과장ㆍ허위 광고를 해도 중개업자가 책임질 근거가 마땅치 않다.
(관련 기사: 제작사 ‘원금보장’ 믿었다 ‘호구’ 되는 크라우드펀딩)
http:www.joongang.co.kr/article/22690646?cloc=joongang|home|starreporter2

‘생산적 금융’의 아이콘…P2P와는 다르다?

국내에서 크라우드펀딩은 2016년 1월부터 시작됐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에 포함되면서다. 개정안에는 투자중개업의 하나로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을 신설했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사업자가 금융의 영역으로 편입된 셈이다.

법안에는 증권형(주식형+채권형) 크라우드펀딩 제도의 발행기업 범위, 구체적인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 등록요건 등이 명시돼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정부 금융정책의 주요 목표인 '생산적 금융'의 아이콘이다. 금융당국은 법률 개정 취지로 창업기업의 자금조달 원활화와 투자자 보호 양 측면을 고려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활성화에 정책이 집중돼 있다. 투자자 보호책은 투자 규모를 줄이는 방법이 거의 전부다.

발행 기업의 발행 한도를 기업당 연간 7억 원으로 제한했다. 개인 투자자 1인당 투자한도를 기업당 200만원으로, 연간 500만원으로 한정했다.

시장은 기대만큼 커지지 않았다. 현재 P2P대출 시장의 60% 이상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나 부동산을 담보로 한 상품이다. 대박도 가능하지만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창업기업에 투자한다는 게 쉽지 않다.

법률이 시행된 2016년 1월부터 지난 2월까지 총 299개 기업(239건)이 증권형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508억원을 조달했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P2P 누적 대출액이 3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더디다

투자 활성화를 위해 지난 4월부터는 일반 투자자의 투자 한도를 기업당 500만원으로, 연간 1000만원으로 두 배 늘렸다.

“크라우드펀딩에 원금보장은 없다”

투자자 보호 대책 마련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지난 1월 금융위가 발표한 ‘창업ㆍ중소기업에 힘이 되는 크라우드펀딩 주요 동향 및 향후 계획’ 보도자료 어디에도 투자자 보호와 관련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그나마 지난 5일 발표한 ‘크라우드펀딩 제도 개선방안’에 투자자 보호 장치가 일부 추가됐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크라우드펀딩 투자 적합성 테스트’를 도입하기로 했다.

 크라우드펀딩 투자 위험에 대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체크해 불합격하면 청약을 제한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투자자 보호 장치가 다른 제도권 금융상품보다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가연계증권(ELS) 도입 초기에 지점에서 원금보장이 된다는 식으로 팔았다가 뒤늦게 불완전 판매가 문제 됐다”며 “크라우드펀딩의 경우 중개업자가 아닌 발행 기업이 원금보장을 내세우며 투자자를 현혹하는 경우, 중개업자에게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출처: 와디즈

출처: 와디즈

실제로 와디즈 홈페이지 하단에는 ‘와디즈(주)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중개자(온라인소액투자중개자 및 통신판매중개자)로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을 모집하는 당사자가 아니며, 투자손실의 위험을 보전하거나 보상품 제공을 보장해 드리지 못합니다’라고 명시돼 있다.

강영수 금융위 자산운용과장은 “크라우드펀딩과 같은 신기술 금융산업의 경우 투자자를 보호한다며 지나치게 규제하면 유명무실해지고, 활성화를 한다고 규제를 느슨하게 하면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며 “양쪽의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크라우드펀딩에 원금보장이란 건 없다”며 “이 같은 불법 영업 행위와 관련해서는 금융감독원과 긴밀히 협력해 점검하겠다”고 덧붙였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크라우드펀딩=대중(Crowd)으로부터 자금을 모아(Funding) 좋은 사업이나 아이디어에 투자하는 제도다. 국내에서는 2016년 1월 시행됐다. ‘집단지성’을 통해 사업 계획을 검증하고 다수에 의한 십시일반(十匙一飯) 투자를 지향하는 증권형(주식형+채권형)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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